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기독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마녀를 주머니칼로 찌르다

[ 제14회 기독신춘문예 ] 소설-마녀를 주머니칼로 찌르다

최웅식 webmaster@pckworld.com
2013년 01월 04일(금) 15:42

아직도 나를 마녀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있다. 백설공주라는 동화를 각색해서 연극을 한 적이 있는데 나는 여왕이 변신한 마녀역을 맡았다. 선생님은 내가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마녀의 대사를 없앴다. 나는 검은 망토를 둘러쓰고 나타나 백설공주에게 독이 묻은 사과를 건네주고 무대에서 빠져나오기만 하면 되었다. 무대로 걸어가다가 관중석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 엄마의 얼굴이 보여서 무대 앞쪽으로 뛰어갔다. 백설공주가 나를 쫓아와 자그마한 목소리로 사과를 달라고 해서 나는 그 애에게 휙하니 사과를 던졌다. 백설공주는 내가 던진 사과를 받으려다 툭 쳐버렸고 사과는 바닥에 떨어져 관중석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버렸다. 백설공주는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고 청승맞은 그 애 때문에 연극 공연은 한동안 중단되었다. 그 사건 때문에 몇 애들은 나를 마녀로 일컫곤 했다.
 
나는 주머니칼을 마련했다. 어떤 아저씨가 우리 맛나 식당에 놓고 간 물건이었다.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주머니칼을 집어 얼른 뒷주머니에 찔러 넣곤 딴청을 피웠다. 그 아저씨가 우리 식당으로 다시 돌아와 혹 주머니칼을 보지 않았냐고 엄마에게 물었을 때, 나는 모른 척했다. 나는 내 것이 된 주머니칼을 소중한 물건으로 여겼다. 마녀를 제압할 수 있는 무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주머니칼보다 더 큰 칼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엄마의 만류 때문이다. 예전에, 우리 식당 부엌에서 식칼을 들고 찌르는 연습을 하다가 엄마에게 들켜 호되게 야단을 맞은 적이 있다.
 
나는 식당에서 빈 그릇을 부엌으로 나르며 악력을 키웠다. 그런 내 모습을 볼 때 엄마는 말했다.
 
"아이고! 내 새끼."
 
내 새끼라는 말을 들을 때면 힘이 났다. 나는 확실히 마녀가 아니라 엄마 새끼, 즉 사람이 분명하다.
 
아빠는 쟁반에 반찬이 담긴 그릇들을 올려놓았고, 엄마는 펄펄 끓고 있는 국을 휘저었다. 나는 식당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형광등을 보았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손을 올려 손차양하다가 손가락 사이를 벌려 그 틈새로 형광등을 보았다. 빛을 잡으려고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자 빛이 내 눈앞으로 들이닥쳤다가 뒷걸음쳤다.
 
"수, 수건 가져와!"
 
"혀를 깨물지 않게 해요."
 
나는 사람들이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한 사내가 드러누워 몸을 격하게 흔들어댔다. 엄마가 주방에서 뛰쳐나와 하얀 수건을 사내의 입에 넣어 틀어막았다. 혀를 씹었는지 아니면 입술을 깨물었는지 하얀 수건이 조금씩 빨간색으로 물들어갔다. '빨강', 내가 칼에 손을 베였을 때 흘러내린 '빨강', 그 색과 똑같다.
 
일일구에 전화해. 간질 같은데요. 아니에요. 입에 게거품을 물지 않았어요. 거기 팔 좀 주물러요. 근육이 갑자기 경직되어서 생긴 현상같아요! 당신 의사야? 무서워. 귀신들린 사람같아.
 
손님들이 구경꾼처럼 사내 주위를 빙 둘러서서 사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쇼를 구경하는 것처럼 왜 이렇게 소란스러운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내는 쓰러졌고 잠시 의식을 잃었을 뿐이며,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야 할 일만 남았다. 밥을 먹은 다음 이빨을 닦는 것처럼 그 사람이 쓰러진 일은 일과인지 모르므로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그 자리에 마녀가 있는지 사방을 둘러보았다. 마녀가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으나 혹시 하는 생각으로 주위를 바라보았다. 마녀는 우리 맛나 식당에 없었다.
 
마녀는 어느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사람들을 죽음의 길로 데려가고 있을까?
 
엄마와 간 병원에서 마녀를 만났다. 엄마는 대기실에서 나를 기다렸고 나는 주사를 맞고 차가운 테이블에 누웠다. 나를 쳐다보는 간호사의 얼굴이 아주 멀리 떨어진 풍경처럼 흐릿해졌다. 시선을 옮겨 천장에 매달린 조명기구를 쏘아보는데 조명기구 빛이 깜박거려 나를 어지럽게 만들어 눈을 감았다.
 
나는 벼랑 끄트머리에 서서 마녀를 바라보았다. 거만한 눈빛 같기도 담담한 눈빛 같기도 했으나 마녀의 눈빛을 정확히 읽어낼 수 없었다. 마녀가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오자 다리가 후들거렸고 심장의 박동이 빨라졌다. 나는 뒷걸음치면서 물러서다가, 더 이상 뒤로 가면 벼랑 아래로 떨어져 숨통이 끊어질 거라는 생각에 아찔했다. 마녀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이마에 땀이 맺혔고 다리에 힘이 스르르 빠져 주저앉았다. 마녀가 허리를 굽혀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마녀의 얼굴은 창백했는데 남자의 얼굴인지 여자의 얼굴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나는 소스라쳤다. 마녀가 이빨을 드러내며 한바탕 웃다가 자신의 입을 내 입에 천천히 갖다대려 했다. 일어나야 한다고, 일어나야 한다고 안간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간호사들이 나를 둘러싸고 벌벌 떨고 있었다. 의사가 목청을 높였다.
 
