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매품

[ 문단열의 축복의 발견 ] 축복의발견

문단열
2013년 02월 22일(금) 11:11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출23:8)

가끔 황당한 일을 겪습니다. 안국동에 가면 유명한 청국장 집이 있습니다. 워낙 순하고 맛이 있어서 아내와 함께 시내에 가면 자주 들리는 곳입니다. 언제나 점심 시간에 갔지만 하루는 시간이 좀 늦어 3시 경에 식당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주인 아저씨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우리를 저지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시냐고 묻자, 귀를 의심할 만한 말이 들려왔습니다. "일하는 아줌마들 낮잠 자는 시간이라 안돼요." 저는 다시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아저씨는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쉿, 아줌마들 잠잔다니까요!"하고 절 나무랐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걸 '서비스 마인드 전무'로 봐야 할지, 아니면 '근로자의 천국 실현'으로 봐야 할지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했습니다. 종업원들의 점심 오수 시간은 돈 받고 팔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어느 식당 종업원들의 꿀 같은 낮잠은 '비매품'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의 한복판에 살고 있어서 뭐든 돈만 내면 살 수 있을 것 같은 세태이지만 그래도 아직 '비매품'은 많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조상 대대로 물려 받은 꽃병이 그렇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선산이, 또 다른 이들에게는 옛 애인에게서 받은 금반지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우리가 마음만 바꿔 먹으면, 혹은 우리의 삶이 끼니를 걱정할 지경에 이르면 언제든지 비매품이 아니라 '세일 품목'으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영원히 '비매품'으로 남아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정의감' 그리고 '자유'입니다.
 
이런 것들은 돈으로 틀어 막는 것을 '뇌물'이라고 합니다. 사실, 뇌물이라는 말은 우리와는 관계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뇌물을 건네본 적도 없고, 뇌물을 받아 본 적은 더더욱이 없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봉투에 돈을 넣어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슬쩍 우리 뒷주머니에 밀어 넣으며 '잘 부탁한다'고 말하는 그것만 뇌물일까요. 사실 훨씬 위험한 뇌물이 모두가 보는 곳에서 우리에게 노골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뇌물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위험천만한 뇌물 봉투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고액 연봉'. 언제부턴지 어디를 가나 연봉 이야기 뿐입니다. 누구는 27세에 1억을 받는다더라, 누구 부인은 CEO가 되어 2억을 받는다더라, 혹은 어떤 펀드 매니저는 10억 이하로는 스카웃 할 수 없었다더라…. 하지만 액수가 얼마이든 '연봉'이라고 쓰여 있는 봉투를 내미는 사람이 당신에게 무슨 일을 얼마나 시킬지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고용주 입장에 20년 이상 서본 제가 단언합니다.
 
그 돈은 공짜가 아닙니다! 친구들에게 뻐길 생각에, 엄마에게 칭찬 들을 생각에, 혹은 멋진 스포츠 카를 뽑을 생각에 덥석 무는 순간 여러분은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고, 세상을 준대도 팔수 없는 그리고 여러분이 태어날 때에 여러분의 영혼에 하나님이 고이 심어 주신 '자유'를 팔아치우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무도 말로는 하지 않지만 다른 데 보다 월등한 고액을 제시하고 있다면 손 내민 사람의 마음에 '네가 받은 것을 열갑절로 뽑고 말테다'라는 마음이 있는 것이 십중팔구입니다.
 
모든 연봉이 다 뇌물은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이 받는 연봉이 뇌물인지 아니면 정당한 노동의 댓가인지를 금방 알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있습니다. 돈 몇 푼의 댓가로 그들이 당신의 일요일을, 혹은 휴일을 요구하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자유를 노리는 '뇌물'입니다. 그저 생계를 유지하러 시장에 나왔다가 영원한 노예로 팔려가는 비극을 겪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께서 주신 당신의 자유는 '비매품'입니다. 영원히.

문단열 /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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