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높은 곳, 저 낮은 곳

[ 기고 ] 저 높은 곳, 저 낮은 곳

최태영교수
2013년 01월 30일(수) 15:14

[독자투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는 제목의 찬송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필자가 젊었을 때였으니, 지금부터 약 3,40년 전이었나 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가사 일부에 대한 시비가 일어나더니 점점 그 찬송은 매력을 잃어갔고, 요즘에 이르러서는 듣기가 어려워졌다. 그 대신 '저 낮은 곳을 향하여'라고 말할 수 있는 슬로건들이 유행을 타게 되었다. 공자의 말에 의하면 노래는 그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가 대세였다가 수십 년 만에 약세로 변하고, '저 낮은 곳을 향하여'가 명함도 없다가 대세가 된 것은 시대정신의 변화를 반영한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바뀌었고 그에 따라 우리 교회도 그만큼 바뀌었다는 뜻이다.
 '저 높은 곳'은 하늘,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을 가리킨다. 수십 년 전의 교회는 그렇게 위를 향하는 열망이 컸다. '저 낮은 곳'은 이 땅, 가난한 사람, 고난의 현장을 가리킨다. 오늘날의 교회는 이 땅의 가난한 사람과 고난의 현장에 대한 관심이 크다. 물론 아직도 실천은 미흡하지만 마음만은 그렇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위에 계신 하나님 보다 낮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천국은 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 아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
 
높은 곳과 낮은 곳에 대한 각각의 관심은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마음을 이분화 시켰다. 사람들은 이 둘 중 하나에 자기 자신을 동일화하고는 다른 쪽 사람들을 경원하고 질시한다. 높은 곳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보수로, 낮은 곳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진보로 구분한다. 신학적으로는 전자를 복음주의로, 후자를 에큐메니즘으로 규정한다. 교회적으로는 전자에 도시의 대형교회를, 후자에 농촌의 작은 교회를 대입시킨다. 그리고는 서로 대립시키고 그 사이에서 선과 악을 논하며 찬반을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저 높은 곳에 대한 지향과 저 낮은 곳에 대한 지향은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과 고난 당하는 자들을 찾는 것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은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 받는 가난한 백성들을 친히 찾아주시는 분이시지 않는가? 높은 곳에 대한 지향과 낮은 곳에 대한 지향은 이분법적 도식과는 달리, 일치하는 것이며 따라서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는 함께 가야 하고,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즘은 함께 가야 하고, 대형교회와 작은 교회도 함께 가야 한다. 이것을 이분법적으로 서로 충돌시키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을 뿐더러 이론적으로 맞지도 않은 일이다. 오늘날 대세인, 낮은 곳을 찾는 사람들은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힘써 불러야 하고, 그 찬송을 평소에 즐겨 부르는 사람들은 저 낮은 곳을 힘써 누벼야 할 것이다.

최태영교수 / 영남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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