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은 끝나지 않았다'…피해 현장과 아픔만 남아

[ 교계 ]

박만서 기자 mspark@pckworld.com
2013년 03월 25일(월) 10:56

잊혀진 작은 이, '용산참사' 사망자 가족과 구속된 가족
재개발로 인한 피해자는 있는데, 4년이 지나도 텅빈 공터뿐
"교회, 위로는 커녕 외면하고 상처만 더 깊게 만들죠"
교회봉사단, 정신적 고통 치유 위해 '힐링캠프' 제안

   
 

용산역 맞은편, 이곳이 재개발 지역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함석 가림막, 이를 지탱하고 있는 파이프, 시들다 못해 말라버린 쇠파이프에 꽂힌 꽃 몇송이….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에 불어 닥친 북풍한설을 이겨낸 듯한 꽃 송이는 더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 금방이라도 부스러져 흩어질 것만 같다.
 
이곳이 4년전(2009년 1월 20일) 생계를 위해 상가 세입자들이 망루에 올랐다가 농성을 시작한 지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 차가운 시신이 되어 내려오게된 일명 '용산참사 현장'이다. 재개발 용산 4지구 남일당에서 발생된 사건이다. 사건은 작전에 투입됐던 경찰관 1명을 포함해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기자가 이곳을 찾은 것은 2013년 부활절을 앞두고 오늘의 '작은 이'를 만나기 위해서 이다. 사건 당시 피해자와 서울시 등을 오가며 중재 역할을 담당해던 한국교회봉사단 사무총장 김종생 목사가 동행했다.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매서운 추위를 밀어내고, 생명을 움트게 하는 봄의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방문한 지난 21일은 온몸을 움츠러들게 하는 영하권을 오가는 날씨였다.
 
   
 
사건 현장은 4년이 지나 더이상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기존에 있었던 건물이 철거된 채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는 것만으로 아비규환의 현장을 그려 볼 뿐이다. 동행한 김종생 목사는 "당시 사건 현장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피해 가족들의 증언을 통해 현장을 충분히 그려 볼 수 있었다"면서 "망루에 오르면 금방이라도 대화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철거민들이 결국 죽음으로 인해, 소망했던 희망의 불씨가 꺼진 사건이었다"고 회상한다.
 
재개발을 위해 사람 목숨까지 희생시켰던 현장은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될 뿐, 더이상 사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얼마전 사업자가 사업을 더이상 진행할 수 없어 손을 놓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요즘 유행하는 말로 모두가 '멘붕'에 빠졌다.
 
당시 망루에 올랐다가 사망한 고 이상림 씨의 부인 전재숙 집사를 현장에서 만났다. 전 집사는 남편을 잃기도 했지만, 함께 이 곳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아들을 감옥에 보내야만 했다. 아들 이충연 씨는 당시 결혼한지 8개월째인 신혼으로 핑크빛 단꿈을 꾸어야 했던 새신랑이었다.
 
망루가 있었던 자리를 짚어주며 "차라리 집이라도 지어졌으면 …"하며 한숨 섞인 한 마디로 심경을 토로하며 쉽게 말을 잇지 못하던 전 집사는 "망루가 세워지고 그 끝에 전국철거민연합회 깃발만 꽂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며 가족을 안심시키고 망루에 올랐던 남편이 하루도 안돼 시신으로 돌아 왔다"라고 기억조차 하기 싫은 당시를 회상했다. "저희들은 대화를 해보자고 한 것 뿐입니다. 망루가 불에 타고 있어도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본적이 없었어요. 아들도 그 곳에 있었는데 순간 불어닥친 바람으로 물통에 빠져 목숨을 건지게 된 것입니다." 전 집사의 증언이다.
 
   
 
현장에서 자리를 옮겼다. 전 집사와 함께, 그의 아들과 며느리가 있는 곳을 찾았다. 그 당시 사건 현장에 있으면서 마지막까지 망루에 오른 시아버지와 남편에게 물 한 모금을 전달하기 위해 발을 동동굴렀던 며느리 정연신 씨가 일하는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실이다. 골목골목을 지나 찾은 곳은 빈집으로 남아 있던 가정집을 위원회와 몇몇 NGO 단체가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는 곳이다. 전 집사의 며느리 정영신 씨는 이 곳에서 진상규명을 위해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결코 '용산'은 끝나지 않았다"며 입을 열었다. "4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건축을 하지도 않고 방치해 놓을 것을 왜 그렇게 사람이 죽게까지 했냐"며 항변하는 그들은 "재산을 지키려다 숨진 분들, 구속된 분들의 가족들은 웃음을 잃은 채 고통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40여 일 전에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이충연 씨는 "출소 후에 사망한 가족에게 연락을 하고 만나자고 했지만 '아직 준비가 안됐다'며 가족들이 극구 만남을 사양해 왔다"면서 "4년전의 사건이 아니라 용산의 피해자들에게는 여전히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의 바람은 돈도 명예도 아니다. 단지 진상을 규명하고, 더 이상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앞으로도 재개발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곳에서도 우리처럼 철거민들이 살기위해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있는데 결과는 없다. 재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하루 아침에 행복의 보금자리를 잃은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가림막 쇠파이프에 꽂혀 있는 시들어버린 꽃 송이처럼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덧붙여 말한다. "교회는 왜 힘들고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을 외면합니까." 전 집사는 인근에 있는 교회에 출석했던 신실한 교인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확산되자 교회는 그를 외면했고, 세례를 받는 조건으로 결혼을 승락했던 며느리는 이제 교회에 출석할 수 없게 됐다. 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들을 밀어냈기 때문이다.

   
 
 
"옆에 있는 이웃을 돌아보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 아닙니까?"라고 반문하는 정 씨는 "믿음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교회로부터 더 이상의 상처를 받고 싶지 않다. 처음 가졌던 종교 였는데…. 말로만 자매 형제를 이야기 하지 말고 진심으로 고통 중에 있는 이웃을 돌봐 주는 교회를 만날 수 있기를 꿈꿔본다"고 덧붙인다.
 
이날 김종생 목사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힐링캠프'를 제안했다. 교회가 그들을 위해 관심을 가져야 했기에 정신적인 고통을 조금이라도 교회가 껴안아 주고 싶은 생각에서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상처가 너무 크고, 그 상처로 인해 또 다른 고통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위원회 사무실을 나와 차 핸들을 사건 현장이 있는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교회가 그들을 위해 위로자가 되어주고, 치유하지 못했던 죄책감이 가슴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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