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기독신춘문예 시 당선, 하늘을 걷는 낙타

[ 제14회 기독신춘문예 ] 시-하늘을 걷는 낙타

조선의 webmaster@pckworld.com
2013년 01월 04일(금) 15:56

1.
방울 소리가
사막의 단색 시야를 밀어낸다
 
2.
낙타가 광야를 지나 협곡 앞에 섰다
바람도 한꺼번에 들어갈 수 없다며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한때는 제 덩치만 한 적막을 몰고 다녔다
그런 그가 다른 세상에 들어온 듯
어찌할 바 모른다
이제 이곳만 빠져 나가면
지상의 경계는 하늘뿐이다
 
3.
보이지 않는 길의 여백을 넓히기 위해
며칠이고 굶어 몸집을 줄여본다
살아 있는 어떤 것도 통과할 수 없다는 바람길,
털오라기 하나도 마음대로 빠져나가기에는
버거운 세상의 두께 앞에서
힘없이 무릎 꿇을 때
지식, 열정, 용기 따위는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나의 의지, 나의 고독, 방울소리까지도
 
4.
지금껏 누구를 위해
나를 내려놓고 살아 보았던가
그토록 먼 길을 돌고 돌아
바람 불면 지워질 길, 내 영혼의 마른 땅
모래가 증명하는 것은
여전히 사막이라는 이정표뿐
 
5.
자잘한 별빛이 통통 튀는 모래바다
나를 사막의 빗금무늬로
감싸고 있던 거푸집이 해체된다
털과 가죽, 살과 뼈, 화석이 된 그리움조차
나는 뭇별처럼 세상에서 분리되고
목숨이 통째로 녹아 실이 되어 나오더니
비로소 바늘귀에 들어가는 순간,
 
방울소리 가까운 하늘 문이 열린다



제14회 기독신춘문예 시 심사평
 
"세속적인 현실 세계에서 영원한 나라로 가는 순례의 시"
 
신춘문예는 새해를 여는 시기에 실시되는 한국만의 독특한 신인 등용문이어서, 응모자에게는 물론이고, 심사자에게도 항상 기분 좋은 설렘을 선사한다. 새로운 언어의 조율사인 시인의 탄생을 소개하는 기쁨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지난 해보다 다소 응모편수는 줄어든 듯했지만, 금년에도 수백 편의 시를 읽을 수 있는 기쁨이 있었다. 다만 많은 시들이, 감정이 직설적으로 드러난 산문성 작품이거나, 관념적인 언어로 인해 시적 형상화가 미흡한 상태였다는 점은 아쉬웠다.
 
우선 시로서 현저하게 숙성이 덜 된 작품들을 걸러낸 다음, 10편 정도의 작품을 가지고 합심(合審)을 했는데, 비교적 쉽게 당선작과 가작에 대한 의견 일치를 볼 수 있었다. 당선작 '하늘을 걷는 낙타'는 성경의 낙타와 바늘귀의 비유를 환타지성 기법으로 실천해 가는 과정을 형상화한 것으로, 세속적인 현실 세계에서 영원한 나라로 가는 순례의 시로 읽힌다. 또한 환상적으로 형상화한 아름다운 서정이 돋보인다. "나는 뭇별처럼 세상에서 분리되고/ 목숨이 통째로 녹아 실이 되어 나오더니/ 비로소 바늘귀에 들어가는 순간,/ 방울소리 가까운 하늘 문이 열린다"며, 성지로 가는 상상의 세계를 펼쳐가고 있다. 성경의 비유를 보다 환상적인 시문학으로 형상화하여 보여 주는 작품이다. 함께 응모한 '느보산의 회상' 등 4편의 작품들도, 시문학의 본질과 시를 다듬는 기본기가 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안심하고 당선작으로 뽑을 수 있었다.
 
가작 '창(窓)'은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창을 통해 바라보는 자의식의 내면을 투시하고 있다. 시적 구성력이 우수한 점이 장점이나, 주제의식이 불분명하여, 단순히 내면의식의 스케치 정도로 읽히는 점이 아쉬웠다. 투시된 내면의식이 한 차원 더 희망적으로 승화되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함께 응모한 '기차' 등 4편도 안정적인 수준을 보여 주고 있었다. 다만 군데군데 생경한 표현들이 눈에 띄는 점은, 앞으로 좀더 다듬어가야 할 것이다. 시상 편수의 제한으로 비록 입상에는 들지 못했지만, 선자(選者)들은 '요한계시록'과 '생명나무' 등의 작품에 대해서도, 그 수준과 가능성에 주목한 점을 밝혀두고자 한다. 입상하신 분들께 축하의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우리 시단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기를 바라고, 입상하지 못하신 응모자들께도 지속적인 습작과 분발을 당부드린다.

 

심사위원 박이도ㆍ권택명



제14회 기독신춘문예 시 당선소감
 
▶조경섭(필명:조선의)

 

1960년 6월 11일 출생
전주 전성교회 집사
열린시동인
아름다운디자인조경 대표
2012 기독신춘문예 가작당선
2013 농민신문신춘문예 당선

"영혼의 언어로 삶의 언어를 순화하고 싶은 것이 나의 시 쓰기의 첫걸음"
 
   
막막한 광야에 홀로 피어 있는 꽃을 봅니다. 꽃잎 하나하나가 빛에 대하여 환하게 웃고 있음은 하늘 이쪽과 저쪽을 한꺼번에 잇는 세미한 음성 때문일 것입니다. 낙타의 무릎으로 사막을 건널 수 있듯이 한 편의 시를 위해 수없이 무릎을 꿇었고, 손을 모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때로는 앞을 볼 수 없는 모래바람으로 인해 절망하기도 했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의 원천은 굳은살 박히도록 무릎 꿇는 기도밖에 없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사랑에서 이제는 수평적 사랑으로 옮겨 걸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영혼의 언어로 삶의 언어를 순화하고 싶은 것이 제 시 쓰기의 첫걸음입니다.
 
여러모로 제 부족한 시를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기독공보사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학창시절 시에 대해 깊은 가르침을 주신 원탁시 故 문도채 시인님과 열린시회원님들, 기독신춘동인님들은 물론 함께 있어 소중한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특히 전주전성교회 이청근 담임목사님과 성도님들께도 감사드리며, 믿음의 동역자인 아내(김정희 성경낭송가)와 신언 신의 두 아들과도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목화송이처럼 뽀송뽀송한 흰 눈이 하늘로 향하는 나무 위에 내려앉고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 몸엣것 다 비운 나무처럼 빛의 외벽을 향해 기도의 제단을 쌓는 아침, 눈 쌓인 농원의 빈 여백에 평안의 첫발자국을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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