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세이비어교회 이야기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 칼럼

김세광 교수
2013년 03월 06일(수) 15:43

지난달 워싱톤 DC에 있는 세이비어교회 주일 예배에서 있었던 작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교회는 몇 년 전부터 한국에 '미국을 움직이는 작은 공동체'로 대대적으로 소개되어 벤치마킹하고 싶은 교회 중의 하나로 알려졌기에 교회 소개와 감동적인 수많은 이야기는 생략한다.
 
주일 오전 10시30분 경에 예배 장소라고 해서 찾아간 곳은 30평 정도의 포토스하우스라는 소박한 서점이었는데, 들어서니 은퇴한 것으로 보이는 노인들 30여 명이 찬양하고 있었다. 듬성듬성 어지럽게 놓여있는 식탁에 삼삼 오오 모여 있는 모습이 주일예배라기보다는 구역예배 분위기였고 웃으며 포옹할 듯 친절히 맞이하는 한 노인의 영접은 친밀감을 강조하는 모임일 것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눈에 거슬리는 모습이 포착되었는데, 치매에 걸린 한 노인이 흘러내리는 바지춤을 추켜올려가며 회중들 사이를 정신없이 오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빵을 먹으면서 산만하게 두리번 거리고 있어서 예배에 방해가 되고 있는데도 적극적으로 그를 제지하는 이가 없는 것이 신경에 거슬렸다.
 
예배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고 분위기가 점점 어설프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를 놀라게하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헌금시간이 되었는데, 아까 정신없이 빵 먹으며 돌아다니던 그 노인이 헌금위원이 되어서 바구니를 들고 다니는데, 그를 붙잡고 갈 방향을 잡아주는 여인이 따라다니고 있는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먼곳까지 찾아와 예배 탐방하고 있는 필자에게 조금 전까지의 예배 장면은 어수선하고 산만함 그 자체여서 조금 실망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때까지 낯설고 서툴게 느껴졌던 그 순서와 분위기의 의미가 깊이 마음에 와닿는 것이다.
 
'이 예배회중들은 치매노인도 예배자일 뿐아니라 순서담당자로 존중히 여기는구나!' 이 원리는 그 이후 성찬집례에서도 계속 유지되었다. 이제 광고만 남은 시점에서 예배는 이미 1시간을 넘기고 있었기에 다 끝났다고 생각하며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또 하나의 예배가 시작되고 있었다. 광고시간이다. 하나 둘씩 나와서 저마다 계획하고 준비 중인 환경살리기, 독점기업반대캠페인 등을 소개하며 참여를 권장하는데, 그 때 데이빗이라는 키가 크고 강단있어 보이는 노인 한 분, 아까 문에서 영접했던 그 노인이 마이크 앞에 꼿꼿이 서더니, 최근 자신에게 있었던 변화를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의사로부터 치매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제 곧 여러분과 정상적인 교제를 나누지 못할 것에 대해 우려하며 미리 양해를 구하는 내용이었다. 이때 하나 둘씩 앞으로 나와 그를 감싸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누구랄 것도 없이 하나 둘씩 차례로 한마디씩 기도한다. 필자도 가까이 가서 둘러서 눈물로 기도하는 이들의 어깨에 손을 얹고 기도에 참여했다. 그 순간 아까 빵을 먹으며 돌아다니고 헌금바구니 들고 다니던 그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이날 필자는 이들만이 가진 보물,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값진 보화를 보았다. 지극히 작은 자를 주님처럼 대접할 줄 아는 마음이 그것이다. 한국의 수많은 교회와 크리스찬들도 작은 자들을 섬기고 있는데, 세이비어교회가 특별한 것은 예배 안에서부터 작은 자들 하나하나를 한몸으로 존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워싱턴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복지 사역은 교회 예배의 내용과 진행에서부터 잉태되어 자라다가 열매 맺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작은 자들의 조촐한 모임에서 주님의 마음과 임재를 느꼈다.

김세광 교수 / 서울장신대학교ㆍ신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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