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내 손을 잡아라- 김영희 권사(상)

[ 향유와 옥합 ]

강영길
2013년 03월 13일(수) 15:27
남해안 끝자락 전남 거문도의 서도교회, 깊은 바다에서 전복이며 소라를 잡아 하나님께 평생의 예물로 드리며 살아온 해녀, 김영희 권사(66)를 만났다. 김 권사는 체험과 헌신과 말씀과 찬양과 음성 듣기와 기도와 겸손과 사랑 등 그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아름다운 주님의 딸이다.
 
2004년 4월 8일, 고난주일. 김 권사는 새벽기도를 갔으나 감사의 기도를 하지 못하고 예배 오기 전에 봤던 환상에 집중해 있었다. 새벽기도를 가기 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환상을 봤다. 눈 앞에 팔뚝만한 얼음 외나무다리가 있었고 다리 너머에는 아름다운 옥토밭으로 된 섬이 있었다. 그 다리를 건너다가 미끄러져서 그만 바다에 빠지고 말았는데 그 순간 하얀 옷자락에 덮인 손이 내려오면서 음성이 들렸다.
 
   
"딸아 내 손을 잡아라."
 
김 권사는 이 음성이 예수님의 목소리이며 손과 옷자락은 예수님의 것임을 확신했다. 김 권사는 새벽기도 시간에 하나님을 붙들고 늘어졌다.
 
"아버지, 이 환상이 무슨 뜻일까요?"
 
그렇게 기도하자 이런 마음이 들었다.
 
"너의 기도는 얼음판까지이고 옥토밭은 종현이가 걸어갈 길이다."
 
아, 이건 또 무슨 뜻일까? 이건 해답이 아니라 더 미궁에 빠지게 하는 말이다. 내 기도는 얼음판까지고 종현이가 걸어갈 길이 옥토밭이라니. 결국 김권사는 답을 다 찾지 못한 채 집으로 내려왔다.
 
따르릉-. 새벽 6시. 부엌에 있는데 둘째 아들 종현이가 전화를 했다. '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라는 영화가 정말 은혜로우니 이번 주에 보라고 했다. 통화를 마친 뒤 잠시 부엌에 나가서 10분쯤 있다가 다시 방에 와서 TV를 켜니 화면 아래에 자막이 떴다.
 
사고-여천 산단 LG 김종현 이일산업 생산과장 33세 중상.
 
그 짧은 사이에 일어난 일이 현실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었으나 김 권사는 이틀 전에 봤던 환상을 되새김질 했다. 기도를 하는데 종현이가 속옷만 입은 채 나타났다. 그 모습으로 김 권사에게 오더니 어떤 사람이 담배를 못 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환상 속에 나타나서 한 말 치고는 참 엉뚱한 말이었다. 그런데 종현이가 당한 사고는 동료 직원의 담배가 화학 약품에 번진 폭발 사고였다.
 
둘째 아들은 그렇게 아버지의 품으로 떠났다. 김 권사는 아들의 시신 앞에서 "하나님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그 한 마디를 하고는 쓰러져 버렸다. 아들이 죽은 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그 옥토밭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의식을 잃은 아들의 몸을 덮는 병원의 흰 천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그 얇은 천이 아니라 따뜻하고 예쁜 이불로 바꿔주고 싶었다. 그 차가운 흰 천으로 덮은 아들의 몸에 손을 얹고 김 권사는 매일 눈물로 기도했다. 아버지 이 생명을 주님께 의탁하나이다. 아들이 죽는 그 순간까지 김 권사는 아무 생각도 없었고 무슨 일이 있었나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 속에서 아들에게 수의를 입힐 때 기도 속에서 김 권사는 황량한 언덕길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는 모습을 봤다. 수많은 군중과 군인이 예수님 주변에 있었다. 그리고 저기 길 끝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나무 뒤에 서서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서 있는 것이다. 그때 김 권사는 마리아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저 눈물은 그냥 눈물이 아니라 온몸을 쥐어짜서 나온 눈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리아의 마음이 자신에게 그대로 내려와 앉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고통도 아픔도 다 사라지고 마음에 평강이 내려왔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아픔을 거둬가셨다.

강영길/온누리교회, 소설가, 내인생쓰기 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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