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제례의식과 추도예배

[ 논단 ] 주간논단

황순환 총장
2013년 03월 05일(화) 16:03

제례가 우리나라에 언제부터 조상의 '숭배의식'으로 구체적인 틀을 잡았는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씨족사회 때부터 후손의 번성을 기원하고, 재앙을 예방하기 위해 행해졌던 것이 조선시대에 유교적 습속과 융합하여 정형화되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통설이다.
 
천주교가 전래되었을 때, 우리나라에는 이미 여러 종교들이 상존해 있었다. 천주교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교세를 확장하면서도 많은 갈등과 부침(浮沈)을 겪어 왔는데, 그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제례에 관한 것이었다. 그 후, 천주교는 제례를 민간 의식으로 허용하였으며, 이제는 기독교 일부에서도 '제례는 하나의 종교가 아니라, 단지 효의 실천일 뿐이며, 조상에 대한 단순한 추념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전거로 내세워 부분적 수용의 입장을 표방하는 추세다.
 
생명을 이어준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은 아름다운 효심(孝心)임에 틀림없다. 성경은 효를 다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축복의 근거임을 가르치고 있다.(레19:3, 출20:12, 엡6:1-3) 왜냐하면 육신의 어버이께 효도하지 않는 자녀라면 결코 하나님을 섬길 수도 없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효를 중시하는 종교라 할만하다. 이러한 까닭으로 제례문화를 긍정적으로 보려는 신학자와 성직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제례와 기독교 신앙의 통합과 화합의 해결책으로 '과거와는 달리 제사를 우상숭배라 생각하지 않으며, 제례라는 의식에는 새로운 의미(효)가 함축되어 있으므로 조상제사를 허락해도 좋다'는 말을 하고 있다. 아울러 유교는 종교라기보다는 다분히 철학적, 도덕적 색채가 강하므로 제례를 행해도 그것을 윤리적인 차원에서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들의 주장을 과연 단순하게 볼 수 있을까? 진정 이들이 언급하는 제례라는 인간의 행위가 종교적 차원을 배제한 채, 순일(純一)한 도덕적 차원에서만 이해될 수 있을까? 또한, 유교 자체가 종교적 성격이 약하다 하여도, 종교적 요소를 제외한 채, 조상 제사만을 수용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기독교는 '열린 종교'를 지향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유교식 제례를 통합하여, 조상의 기일에 맞추어 가족 그리고 친지들이 함께 모여 추도식이라는 예배를 드린다. 그러나 기독교가 이 땅에서 그간 행해왔던 전통적인 방식의 '제사'를 지내지 않는 이유는 죽은 사람을 신격화하여 숭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신(神)은 오직 하나이며, "하나님 이외의 신은 일체 섬기지 말라"는 성경 말씀을 따르기 때문이다.
 
우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조상이든, 제례든, 실제로는 하나님이 아닌데, 하나님처럼 숭배하고 받들어 복을 구하고 기원하며 섬기는 일련의 형태가 바로 우상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눈에 보이는 상(像)이 아니더라도 우리 맘속에 우리로 하여금 절대가치로 삼게 만들어 우리의 삶을 구속하고 왜곡하는 것은 모두 우상인 것이다. 결국 한국교회가 제례를 금지하는 까닭은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고 존경하는 차원을 넘어 여전히 그 인격이 혼으로, 혹은 신으로 살아있고, 후손들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이 강하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제사를 잘 드려야 가문이 복을 받고 잘 살게 된다는 생각으로 조상을 신으로 숭배하는 '조상신 숭배'를 인정할 수 없다는 해석에 따른 것이다.
 
끝으로 필자는 성경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에게 일차적인 관심을 갖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복음을 접한 사람들이 구원과 영생에 대한 기쁨을 가슴에 품고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며 살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땅의 모든 국민들이 우상숭배가 아닌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영적인 예배가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을 간절히 소망한다.

황순환총장 / 대전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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