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도들과 함께 떠난 일본 평화기행(하)

[ 교계 ] 일본 평화 기행(하)

임성국 기자 limsk@pckworld.com
2013년 01월 28일(월) 13:12

강제징용-원폭피해-이름도 없이 …
조선인 인권 위해 싸운 일본인 위해 평화의 노래
"동북아시아 평화 위해 가해자ㆍ피해자 위로, 용서, 화합의 길로"

   
▲지난 14~18일 기독교평화센터가 기획한 일본 평화기행 참가자들이 나가사키 지역을 순회하며 평화의 발자취를 돌아봤다. 사진은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에서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일행, 원폭 박물관내에서 전시물을 관람하는 참가자들, 26인 성인기념성당에서 참가자들이 단체사진을 남겼다. (사진 위에서 시계방향)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고, 양심 있는 일본인 평화 활동가들이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당했을 아픔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반성하게 됐습니다." 정시경 전도사(부산장신대학교 신대원)
 
고쿠라를 벗어난 평화기행은 원폭의 도시 나가사키로 향하는 내내 바른 역사, 참된 평화의 정의를 마음속에 되새겼다. 그리고 양심 있는 일본의 인권 운동가와 함께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각오를 다졌다.
 
평화의 끈은 이어졌다. 지난 16일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가 시작된 도시,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도시, 2만여 명에 달하는 조선인 강제 징용 노동자가 있던 도시,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강제징용 조선인들의 발자취와 원자폭탄의 상처가 나가사키 곳곳에도 묻혀서인지 방문단의 아픔을 나누는 듯 가는 길목마다 비바람이 몰아칠 기세다.
 
첫 목적지는 소토메의 엔도 슈사쿠 문학관이다. 국내에는 '침묵'의 저자로 알려진 일본의 대표적인 가톨릭 작가를 기념해 지난 2000년 설립됐다. 침묵의 무대, '침묵의 바다'를 등지고 있는 엔도 슈사쿠 문학관에는 엔도 씨의 생애와 발자취, 문학과 관련된 전시물이 2만 5천여 점 이상 전시됐다. 작품 속에 등장한 박해와 순교의 아픔을 푸른 바다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특히 차로 5분 정도 소요되는 곳에 세운 침묵비는 '인간은 이렇게 슬픈데, 바다는 푸르기만 합니다'라는 침묵의 한 구절을 새겨 놓고, 죽음 앞에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묘사했다.
 
이어 일행은 1882년 일본의 서양개방과 함께 도로 신부가 설립한 '시츠성당'을 찾았다. 침묵비 언덕 너머에 있는 시츠성당은 일본 천주교회 성소의 온상으로 유명하다. 일본의 종교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종교 역사에 눈뜬 일행은 오카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이사장:다카자네 야스노리)에 도착했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자료관은 조선인에 대한 일본의 가해 책임을 묻기 위해 노력한 오카마사하루 목사를 기리기 위해 일본 시민이 건립한 곳이다. 한국인에겐 치욕스러운 역사가 모여있다. 하지만 20평 남짓의 3층 건물에 빼곡히 전시된 사료에는 조선인 피해자의 아픔과 일본의 보상,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하며 일하는 일본 평화 활동가들의 노력이 묻어났다. 평화 기행단뿐만 아니라 한국인에겐 위로의 현장이고, 평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시발점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여전히 가해의 책임을 느끼고 반성하는 일본인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일 양국의 끊임없는 교류와 소통만이 평화를 구축하는 대안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자료관은 100%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어 한국 정부와 교회의 관심이 더욱 필요해 보인다.
 
자료관을 나온 일행은 1백미터 인근에 위치한 26인 성인 순교비와 기념관도 방문했다. 일본의 기독교 박해로 피를 흘린 순교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곳은 동아시아 최초의 순교 사건을 기념하고 있었다.
 
일본의 순교 역사를 가슴에 새긴채 침묵으로 하루 일과를 정리한 일행은 일본 일정의 마지막 날 아침, 나가사키 평화의 상징인 평화공원과 원폭자료관을 찾았다. 인구 22만명의 도시 나가사키는 원자폭탄으로 7만3천여 명이 사망했고, 7만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중 조선인은 1만여 명 이상이었다. 일본은 원폭 피해 사망자를 추도하기 위해 기념관을 세웠지만 평화기념상이 위치한 장소는 당시 조선인과 동아시아인들이 탄압받던 장소였다. '피해자'의 상처는 부각하고 '가해자'의 기억은 망각한 일본의 상황을 여실히 대변했다.
 
하지만 원폭 당시 사망한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일본인들의 노력은 조선인 추모비에서 묻어났다. '이름 없는 일본 시민들'이 주인공이다. 그곳에서 일행은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을 추모했다. 그리고 이 땅의 진정한 평화를 위한 헌신을 다짐했다.
 
추모 후 서이삭전도사(호남신학대학교 신대원)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위로하고 용서하며, 화합하는 새로운 길을 나서야 한다"며 "그 일을 위해 삶과 가정, 우리의 교회부터 작은 평화를 실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이은재전도사(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생)는 "지난 역사를 바로 잡고, 평화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정의가 없는 평화는 없을 뿐만 아니라 평화운동은 우리 중 단 한사람이라도 할 수 있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이번 평화기행을 기획한 오상열목사(기독교평화센터)는 "다시 한 번 한국과 일본, 더 넓게는 동북아시아의 평화 구축을 위해 크리스찬들이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며 "나가사키 침례교회와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되면서 평화기행이 일회성 행사가 아닌 평화의 다리가 되는 길이 열렸다. 한국교회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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