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와 새로운 소통방식

[ 문화목회 이야기 ] 문화목회 이야기

성석환 목사
2013년 02월 22일(금) 11:14

90년 대 중반부터 문화계에서 공론화됐던 '문화사회'의 이상은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성숙을 위해 제시되었던 문화담론 중 하나였다. 한국의 사회문화적 다원화가 가속화되고, 이미 100만이 넘는 외국인 거주자들과 공존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논의는 시민사회의 공적 토론의 주제가 되었다. 즉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 우리 혹은 나와 다른 이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공적인 논의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시민 민주주의의 새로운 과제였다.
 
당시 주 5일 근무제, 문화산업의 팽창, 대중의 문화적 욕구 증대 등, 새로운 사회변화의 국면에서 문화사회의 주도세력들은 사람들의 일상적 삶이 문화적으로 재편되고 있기에 문화적 소통의 공적 실천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거리를 예술적으로 변화시킨다던가, 간판을 아름답게 교체한다던가, 공공디자인을 정책적으로 지원한다던가, 각 지역의 축제가 활성화된다던가, 한국적 문화콘텐츠가 다양하게 개발된다던가 하는 등의 시천을 통해 공적 영역에서 시민들의 소통 공간이 확대되고 서로 다른 이들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는 일부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문화사회'의 담론이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의 전유물처럼 사유화되고 이념적 색채가 강하게 부각되면서 정작 시민 스스로 소통의 기술을 배우고 체험할 현실세계의 변화는 정책적으로 구체화되지 못했다. 반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취향과 생각을 드러내는 자신들만의 다양한 방식을 원하게 되었다. 정책과 이념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욕망을 대중문화의 다양한 형식에 담아 표출하려는 시도들이 많아졌다. 누군가의 주도에 강요되는 형식이나 제도적 장치로는 대중의 문화적 욕구와 소통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소통은 문화적으로 실천된다. SNS의 발달로 시공을 초월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일상화되고, 같은 것보다는 다른 것에 매력을 느끼며 기존의 것보다 창조적인 것을 선호한다.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고, 자기만의 블러그와 UCC를 제작하고, 찜질방에서 모이고, 몸짱을 위해 운동을 하는 모든 행위가 개인의 사회적 삶을 구성하는 문화적 소통방식이다. 일상생활이 정치적으로 구성되던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른 다원적 현실인 것이다. 물론 소비문화와 물신주의의 폐해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것은 따로 해결할 문제이고 먼저 정치논리나 이념 논쟁에 포획되지 않는 새로운 소통방식을 주목하고자 한다.

그런가 하면 문화사회적 소통을 위해서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구성원들이 함께 공유하는 것도 필요한데, 필자는 몇 해 전 최근 동경의 아사쿠사 지역 마쓰리(축제)를 참관했다가 여대생들과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우리의 지역축제들이 대부분 상업주의에 물들고 관주도로 진행되다보니 지역주민의 자발적 참여와 소통은 기대하기 어렵다. 또 젊은 세대들은 전통적인 우리의 가치와 정서를 기성세대와 공유할 기회가 너무 적다. 세대마다 서로 다른 문화를 향유하는 것이 다양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지만, 공유할 장과 문화적 형식이 있다는 것은 그 다양성을 오히려 더욱 풍부하게 할 자산이 되는 것이다. 
 
성석환 목사 / 도시공동체연구소장ㆍ동숭교회 문화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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