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 그렇게 좋은 예수 나도 믿을라요- 국경희권사(하)

[ 향유와 옥합 ] 평생 번 돈 하나님 나라 위해

강영길
2013년 01월 22일(화) 11:01
[향유와 옥합]

   
오래 전 황덕연목사님이 국 권사가 가진 단돈 50만원으로 다른 마을에 교회를 하나 지으라고 했다. 50만원으로 개척이라니, 말도 되지 않았다.

"개척? 빈주먹으로 손바닥 치고 가서 개척을 하는 것이여. 돈 50만 원이면 부자여. 그런 소리 허들 말어."

개척하면 하나님이 다 이뤄주신다는 주장이었다. 목사님의 말은 실현되었다. 단돈 50만원으로 짓기 시작한 교회가 대지리교회다. 국 권사는 걸레와 수세미를 만들어 팔아서 남은 돈으로 교회 하나를 다 지었다.

그보다 더 전에, 국 권사가 아직 몸이 성치 않을 때 황 목사님은 국 권사더러 신학생을 하나 가르치라고 했다. 국권사의 재정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나 쉰 떡 먹는 쓰디 쓴 심정으로 순종하기로 결정했다. 그때부터 진득찰이라는 한약재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신학생 등록금이 나올 때면 이것이 불티나게 팔렸다. 그러나 신학생이 군대를 가자 단 한 개도 팔리지 않았다. 그러다 한두 개가 팔리면 신학생이 휴가를 나왔다. 휴가가 끝나면 또 한 개도 팔리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신학생이 공부를 마칠 때까지 학비를 다 댔다. 그 신학생이 최병효, 지금 광주 금호지구 성광교회 목사님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놀랍고도 놀라운 분이어서 순종하는 자에게 무엇이든 해 주신다.

최병효 신학생과 함께 지은 교회가 담양읍 근처 남부교회다. 교회를 다 지으니 남은 빚이 8백만원이 있었다. 그 빚도 진득찰을 만들어서 다 갚았다. 그래서 국 권사는 그 진득찰이 최병효목사님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무언가를 줄 때 흘러갈 곳을 정해 놓고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 금성교회 담임인 황 목사님이 국 권사더러 89년에 덕성교회로 가라고 했다. 덕성교회 전도사님이 아직 대학원을 안 했으니 대학원도 보내고 교회도 건축하라는 명령을 주셨다. 그때부터 덕성교회로 옮겨서 93년도에 건축을 했다. 건축을 마친 뒤 지금은 영적 고향인 금성교회를 다니고 있다.

국 권사가 손수 지은 교회만 해도 셋이나 되므로 교회를 많이 지었다고 칭찬하자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지었겄소? 하나님이 지으셨지."

마을의 외딴 곳에 있는 국 권사 집에는 늘 태극기가 달려 있다. 수세미도 팔고 걸레도 팔고 진득찰도 팔게 되니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사람들 찾아오기 쉬우라고 태극기를 달았는데 이제는 국 권사 집이 태극기 달린 집으로 불리고 있다.

국 권사는 기초 생활 수급자다. 국권사가 평생 번 돈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썼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남은 것이 없으나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시기를 바랄 뿐이라고 한다.

국 권사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사람들에게 당부허고 싶은 말이 있소. 우선은 교회 출석 잘 허는 것이 가장 중요하요. 또, 돈 없다고 핑계하지 마시오. 내가 10원짜리 헌금허기 싫어서 5원으로 바꾸어서 넣던 사람이오. 나는 헌금 설교 안 하는 목사님들이 하나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인간의 눈치를 본다고 생각허요. 헌금 설교 싫어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거이 아니라 돈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허요. 세상의 주인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니까 내가 번 돈 내 마음대로 쓰면 절대 안 되요." 국 권사께 물었다. 평생을 어떻게 혼자 사셨느냐고. 그러자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 혼자 안 살았소. 예수님과 살았소."

찬송가 '저높은 곳을 향하여'를 가장 좋아한다는 고령인 국 권사, 얼마 전 허리를 다쳐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필자를 만난 국 권사는 그래도 배짱 좋게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나 워디 더 써묵을 디 없소?"

강영길/온누리교회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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