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이냐, '화해'냐

[ 문단열의 축복의 발견 ] 축복의발견

문단열교수
2013년 01월 16일(수) 13:55
[축복의 발견]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눅 6:1~5)
 
어린 시절 전 장난꾸러기였습니다. 다섯 살 어린 여동생에게 사탕 준다고 눈을 감게 하고 입에 걸레를 넣기도 하고 동생의 물건을 빌려다가 매번 부수어놓기 일쑤였습니다. 당연히 엄마에게 혼나는 건 언제나 제 차지 였는데, 한 번은 사정이 정 반대가 된 날이 있었습니다. 한옥의 대청마루에서 마당 쪽을 뒤로 하고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책을 읽고 있었는데 다섯 살난 동생이 지나다 저를 불렀나 봅니다. 제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대답을 안 했는데 동생은 갑자기 저를 마루 아래로 밀어버렸습니다. 마당에 내동댕이 쳐졌고 엄청 놀랐던 기억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엄마가 뛰어왔습니다. 사태를 파악한 엄마는 "오빠한테 잘 못했다고 해!"하고 동생에게 사과를 시켰습니다. 워낙 자존심이 센대다 항상 내 사과만 받고 살던 처지라 동생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엄마의 얼굴이 점점 무서워지자 동생은 마지 못해 퉁명스럽게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곤 뒤돌아 서려 했습니다. "제대로 해!" 엄마의 불호령이 다시 떨어졌습니다. 동생은 "오빠…"하고 말하다 말고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엄마와 내가 동생을 달래면서 사건은 마무리 된 것은 그 "오빠…"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조그만 아이에게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상황을 처음으로 되돌리는 것은 그렇게나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하지만 엄마의 개입으로 현장에서 화해하지 않으면 풀어지지 않은 분노의 실타래는 아무리 가족간이라도, 또 아무리 나이어린 시절이라도 꼬이고 꼬여 평생 우리 마음 밑바닥에 엉킨 상태로 우리의 발목을 잡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진심으로 사과 하려다가 말고 울어버린 그 "오빠…"는 '화해'의 어려운 신호였습니다. 동생이 우는 것에서 이미 전 동생을 용서해버렸으니까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화해'의 단계까지 가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일을 마무리 지어버리는 행동이 그 직전에 존재했습니다.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퉁명스럽게 "미안해"하고 말 한 그 행동, 그것은 '해결'이라는 단계입니다.
 
엄마의 사과하라는 말은 사실 '관계'에 관한 것이지 '과업'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우리는 명령을 형식적으로 수행하는 것에서 일을 마무리 짓는 '해결'이라는 단계를 넘어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해결은 '일'에 관한 것이고 '화해'는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성가신 '화해'보다는 손 쉬운 '해결'선에서 모든 것을 마무리 해 버립니다. 그런데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성경 66권이 모두 '관계'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명이나 비전, 임무와 소명, 그 어떤 것도 '과업'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다 화해를 위한 사명, 화해를 위한 과업, 화해를 위한 비전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말들을 그저 문자 그대로 '지켜 내는 것'에만 온 정신을 집중합니다. 그냥 "미안해"라고 퉁명스럽게 던지기만 하는 것입니다. 사실 어머니의 명령은 형식적으로는 지켜 내지 못한 "오빠…"로 다 완수되었습니다.
 
안식일은 '무조건 쉬는 날'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화해의 날'입니다. 두 가지 화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족이나 이웃과의 화해, 또 하나는 하나님과의 화해, 즉 관계 회복입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는 말씀의 '인자'는 예수님 자신이고 예수님이야 말로 '화해'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우리 사이의 화해였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화해였습니다. 안식일은 그리고 오늘 우리가 맞이한 명절의 주인은 '화해'입니다.
 
문단열 /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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