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기 전까지 모든 것은 제로상태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3년 03월 20일(수) 14:11
터치 오브 라이트(장영치, 드라마, 전체, 2012)
 
'터치 오브 라이트'는 실제 시각장애인으로서 피아니스트인 황유시앙의 삶을 다룬 장애인 영화다. 이전에 만들어진 단편 '터널의 끝'(2007)을 장편으로 만든 것이다. 빼어난 영상미로 보는 눈을 사로잡으면서도 감미로운 음악을 들려주어 보는 내내 즐거움을 준다. 장영치 감독은 이전의 단편작을 통해 눈먼 청년 황유시앙이 음악을 매개로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삶의 단면을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장편으로 확장된 이번 영화는 장르적으로 볼 때 장애인 영화이면서도 여타의 장애인 영화와 조금은 다르게 연출되었다. 장애의 의미를 묻지도 않고, 장애의 한계를 극복하는 인간 승리에도 매달리지 않는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통해 장애인의 고통과 좌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도 않는다. 물론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장애인이라도 누구나 한 번 쯤은 겪는 일이다. 어릴 때부터 성장과정까지 모든 과정은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 내용은 시각 장애인 황유시앙이 고향인 농촌을 떠나 도시의 한 대학에서 생활하는 모습에 집중되어 있다. 도대체 장영치 감독은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4살 때부터 치기 시작한 피아노는 그가 세상을 만나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피아노 연주로 무대에 서는 일 때문에 발생한다. 그래서 영화는 어쩌면 장애인이라는 핸디캡이 오히려 사회적인 진출에서 메리트로 작용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전제한다고 볼 수 있다. 어릴 때 피아노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했을 때 정정당당한 경쟁이 아니라 심사위원들의 동정 때문에 수상한 것이라는 비난을 들은 것이다. 그 이후로 황유시앙은 무대에 서기를 꺼린다. 무대공포증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무대에 서려고 하는데 그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장애를 더욱 분명하게 의식하게 만드는 트라우마일 뿐이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전공하며 피아노를 통해 새로운 세계에 들어섰지만 정작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는 무대에 서지를 못하니 그에게는 시각장애보다 더 큰 시련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을 보는 동정과 편견의 시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농촌에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도시에서의 삶도 남의 손에 의지하기보다 스스로 해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실제 인물 이야기에 덧붙여 등장하는 음료수 배달원, 목소리가 아름답고 어려운 사람들을 기꺼이 돕기를 주저하지 않는 상냥한 치에(상드린 피나 분)는 가공의 캐릭터다. 그러나 88만원 세대의 청년들에게 흔히 있을 수 있는 모습이라 그렇게 멀리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의 꿈은 무대에서 춤을 추는 것이다. 집안 형편상 생계의 일부를 책임져야 해서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직장엘 다닌다. 춤에 대한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치에는 황유시앙에게서 한계를 극복하면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의 의욕을 접하며 잃어버린 자신의 꿈을 되찾고, 황유시앙 역시 치에가 들려주는 춤, 곧 무대 위에서 남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몸을 의식하고 스스로의 몸을 신뢰하며 추는 춤을 듣기도 하고 또 바닷가의 자유로운 공간에서 직접 느끼면서 트라우마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마침내 자신들이 가진 아픔과 상처를 극복한다. 두 사람은 비록 모습은 달라도 갖가지 이유로 꿈을 포기하며 살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장애인 영화라는 장르에 익숙한 방식과 다르게 전개하는 연출은 인간이 자기 자신이 아닌 인간으로 살면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환경적인 요인에서 오는 한계를 환기한다. 그리고 그 한계를 극복하는 데에 있어서 도전하는 정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해보지 않은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도전을 통해서 비로소 내게 무엇이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할 수 없는지를 알게 된다. 황유시앙은 피아노를 통해 시각장애인으로서 한계는 극복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사회적인 차별과 편견에 부딪혀야 했다. 그러나 그에게 여전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도전정신이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일은 불가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을 통해서 무대 위에서의 자유를 알게 되었다. 황유시앙의 도전 정신에 자극을 받은 치에 역시 도전을 통해 자신에게 있는 춤의 본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도전을 통해 제로상태를 극복한다고 말한다. 도전을 통해 자신에게 있는 능력을 확인하고 또 실현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도전이 갖는 의미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순종이다. 도전은 내 꿈과 관계하지만 순종은 하나님의 뜻에 관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비전으로 삼고,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내 안에 있는 능력, 하나님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하나님에게서 내게 위임된 능력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말씀에 순종하기 전까지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제로상태에 머물러 있다.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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