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언덕엔 교회가 세워지고…

[ 예화사전 ] 예화사전

김운용 교수
2013년 03월 28일(목) 16:51

고난주간을 시작하면서 오래 전 읽었던 일본의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양치는 언덕'을 다시 읽었다. 사랑이 무엇이며, 그것을 통해 허락된 용서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주인공 나오미는 목사의 딸이다. 순수하게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고 여고시절 알게 되었던 료이치를 다시 만나면서 그를 사랑하게 된다. "나도 한 사람 정도는 사랑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며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집을 나간 나오미는 그와 동거생활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료이치는 처음 순수함은 사라지고 점점 거칠어지면서 거침없는 폭력성이 드러난다. 아침에 기도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하고 비아냥거리다가 나중엔 폭력을 휘둘렀다. 그의 나쁜 술버릇은 사람을 어렵게 했고, 나중엔 자기 친구와 바람까지 피우는 것을 보면서 결국 나오미는 도망을 나와 2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부모님의 얼굴을 볼 염치가 없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이던 나오미는 늦은 밤 문을 살며시 밀었을 때 놀랍게도 문이 잠겨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한다. 조심스럽게 한발을 들여놓았을 때 어둠 속에서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온다. "나오미, 이제 오니?" 그 긴 시간 아버지는 문을 열어놓고 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폐병에 걸려 폐인이 된 료이치가 나오미를 찾아온다. 나오미는 그를 받아주지 않으려 하지만 병든 그를 우리가 돌봐주어야 한다고 부모님은 딸을 설득한다. 그 집에서 투병생활을 하던 료이치는 나오미와 가족들의 따뜻한 간호를 받으면서 차츰 변화된다. 그들의 믿음과 사랑에 감동을 받은 료이치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였고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료이치는 투병 중에 매일 다락방에 올라가 그림을 그렸다. 그건 나오미에게 줄 성탄절 선물이었는데 그때까진 보여줄 수 없다며 언제나 하얀 천으로 덮어 놓곤 했다. 어느 날 옛 여인 데루코의 전화를 받고 마지막으로 관계를 정리하려고 나간 료이치는 하룻밤만 함께 지내자는 그녀의 유혹을 받지만 넘어가지 않는다. 이 작별주 한잔만 마시면 보내주겠다는 그녀의 제의에 료이치는 받아 마시는데 그것은 수면제를 탄 술잔이었다. 거기에서 잠들지 않으려고 거리로 뛰쳐나온 료이치는 눈 덮인 길거리에서 쓰러져 잠이 들었고 결국 그는 거기에 그날 밤 동사(凍死)하고 만다.
 
장례식을 마친 후 료이치가 그리던 그림의 천을 펼치자 거기에는 십자가에서 뚝뚝 피를 흘리고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 십자가 밑에는 한 청년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십자가를 붙잡고 있었다. 십자가에서 쏟아지는 피를 온몸으로 받으며 엎드려 있는 사람은 료이치 자신이었다. 그것은 그의 신앙고백이었다. 그 후 재혼을 하지 않고 고아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나오미는 양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는 언덕에서 지나간 세월을 돌아본다. "사랑한다는 건 용서하는 것이란다. 한두 번이 아니라 끝없이 용서하는 것이지." "사랑한다는 건 상대방을 살리는 것이며 또 용서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라." 아버지가 들려준 말이었다. 십자가에는 한없이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나타났고, 부활의 아침 주님은 실족한 제자들을 찾아 나서셨고 그들을 품에 안으셨다. 그 '양치는 언덕'에서 교회가 시작되었고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은 거기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김운용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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