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자에게 오히려 감사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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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 목사
2013년 02월 19일(화) 16:22

7번방의 선물(이환경, 드라마, 15세, 2013)
 
'7번방의 선물'이 호화 캐스팅에 거대자본을 들여 만들어 한국 첩보 영화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평을 받으며 관심을 끌었던 '베를린'보다 흥행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무거운 느낌보다 가벼우면서도 코믹한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특성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두 영화의 흥행 기록을 비교하면서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영화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평론가와 네티즌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는 세계 어디서나 종종 일어나는 일이나 이번 경우는 조금 더 특이한 것 같다. 출연 배우들을 비교해보아도 그렇고 제작비를 비교해보아도 그렇다. 게다가 한국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첩보 영화이고 게다가 평론가들에 의해 괜찮게 만들어졌다는 평을 받고 있었던 영화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시간을 두고 봐야 알겠지만 이번 경우 흥행과 네티즌의 평가가 평단의 기대와 전혀 다른 차이를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한국인이 선호하는 코믹한 요소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다른 경우에는 종종 코믹한 요소가 결정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번 경우는 다르다. 달라도 많이 다르다.
 
2012년 대선 전후로 대한민국의 현실과 관련해서 가장 주목을 끈 영화는 아마도 '레미제라블'일 것이다. 정의가 사라진 시대, 그런 사회적 환경에서 고통 받고 신음하는 민중들의 현실을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오래 전 이야기지만 오늘 우리들의 현실과 결코 멀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대선의 현실과 깊은 관계 속에서 감상된 '광해-왕이 된 남자' 역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였고, 이 영화 역시 권좌에 앉은 자들에 의해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어느 정도는 조명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엔 권력 중심부의 현실을 다룬 것이었다.
 
'레미제라블'에 대한 감동의 여진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7번방의 선물'이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옥에 갇힌 자, 곧 성경에서 말하는 작은 자들이 처한 부조리한 현실은 물론이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애환을 다루고 있다. 흥행의 이유는 바로 작은 자들의 현실에 관객들이 감정적으로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몇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영화의 틀 가운데 하나인 법정영화의 요소는 이미 '도가니', '부러진 화살' 등에서 볼 수 있었듯이, 한국 사회에서 정의가 부재하는 현실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모티브다. 사건의 진실보다 윗선의 지시에 따라 진행되는 짜 맞추기 수사,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경찰, 권력의 편에 서는 또 다른 권력의 횡포 등 우리 사회 민중들에게서 흔히 경험되는 부조리한 면을 잘 드러내었다. 청문회를 지켜보다 보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확인한다. 교도소 수감자들 사이에서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모습은 코믹함을 넘어 오늘 우리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공동체의 모습을 담고 있기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장면들이다. 게다가 억울하게 죽은 지적 장애인인 아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스스로 변호사가 된 딸이 사법연수원 모의재판 과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아빠를 안아주는 장면은 수많은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한편, 영화제목에 나타나는 '선물'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선물은 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혹은 약속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선물로서 관객들은 분명 딸 예승을 떠올렸을 것이다. 딸 바보인 용구(류승룡 분)의 소원을 들어준 결과였을 뿐만 아니라 뜻하지 않게 교도소의 분위기를 다르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변호사로 성장한 예승이 아버지의 억울한 살인 누명을 벗겨줄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벌어지는 성탄절 해프닝에서 볼 수 있듯이 어린 예승은 7번방은 물론 교도소 수감자 모두에게 선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혹시 지적 장애인인 용구를 생각할 수는 없을까? 왜냐하면 그의 출현으로 교도소의 분위기가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교도소 과장의 상처받은 마음도 치료받게 되었고, 마침내 딸의 장래를 위한 아빠 용구의 희생 때문에 딸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결과를 가져온 최초의 이유는 바로 교도소 안에서 벌어진 싸움에서 용구가 자신의 몸을 던진 것에 대한 보은으로 이뤄진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지적 장애인 용구가 7번방의 선물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중요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작은 자로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다. 작은 자는 대체로 긍휼의 대상이고 우리가 보살펴야 할 존재로만 여겨진다. 그래서 때로는 의무감이나 부담감을 갖는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그들을 통해 우리가 주님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니, 그것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을까? 작은 자가 선물이라는 생각은 그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나 태도에 전면적인 수정을 가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작은 자는 더 이상 우리에게 부담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에게서 혹은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의무감이나 부담감을 갖는 대신 오히려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베풀었다고 생색내지 말아야 할 것이며,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부담감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오히려 그들을 우리 가운데서 만난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에게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최성수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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