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가 전도를 반대한다고?

[ 선교 ] 에큐메니칼 칼럼

장윤재 교수
2013년 03월 06일(수) 16:41

WCC가 '개종전도'를 반대한다고 난리가 났었다. 언제나 무지(無知)가 화근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몰라도 '너~무' 모른다". WCC는 '개종'(conversion)을 반대한 적이 없다. 개종이 아니라 '개종강요'(proselytism)를 반대한다. 개종강요란 WCC의 공식문서를 인용하면, "어떤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기독교적 증거를 신뢰하지 않는 방법과 수단을 사용하여 타인의 교회(혹은 교단)를 바꾸도록 강요하는 것"이다.(1997년도 선교문서, Towards Common Witness 중에서) 이는 겉으로는 열정적 선교행위로 보이지만 사실은 '진정한 전도에 대한 배신행위'이고 나아가 '복음을 위태롭게 만드는 역증거(counter-witness)'일 뿐이다. 다른 말로 개종강요는 "자유시장의 극심한 경쟁 속에서 선교를 통해 새로운 '고객'을 끌어 들이려는 행위"이며, 한 마디로 '양 도둑질'이다.(2000년도 선교문서, Mission and Evangelism in Unity Today 중에서)
 
그렇다면 이러한 개종강요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WCC는 그것이 '공동의 증언'이요 '협력 선교'라고 말한다. 개종강요의 포기는 결코 전도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과 다른 기독교 전통을 물려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자기 교회로 끌어들이려는 유혹을 포기하고, 이미 존재하는 지역교회와 협력하면서,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WCC는 그동안 일부 보수교회가 꾸준히 제기한 의심과 달리 이 세상에 지역교회를 세우고 확장하는 일에 반대하지 않는다. WCC의 공식문서를 보면, 오히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세포가 될 수 있도록 이 세계 모든 곳에 교회를 세우는 것은 복음전파를 위해 필수적인 일"임을 강조한다.(1982년도 선교문서, Mission and Evangelism: An Ecumenical Affirmation 중에서) 하지만 다른 문화 속에 교회를 심는 일에는 반드시 복음의 토착화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와 태도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말씀이 육신이 된 것처럼, "복음의 토착화는 성육신의 신비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며," 그것은 그 자체로 "기독교 선교를 묘사하는 또 다른 방법"이기 때문이다.(위의 문서 중에서)
 
WCC는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선교가 포기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전 세계를 향한 복음의 선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긴급한 사명이라고 못 박는다. 하지만 이 사명은 "십자군에 참여하는 공격적인 영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성령 안에서 수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다른 종교와 이념을 가진 사람들을 향한 '대화적 접근'은 기독교 선교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본다. 오히려 타종교와의 '겸손한 대화'는 모든 인간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고 사람들 사이에 '종의 모습'으로 사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을 따르는 것이다.
 
한마디로 "교회는 예수의 방법대로 선교하도록 부름 받았다." WCC가 선교와 전도를 둘러싼 모든 논쟁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예수께서는 결코 제국주의적 십자군 정신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으셨다. 우리가 전할 복음을 우리의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복음을 배반하는 일이다. 사랑의 힘이 복음을 전하는 모든 태도를 압도하지 않으면 안된다."(이상 모두 Mission and Evangelism 중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자신의 방식'이 '하나님의 방식'인 양 착각한다. 교회는 종종 '예수의 방법'이 아니라 '인간의 방법'을 신뢰한다. 내 방법이 선이라고 우기지 말라. 내 방식이 사랑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가 14:36)라고 기도하시며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 그 사랑의 방법으로 선교하라. 이것이 WCC의 주장이다. 왜 그것을 반대하는가?

장윤재 교수 /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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