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규칙

[ 문단열의 축복의 발견 ] 축복의발견

문단열
2013년 02월 28일(목) 16:25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출 27:21)
 
과학자들이 인간과 원숭이를 비교하는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우선 4세 아이의 지능을 가진 침팬지들에게 겉면이 검은 색으로 칠해진 상자를 줍니다. 그리고 이 상자의 꼭대기와 상자 옆면에 있는 버튼를 연달아 누른 후 아래쪽의 서랍같은 것을 열면 거기에 들어 있는 과자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스스로 과자를 먹을 수 있나 봅니다. 아이들과 침팬지들이 모두 잘 해냈습니다. 이번에는 그 상자의 겉면에 붙어 있던 검은 페인트를 모두 벗겨 냅니다. 그랬더니 안이 훤히 비치는 플라스틱 구조물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윗 부분의 버튼들은 아래 서랍의 과자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들임이 훤히 보입니다. 과자는 처음부터 아래 서랍에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자, 침팬지와 아이들을 이 사실을 인지 한 후 어떻게 행동할까요. 버튼 누르기를 생략하고 과자 서랍을 바로 열어 먹는 쪽은 사람일까요, 침팬지일까요.
 
결과는 뜻밖에도 침팬지였습니다. 그들은 과자와 버튼의 상관관계가 없음을 파악하자마자 버튼에는 손도 대지 않고 바로 서랍을 열어서 과자를 꺼내 먹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걸 뻔히 알면서도 위에서 부터 차례대로 버튼을 누른 다음 과자를 꺼내 먹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본성을 하나 발견합니다. 인간은 '절차의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람들이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존재라고, 적어도 본성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욕구 중에는 '결과욕'만 있는 거이 아니라 '절차욕'도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이 실험은 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버튼 누르기를 '즐거운 규칙'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절차'를 좋아한다는 것은 규칙을 좋아한다는 것이고, 그 말을 다시 더 쉽게 풀어 내면 '무언가 정하고 지키기'를 좋아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인기 있는 '애정남'도 '정했으니 지키자'가 주제이고, 시합이 있을 때면 머리를 감지 않는다는 식의 '징크스'도 사실 '정해 놓고 지키기'의 일종입니다. 설이나 추석이 오면 5천만이 정한듯 민족 대이동의 역사를 연출하는 것 역시 원숭이에게서는 찾을래야 찾아볼수 없는 인간만의 절차이자 규칙인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갈구하는 만큼 '규칙'을 뜻밖에 사랑하는 존재들입니다. 다만 '강요된 규칙'을 꺼려할 뿐입니다. 
 
오늘 본문과 그 앞의 두 장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백성들이 성막과 관련하여 지켜야 할 규례들을 세세히 지정하십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언약궤 장식의 모양과 사이즈까지 지정하시는 구절을 대하며 저는 처음엔 어리둥절 해졌습니다. 하나님이 심심하신가? 성전 안 성물들의 모양과 사이즈가 중요한가? 하지만 그 분은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 세세한 규례와 절차를 '지키는 것'에서 우리가 즐어워하는 존재인 줄을. 그러고 보면 '자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키는 것'에서 그 존재의 가치를 증명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지키는 예배와 희생이 '즐거운 규칙'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문단열 /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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