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를 넘어 신뢰로!

[ 젊은이를 위한 팡세 ] 젊은이를 위한 팡세

오대식 목사
2013년 02월 20일(수) 16:25

영원한 삶, 살 수 있도록
구원 주신 하나님을 신뢰

하나님께서 창조 때부터 인간에게 주신 달란트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름을 짓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물들의 이름을 아담이 지은 것을 보면 그의 능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달란트를 다시 거두어 가지 않으신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은 지금도 무엇이든지 이름을 지으려 한다. 지금이야 새로 이름을 지어야 할 동물은 없지만, 사람들은 새로운 상황을 보면서 이름을 지으려고 한다. 그것이 인간의 버릇인 것 같다.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못 산다>'는 이름을 붙였다. '얼굴이 못생겼으면 <못났다>'고 이름을 붙였다. '사업이 잘 안 되면 <실패했다>'고 말한다. '원하는 학교에 입학을 하지 못했으면 <불행>'이라고 말한다. '건강을 잃고 병이 들면 <불쌍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자신이 이름을 붙여놓고 그 안에서 스스로 기뻐하기도 하고 힘들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삶이 아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잘 살고 못 사는 기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다. 그 구원을 알게 하시기 위해 이적을 베푸셨던 것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주시기 위해 덜 가치 있는 것을 사용하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서 구원을 알리기 위하여 베푸신 이적은 '축복'이라 여기는 반면, 축복 그 자체인 '구원'에는 별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매우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정확하시다. 그리고 우리를 영원한 삶으로 인도하신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신뢰는 우리 기독교의 주변적 가르침이 아니라 실제적 핵심이다. 삶의 모든 문제를 풀어주는 핵심인 것이다. 
 
존 캐버너프(John Kavanaugh)라는 윤리학자가 인도 콜카타(Kolkata:구, 켈커타로 불림)에 죽어가는 자들의 집에 3개월 간 봉사하러 갔다. 그는 자신의 여생을 보람되게 보낼 최선의 길을 찾는 중이었다. 그는 그 곳에서 봉사를 하면서 마더 테레사 수녀에게 기도부탁을 하였다. 테레사가 물었다. "뭐라 기도해 드릴까요?" "예, 확실한 답을 얻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때 마더 테레사 수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확실한 답이야말로 우리가 붙들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놓아야 합니다. 확실한 답이 내게는 있어 본 적이 없습니다. 내게 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 신뢰입니다. 그러니 당신도 하나님을 끝없이 신뢰하도록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잡는 기도와 놓는 기도가 있다. 잡는 기도를 의뢰라 한다면 놓는 기도는 신뢰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뢰를 요구하신다. 우리는 돈이 더 많았으면 좋겠고, 더 건강했으면 좋겠고, 더 오래 살면 좋겠고, 고통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축복을 주님께 바라고 의뢰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 속에서 필요한 것을 채우시고 우리의 인생의 길목에서 더 편한 길로 우리를 이끄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왜냐하면 제일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오늘도 선한 일을 계획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소원을 의뢰하려는가? 아니면 제일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계획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려는가? 청년의 때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더 깊은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오대식 목사/ 높은뜻정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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