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쭙고 의논드리고, 부탁드리는 생태복지를 기대하며

[ NGO칼럼 ] NGO칼럼

배승룡관장
2013년 02월 13일(수) 17:11

[엔지오칼럼] 
  
요 몇 년 사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두중 하나가 있다고 한다면 '복지논쟁'일 것이다. 이제 한국사회도 유럽과 OECD 선진국만큼은 아니지만 사회복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이에 따른 제도적 기틀이 어느 정도 마련되어 가고 있으며, 이를 증빙이라도 하듯이 지난 19대 대통령선거를 위시로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및 지방의원선거 등 거의 모든 선거에서 온도의 차이는 있지만 복지에 대한 공약이나 이에 대한 정견이 빠지면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사회복지하면 국민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정부부서가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인데 요즈음 같아서는 복지에 대한 외연확대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사회적 욕구에 대한 대응방안이기도 하겠지만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는 물론이거니와 행정안전부(지방자치, 마을기업 등), 고용노동부(취약계층 일자리 창출 등 고용복지), 교육과학기술부(교육복지), 국토해양부(주거복지), 국방부(군사회복지), 문화체육관광부(문화복지), 통일부(새터민복지), 농림수산식품부(농어촌복지)등 사실상 정부산하 대부분의 부서들이 직간접적으로 사회복지를 위한 사업과 지원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이다보니 혹자는 작금의 사회복지현실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서 사회복지가 자칫 서비스 혜택을 받고 있는 이들에게 복지의존성을 심화시키거나 심한 경우에는 도덕적 해이를 일으킬 수 있다고 평가한다. 한편 복지혜택을 받고 있는 대상자 또는 복지수혜자(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단어를 좋아하지 않지만)들은 국가의 혜택이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아예 이마저도 받지 못하고 있는 차상위계층 등은 국가의 복지제도와 정책이 틀렸다고 평하는 기이한 모습들이 연출되고 있다.
 
이러한 것을 다 감안하더라도 이제 우리사회는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또는 제3의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는다고 하여도 정도와 방법의 차이는 엄연히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다양하고 폭넓은 욕구를 거부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 되어 버렸고 시간이 흐르면서 복지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대한 양적 팽창은 부인할 수 없는 대세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러한 작금의 우리사회의 모습과 복지상황에서 아주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이 하나 간과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는데 이는 다름아닌 사회복지를 공부한 사람이면 사회복지개론 첫 시간에 꼭 배우는 '사회복지는 서비스대상자들의 문제와 욕구에 기반해야 하고 사회복지서비스를 통하여 대상자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어야 한다'는 부분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복지를 실천함에 있어 대상자들 개개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삶의 기본권을 보장해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에 모든 사회복지인들은 공감하고 그렇게 하고 있을진데, 국가의 정책과 제도적 측면의 복지가 양적팽창을 하고 있는 요즈음 사회복지실천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대상자들의 문제와 욕구를 기반으로 한 복지가 행해지고 있느냐에 대한 명쾌한 답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판단은 필자만의 기우일까?
 
사회복지기관들은 늘어나고 이에 대한 예산은 증액되고 프로그램은 다양화되고 있는 시점인데 우리사회 약자들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인격과 자존심의 상처, 낙인, 소외, 의존성과 추한모습 등 부작용이 양산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선진복지국가들은 프로그램이나 시혜차원의 복지를 실행하기보다는 국민들의 시민권, 참정권, 선택권 등을 존중하면서 복지서비스를 크게 드러나지 않게끔 실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복지는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안녕', '평안'을 실현하는 것이다. 주는 이의 안녕, 평안이 아니라 그것을 구현하기가 어려운 우리의 작은 벗들의 안녕과 평안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이제 우리사회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나 종교기관 등 NGO 차원에서 실시되고 있는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복지서비스나 혜택에서 벗어나 서비스를 받을 이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선택권을 존중하며 복지기관의 기계적 서비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가 어려운 이웃을 보듬어주고 돌봄시스템을 구축하는, 그래서 '사람, 복지, 지역사회가 살아나는' 생태적복지가 필요치 않을까 제안해본다. 이제 일방적인 공급자 중심의 복지는 지양하고, '여쭙고 의논드리고, 부탁드리는' 생태복지를 실천하자.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하는 생태복지의 중심에 교회가 설 수만 있다고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터이고.

배승룡관장 / 한국장로교복지재단 신곡실버문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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