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여전도회 "뗄 수 없다"

[ 여전도회 ] 여전도회주일 기획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3년 01월 11일(금) 13:09

[여전도회주일 기획]

1930년대 女선교사들 활약에 총대들 감동
'선교여성' 격려 위해 여전도회주일 제정
 
본교단 총회가 여전도회 주일을 결의한 것이 과연 언제일까? 본교단이 여전도회 주일을 제정하고 선교여성들의 사역을 격려하기 시작했던 역사는 이미 백년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난 1936년 광주 양림교회에서 열린 제25회 총회에서 본교단은 매년 1월 셋째 주일을 여전도회 주일로 섬기기로 결정했다.
 
당시 총회에서 여전도회 주일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던 이유는 여전도회가 감당해 오던 해외선교 보고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선교하는 여전도회의 역사는 19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창기 여전도회는 1930년 열린 여전도회 3회 총회에서 중국 산동성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정했을 정도로 선교에 대한 관심이 컸다. 여전도회를 조직한 직후부터 전도비 명목으로 선교기금을 조성했던 여전도회는 선교사를 직접 파송할 때가 됐다고 판단하고 3회 총회에 해외 선교사 파송을 정식 안건으로 상정했다.
 
초창기 선교여성들의 선교에 대한 열정은 매우 뜨거웠던 것으로 보인다. 선교사 파송을 정식으로 다루기 2년 전인 1928년에 이미 여전도회는 현재 화폐 기준으로 3천만원의 선교비를 마련했을 정도였다. 이때부터 사실상 여전도회의 정체성은 선교로 귀결된다. 여전도회 3회 총회의 결정에 따라 여전도회가 최초로 파송한 선교사는 김순호전도사로 총회 결의 이듬 해인 1931년 중국 산동으로 파송한다.
 
이어 여전도회는 1933년에 윤정희선교사를 남만주로 파송했고, 1934년 한가자선교사도 남만주로 파송했다. 유안심선교사는 1937년 북만주로 파송하면서 초창기 여전도회는 선교하는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 이들 선교사들 중 김순호, 윤정희, 한가자선교사가 한 자리에 모였던 해가 바로 1936년이었다. 이들 3명의 여성 선교사들은 교단 25회 총회에 참석해 총대들에게 감격적인 선교보고를 했고 감동을 받은 총대들은 큰 박수로 선교사들과 여전도회의 사역을 격려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당시 총대들은 여전도회가 솔선수범해서 진행했던 해외선교를 기도와 재정으로 뒷받침한다는 취지로 '여전도회 주일'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선교하는 공동체인 여전도회를 격려하기 위해 제정된 여전도회 주일. 그만큼 여전도회 전국연합회가 선교에 대해 쏟는 열정의 크기는 그 어떤 사역보다 크다. 여전도회는 2005년 열린 정기총회에서 '아시아미션 6242'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아시아를 향한 복음화를 기치로 내건다. 당초 62개 연합회를 가지고 있던 여전도회 전국연합회는 이들 연합회가 모두 참여한 가운데 42개국을 선교한다는 내용으로 '아시아미션 6242' 프로젝트를 선포했다.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한 여전도회 전국연합회는 지연합회가 66개로 늘어났고, 목표했던 선교지도 45개로 상향 조정해 현재는 '아시아미션 6645'로 외형을 확대했다. 이 운동은 지연합회들이 한 국가를 책임지고 후원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며, 선교사의 파송과 후원, 미전도종족 지역 개척, 각 연합회 간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교류 등 선교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는 장기 프로젝트다. 현재 여전도회 전국연합회는 '아시아미션 6645'를 통해 23명의 선교사를 후원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아시아미션 6645와는 별도로 여전도회 전국연합회는 체코와 모리타니아, 네팔, 미국 원주민 선교 등에도 후원을 하면서 여전도회 초창기 선배들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