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권에 깊은 고민 안긴 '4개 단체 공동선언문'

[ 선교 ] WCC 4개 단체 공동선언문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3년 01월 21일(월) 11:37
"논란 확대 안할 것, 깊은 갈등 속 희망의 단초삼아야"

WCC 10차 총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공동 선언문이 당초 취지와는 달리 에큐메니칼권에 깊은 고민을 안겨줬다.

지난 17일 실행위원회를 열었던 한국기독교회협의회는 공동 선언문에 대한 논의를 정식안건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오랜 시간을 할애해 설전을 벌이며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했다. 참석자들은 "공동 선언문 자체가 지닌 문제가 매우 크고 도저히 에큐메니칼권에서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고, 유구한 역사를 가진 에큐메니칼권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에 대한 개탄의 한숨과 통한의 눈물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이날 공동선언문 안건은 실행위원회의 회무를 모두 마친 뒤 교회협 회장 김근상주교의 제안에 따라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날 김근상주교는 "교회협 총무 이름으로 발표된 문서로 인해 고통받거나 상처받은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며, 사과의 인사를 먼저 전했다. 이어 김영주목사는 "잘 해 보겠다는 마음이 앞서서 절차와 과정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생각과 용기가 부족해 그 경계선을 바로 설정하지 못했다. 이 일은 전적으로 내 책임 임을 통감하며 필요한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면서, 눈물의 소회를 밝혔다.

하지만 김영주총무의 발언 이후 실행위원들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는 반응 속에서 깊은 안타까움들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정교회 한국 대교구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는 "신학적인 오류가 상당한 문서로 러시아 정교회는 물론이고 WCC의 회원교회들 모두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폐기하고 짐을 더는 것이 맞다"면서, 조속한 대책을 촉구했다. 특히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는 발언에서 이미 세계총대주교가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고 부끄럽다고 반응했다고도 말해 자칫 이 선언문이 세계로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특히 개종문제에 대해서 실행위원들은 "이 문제는 정교회와 한기총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와 같은 중대한 사안"이라며, 개종문제로 인한 또 다른 갈등이 생기는 것을 경계했다. 격론 끝에 교회협은 의장인 김근상주교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는 선에서 입장을 정리했고 김 주교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에큐메니칼권에서는 이 일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염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 인사는 "한기총 쪽에서 이 일을 엉뚱한 방향으로 확대하려는 분위기가 있는데 여기에 동조할 이유는 없다"면서, "일부에서는 김영주총무 책임론도 거론되는데 그럴 이유도 없고 이번 일로 에큐메니칼권이 일신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오히려 약이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에큐메니칼권 전반의 정서를 반영한 것으로 대체적인 분위기가 이번 갈등을 딛고 새롭게 일어서자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제는 한기총이다. 본교단을 비롯해서 국내 주요교단들이 일제히 탈퇴를 결정하고 한국교회연합에 가입하면서 과거의 위상을 상실한 한기총이 이번 선언문으로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 실제로 한기총은 지난 14일 열린 실행위원회에서 이번 선언문 합의를 "한기총의 승리"로 인식하는 시대착오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홍재철목사는 "사실상 교회협이 항복한 것이다. 이 선언문을 영어로 번역해 제네바로 보낼 것인데 만약 그들이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WCC 총회를 열지 못하고 또한 내가 WCC 총회에서 이를 낭독할 것"이라는 실현 불가능한 발언을 하며, 실행위원들에게 추인을 종용했다. 홍 목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일간지 광고를 통해 선언문을 공개하는 등 이번 선언문을 확산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큐메니칼권이 이미 이번 선언문에 대한 논란을 확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정리한 상황에서 이 문제가 일부의 뜻대로 증폭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부상하고 있다. 교회협 실행위원회에서 신복현목사가 했던 "에큐메니칼 정체성에 위기로 받아 들일 수 있지만, 다시 서로를 보듬어 안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길 바란다"는 당부가 현재 에큐메니칼권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 관계자는 "이번 일로 인해 많은 에큐메니칼 인사들이 눈물을 흘렸는데, 이 눈물 위에 에큐메니칼 운동의 정신을 더욱 굳건히 세워 나갈 수 있다"면서, "통한의 눈물 위에 미래를 향한 굳건한 기둥을 세우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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