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십자가 지고 가신 고난의 길을 밟다

[ 교계 ]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3년 03월 14일(목) 09:48
이스라엘 비아 돌로로사
 
<전문> 예루살렘 올드 시티 안에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을 모두 14개 지점으로 재현해놓은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고난의 길)'가 있다. 물론 이 길이 정말 2천여 년전 예수님이 고통스럽게 한걸음 한걸음 내딛으셨던 그 길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건 오늘도 '비아 돌로로사'는 예수님의 흔적을 찾기 원하는 전세계 순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2013년의 사순절, 한 명의 순례객이 되어 그 길을 걸어봤다.

   
▲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비아 돌로로사는 예수님의 고난의 길을 따라 걷기 원하는 전세계의 순례객들로 인산 인해를 이룬다.
【이스라엘 예루살렘=김혜미기자】 매주 금요일 오후 3시면 비아 돌로로사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재현하는 수도사들을 볼 수 있다는 얘기에 지난 1일 구시가지를 향했다. 오후 2시 50분, 다마스커스 게이트를 통해 찾아간 제1지점의 길은 왠일인지 한산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니 조금씩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하기 시작했다. 가톨릭 수도사 복장을 한 사람들 사이로 관광객 차림을 한 다국적의 사람들이 행렬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나요?" 파란색 외투를 입은 한 남성에게 다가가 물었다. 예루살렘의 UN 지역본부에서 일하고 있는 리차드 씨(탄자니아)는 "이곳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처음 지시고 가셨던 지점으로 여기에서부터 예수님이 걸으셨던 길을 따라가면서 그분의 모습을 비추어본다"고 친절하게 행렬의 의미를 설명해주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이곳에 온다는 그는 "사순절 기간이라 남다른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곧 있을 성금요일에는 더 특별한 날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성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으로 중간 중간 순례객들의 길을 안내한 클라우디아 수도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기 위함"이라고 매주 'Holy way(거룩한 길)'를 걷는 목적을 밝혔다.
 
2천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 '고난의 길'을 걷는 순례객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거웠고 그 길을 따르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어느 방향에선가 이슬람 사원에서 들려오는 아잔 소리(하루 다섯번 기도 시간을 알림)와 무장 경찰의 호위 속에 통제된 행렬 한 가운데를 비집고 지나가는 유대인 청년의 모습이, 지금 서있는 곳이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의 한 복판임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

   
▲ 예수님이 세번째 쓰러지셨다는 제9지점 콥틱교회에서 검은빛 피부의 성직자들이 소리내어 기도하고 있다(좌).운명하신 예수님의 시신을 아리마대 요셉이 내리고 염을 한 후 세마포로 싼 곳으로 알려지는 제13지점. 한 순례객이 입을 맞추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우).
 
인종과 국적, 종파를 초월한 순례객들과 함께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걷는 경험은 매우 특별했다. 그 모습을 담고자 사진을 찍다가 돌아서는데 순간 자욱한 담배 연기가 얼굴을 덮었다. 미로 같은 길에 빼곡한 상점들 사이로 정말 예수님이 이 길을 걸으셨을까? 의구심 속에 한걸음씩 걷다보니 어느새 제10∼14지점이 몰려있는 마지막 성묘교회에 다다랐고, 그곳에서 만난 순례객들에게서 이 길을 걷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인도 출생으로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그레이스 씨는 "무엇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과 그분의 사랑은 무제한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온화한 미소가 인상적인 그녀는 유대교인들과 모슬렘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가는 지름길(Shortcut)임을 알리기 원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일랜드의 한 수도원에서 동행한 안나 씨(영국)는 "전세계 어디에 있던지 예수님의 스토리를 전하고 우리가 그 메시지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크리스찬들은 예수님처럼 관용과 인내,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고 첫 방문의 소감을 밝혔다.

   
▲ 성묘교회의 2층에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워졌던 제12지점이 있으며 이곳에 손을 얹고 기도하려는 사람들이 언제나 줄을 잇는다.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 갈라진 바위가 아직도 남아있다고 한다.
 
마지막 지점에서 수도사들과 순례객들은 한 목소리로 전세계의 교회를 위해 기도했다. 2시간 10분의 긴 행렬이 끝나자마자 교회의 한켠에서 아르메니안 정교회 성직자와 신학생들이 잠시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모습도 보였다. 기독교 역사의 시작이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은 현재 가톨릭, 그리스정교회, 콥틱교회, 이디오피아교회, 아르메니안 정교회, 시리아정교회 모두 6개 종파에서 구획을 나눠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경남 산청의 나환자촌에서 30년간 사역하고 안식년차 와있다는 유의배 신부(스페인)는 유창한 한국말로 "이 안에 기도하는 분들의 종파가 다양하고 복잡해서 기도하는 시간도 정확하게 지켜야 하고 때로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으로 평화가 절실한 땅 예루살렘.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교인들과 예수님을 선지자로만 인정하는 모슬렘, 그리고 무수히 많은 종파로 나뉘어진 기독교…. 이곳에서 치유와 화해, 일치의 역사가 절실한 오늘의 한국교회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예루살렘의 비아 돌로로사가 아니더라도, 눈으로 보고 손으로 직접 만지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했던 수난의 의미를 매일 마음 깊이 새기는 일이 아닐까.

   
▲ 비아 돌로로사의 전 지점을 표현한 조각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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