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이기는 방법

[ 문단열의 축복의 발견 ] 축복의발견

문단열
2013년 03월 21일(목) 16:21

6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8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9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10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삼상 2:6-10)
 
공부를 못하는 아이에게 묻습니다. "뭐가 두려우냐?" 그는 이러다 학교를 그만 떠나야 하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말합니다. 중간쯤 가는 아이에게 뭐가 두려우냐고 묻습니다. 성적이 하위권으로 쳐질까봐 두렵다고 합니다. 전교 일등에게 묻습니다. 그는 2등에게 따라 잡힐까봐 신경이 곤두 서 있습니다. 없어도 두렵고 있어도 두렵습니다. 불행해서 두렵고 불행해질까봐 두렵습니다. 잃을까봐 두렵고 감당 못 할 것이 생길까봐 두렵습니다.
 
안정해도 두렵고 불안정해도 두렵습니다. 사람은 두려움을 끼고 사는 존재입니다. 짐승의 두려움은 위협받는 잠시잠깐이지만 사람의 두려움은 내버려두면 죽는 그 순간까지 지속됩니다. 인간은 두려움으로 숨을 쉬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고통스러워 합니다. '고통의 바다'라는 그 곳은 사실 두려움의 바다인 것입니다.
 
암 선고를 받고 일주일 동안 저는 정말 고통 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육신은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초기였던 암은 몸에 아무런 고통도 야기하지 않았는데도 얼룩말 떼와 같은 거대한 삶의 흐름에서 나 혼자 떨어져 나가는 서러움에 몸을 떨며 두려워하고 혼자 어두운 곳에서 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반대로 막상 큰 수술을 받고 깬 직후, 하복부엔 문자 그대로 단장斷腸의 아픔(내장이 끊어지는 아픔)이 몰려왔지만 이상하게도 평생 처음 겪는 '두려움의 진공상태'를 경험했습니다. 삶의 절정에서 두려움 또한 절정에 달했는데 고통의 심연, 게다가 그 심연의 하드코어에서 겁을 상실한 평화를 맛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통제 투여가 중단되고 퇴원하는 순간까지 입원환자라기 보다 부흥회에서 은혜받은 성도 같았습니다. 어차피 삶은 그의 손에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나는 여장부였습니다. 그는 그의 삶이 자식없이 주류에서 밀려나 영원히 '결격사유'를 안고 나락으로 떨어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두려움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드디어 하나님의 위로와 약속을 받고 근심 가신 얼굴로 돌아 갔는데 다시는 그 얼굴에 근심이 없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서원을 잊지 않고 사무엘의 인생을 하나님께 바치게 되고 하나님은 사무엘을 위대한 선지자로 세우십니다. 결격사유를 승리의 드라마로 승화시킨 한나의 기도가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한나가 왜 두려움을 상실했을까요. 그녀는 사람을 올리고 내리는 것이, 부하게 하고 빈하게 하는 것이, 병약하게 하고 건강하게 한는 것이, 추락하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 모두 하나님 손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두려움은 모두 사람에 대한 두려움일 뿐입니다. 그런데 오묘한 역설은 그 두려움의 대상을 하나님으로 바꾸는 순간부터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상한 마음의 평화가 찾아 옵니다. 병실에서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오늘 여러분의 아침은 분주하게 시작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분주가 사랑하는 일들을 위한 기쁜 마음의 분주가 아니라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인한 부담스런 분주함이라면 잠깐 눈을 감고 오늘의 말씀을 되뇌이십시요.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삶의 운전대를 실제로 잡고 계신 하나님의 조수석에 앉아 장난감 운전대를 돌리고 있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연히 방향이 맞으면 내가 차를 운전 하는 것 같지만 조금만 겪어 보면 주께서 우리 삶의 주인인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대로 차가 가지 않을까 두려울 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맘졸이며 운전대를 한 방향으로 돌리고 또 돌리는 것이 아니라 운전석에 앉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각보다 마음이 약하십니다. 두려움없는 하루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되심을 인정하시길 바랍니다.

문단열 /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