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회의

[ 목양칼럼 ] 교회 회의

정우목사
2013년 01월 09일(수) 15:26

[목양칼럼] 
 
이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어느 교회 집사님이 목사님을 대접하기 위해 일식집으로 모셨다. "목사님 무슨 회를 드시겠습니까?" 그러자 목사님 대답이다. "예, 무슨 회든 다 잘 먹습니다. 단 두 가지 회만 빼놓고요." "그게 무슨 횝니까?" "예, 당회와 제직회입니다." 이 목사님 당회나 제직회에서 곤란을 겪으신 모양이다.
 
교회에는 회의가 참 많다. 그 목사님이 안 좋아하시는 '당회'나 '제직회'부터 시작해서 '공동의회', 각종 위원회, 남녀선교회, 교육부서회의, 임원회의, 월례회, 기관장회의, 구역장 권찰회의 등등 주일마다 회의가 없는 때가 없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 '60년사'에 보면 1950년대 중반의 역사 기록에서는 아예 한 페이지를 '회의 속에 파묻혀 있던 교회'라는 소제목까지 붙이고 서술하고 있다. '부산으로 피난 갔던 교회가 전쟁이 끝나자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새롭게 정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러니 자연히 회의가 잦았다.' 1955년 한 해의 경우, 당회를 24번 했고, 제직회는 28번 했다. 그 해 당회원들은 당회, 제직회 모두 참석해야 하니 두 회의만도 52번을 참석한 셈이다. 정말 회의 속에 파묻혀 살았던 것 같다. 어떤 때는 당회록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통금시간이 임박하였기에 아무게 장로 폐회 동의에 아무개 장로 재청에 목사가 가부를 물으니 폐회하기로 가결하니 오후 11시 30분이었더라." 통행금지가 있었으니 망정이지 없었으면 날이 새도록 회의를 했을지도 모른다. 1980년대 초 교회가 분규로 어려움을 겪을 때는 당회를 주일 오후 1시에 시작하여 6시 50분에 마치기도 했다. 장장 5시간 50분 동안 회의를 한 셈이다.
 
대부분 회의는 예배를 마치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예배에서 받은 은혜를 회의에서 다 쏟는 데에 있다. 사실 예배는 이의가 없다. 설교에도 기도에도 찬양에도 이의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슨 이의를 달 수 있겠는가? 하지만 회의에선 이의가 있다. 생각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 자신들의 주장을 하다보면 다른 사람들의 주장과 부딪히게 된다. 그러면 교회에서도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또 큰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면 서로의 관계에 금이 가게 되고 그것을 회복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도 회복을 못하는 것 같다. 미국 오렌지 카운티에서 살면서 미국의 상류층 사람들과 비즈니스 하는 친구의 말이다. "정 목사, 그들은 회의에서 절대로 화내는 법이 없어.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도 없어. 우리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하는데 그들 사회에서는 정반대야. 화내고 목소리 크게 말하면 그는 이미 진 사람이야."
 
회의에서 두 가지를 고려하면 좋겠다. 하나는, 내 생각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하나님만이 절대적이시다. 사람들의 의견은 다 상대적이다.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내 의견도 한계가 있고 상대방 의견도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주장할 일이 아니다. 의견이 충돌되면 적당한 선에서 매듭을 지어야 한다. 또 하나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일이다. 심지어 자녀들도 자기의 부모로부터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동등한 우리들의 관계에서는 얼마나 더 존중이 필요하겠는가? 새해가 되어 회의가 많아졌다. 금년에는 예배 때 받은 은혜, 회의에서 쏟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정우목사 / 미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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