교회와 선거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곽재욱 목사
2013년 04월 10일(수) 10:08

주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유적을 발굴하던 중에 조개껍질과 깨진 그릇 조각들의 무더기가 출토되었다. 생활 쓰레기 무덤처럼 보였던 그 사금파리들 하나하나에 사람의 이름이 씌어져 있음에 주목하는 순간 그것은 현대 서양문명의 근본인 투표의 기원이 되었다.
 
그 유적에 두 가지를 눈 여겨 본다. 그 하나는 기명된 사금파리들이 '제출'된 것이 아니라 무더기를 향해 '던져졌다(投票; cast vote)'는 사실이다. 비밀투표의 원리이다.
 
다른 한 가지는 그 조각들에는 지도자로서 지지하는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지도자로서 적절하지 않아 추방해야하는 대상을 적었던 것이다. 패각추방. 곧 민중에 의한 독재에 대한 견제와 협력의 정신이었다. 한 무더기를 살펴보니까 '테미스토클레스'라는 사람의 이름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왔다. 그는 페르시아 전쟁의 대단원을 이룬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끈 그리스의 영웅이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영웅이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독재자가 되기 십상이라는 사실이다. 그리스 민주주의는 구국의 영웅의 독주에 대한 민중적 견제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들은 한 사람의 뛰어난 영웅보다는 '그만 못한 사람들의 협력'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기독교 문명은 구약 히브리 문명과 함께 고대 그리스 문명의 두 물줄기가 합류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신약성경이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독교가 히브리 신앙 위에 헬라의 문화적 세례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구약 히브리 신앙은 지도자를 세움에 있어서 그리스의 투표와는 전혀 다른 방향과 발상을 하고 있다. 구약에서 지도자를 세워 기름을 붓는 주체는 민중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그 사람의 가문, 교육과 직업, 나이와 업적 같은 것들은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에 있어서 그 어떤 개입의 여지도 없다. 사도행전 1장은 초대교회가 사도의 결원을 보충하는 절차에 있어서 회중의 뜻을 반영하는 선거의 헬라적 문화를 수용하였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 마지막 두 사람 중의 한사람의 선택은 '제비뽑기'라는 형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택을 묻는 히브리 신앙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음을 본다.
 
전국 봄 노회를 통해 제98회 총회 부총회장 후보 예정자들이 추천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총회장께서 담화문을 통하여 투표의 공명성과 도덕성에 대해서 일갈하셨다.
 
한국 기독교 교계의 불법선거, 타락선거의 잦은 추문들을 계속 듣고 있는 것은 너무나 부끄럽고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현실 가운데 현 손달익 총회장의 부총회장 선거 당시 후보들의 양보와 협력 가운데 단일 후보로 추대되면서 차후 총회의 공명선거의 기조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에 교단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껴본다. 이번 총회의 부총회장 선거를 비롯한 각 노회와 교회의 각종 선거들에서 밀실의 공모가 없는 비밀주의, 어떤 한 개인의 독주가 아닌 협의의 정신, 무엇보다 결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대한 순종의 믿음을 보여주는 공명선거의 풍토와 기조가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곽재욱 목사 / 동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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