"김 의사, 마취 제대로 했어?"
 
"네, 제대로 했어요."
 
"확실해?"
 
"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잘 모르겠어요. 분명히 마취는 제대로 했어요."
 
"특별한 뇌를 가져서 환상을 보고 있는 건가?"
 
의학의 문제가 아니라고, 마녀 때문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으나 소리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엄마는 나에게 말을 건넸다.
 
"분명히 마취를 했는데 벌떡 일어났대."
 
마취가 되지 않는 아이도 있을 수 있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에'라는 한 마디뿐이었다.
 
"어이구! 내 새끼, 많이 아팠지?"
 
"에."
 
119 구급대가 도착했다. 구급대원들이 이동 침대에 그를 싣고 천천히 들어올렸다. 들것을 들고 조심조심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로 그의 두 발이 선명하게 보였다. 내 발과 비슷하게 생긴 평범한 발이었다.
 
발작을 하고 119 구급차에 실려가는 그와, 마취가 되지 않는 나는 어떤 점에서 비슷할까?

 

오토바이의 쓰임새는 여러 가지다. 배달용도, 스트레스 해소용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빠의 사랑을 확인하는 용도이다. 아빠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 바람을 따라 걸을 때처럼 마음이 평온해졌다.
 
아빠는 나에게 오토바이 헬멧을 씌운 다음 운전석에 앉았다. 나는 뒷좌석에서 아빠의 허리를 꽉 부여잡았다. 부르릉 소리가 나면서 시동이 걸렸다. 오토바이가 질주했고 우리 앞에 있던 건물들이 뒤편으로 사라졌다. 골목과 골목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다 곧게 뻗어 있는 도로를 타고 달렸다. 대학에 들어서자 수위 아저씨가 목례를 건넸고, 아빠는 고갯짓으로 답례했다.
 
경사가 약간 가파른 아스팔트길로 올라갈 즈음 휠체어가 보였다. 학생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휠체어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휠체어를 타고 이곳을 넘기에는 힘이 들 것 같다. 나는 하모니카를 입에 갖다대는 상상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모니카로 연주해서 휠체어를 타고 가는 학생에게 뒤에서 밀어드리고 싶다는 마음을 전해주고 싶다. 하모니카에 숨을 불어넣으면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와 사람들을 감싸 안을 것이다. 주머니칼로 마녀를 잡으면 하모니카를 하나 장만해야겠다.
 
왕관처럼 생긴 건물 앞에 오토바이가 멈췄다. 아빠와 나는 오토바이에서 내렸고 아빠는 내 손을 잡고 자판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대학생들이 자판기 앞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다가 우리를 보자 자판기 옆쪽으로 물러섰다. 아빠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자판기에 집어넣었다.
 
"은비야, 뭐 먹을래?"
 
"아."
 
"코코아?"
 
"이."
 
"먹기 싫으면 아,니,요, 라고 하는 거야."
 
"아."
 
'아, 에 이, 우' 같은 한 마디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말을 하지 못하다가 한 마디 말을 입밖으로 쏟아낼 수 있게 된 것이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기도 하다.
 
아빠와 나란히 벤치에 앉아 코코아를 마시며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공을 쥔 사내가 있는 힘껏 몸을 띄워 테니스 라켓을 휘둘렀다. 공이 날아가다가 땅에 튕겨올라가 상대방의 라켓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와서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이 노란 풍선을 들고 장애인 이동권을 보호하라고 소리쳤다. 휠체어를 탄 학생들과 타지 않은 학생들의 행렬이 노란 빛을 뿜어대었다. 꽃을 찾아 날아가는 노란 나비가 떠올랐다. 아빠는 노란 풍선에 적혀 있는 글자를 나에게 읽어주었다.
 
"저기, 장애라는 두 글자 있지. 한자인데, 길 장, 사랑 애야. 장애는 길게 사랑한다는……"
 
"에."
 
아빠는 종이컵을 납작하게 해서 쓰레기통에 넣은 후 오토바이를 탔다. 나도 종이컵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다음 오토바이 뒷좌석에 올라타 헬멧을 썼다. 오토바이가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바람이 쉭쉭 소리를 내며 내 어깨를 때렸다. 아빠의 등에 헬멧 쓴 얼굴을 갖다 대고 두 손으로 아빠의 허리를 감았다.
 
지하로 뻗어있는 터널을 달리면 항상 내 마음은 날아올랐다.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날아가는 것처럼 마음이 붕떠서 위로 올라갔다. 그럴 때마다, 이상한 생각이 용솟음쳤다.
 
바람을 타고 다른 나라로 가는 거야. 또 다른 나라로.
 
우리 맛나 식당 맞은편에, 새로운 가게가 들어섰다. 약을 파는 가게가 문을 닫았는데 거기에 고기를 파는 가게가 들어선 것이다. 나는 식당 창으로 바깥을 바라보았다. 늘씬한 두 언니가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어댔고 언니들 옆으로는 허수아비 막대풍선이 펄럭였다. 날씨가 쌀쌀했지만 언니들은 잘록한 허리를 다 드러내고 있었다. 맨 허벅지를 치켜들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개업기념 이십 퍼센트 할인! 오늘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앞으로도 꼭 이용해주시고, 황금돼지 축산백화점을 사랑해주세요."
 
언니들은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든 다음 머리 위로 올렸다. 사랑한다는 신호를 나에게, 언니들을 쳐다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신사가 곁눈질을 하며 언니들을 위 아래로 훑어보다가 정육점으로 들어갔다. 신사는 뭐라고 말하며 하얀 가운을 입은 가게 주인에게 돈을 건넸다. 가게 주인이 잘게 썬 고기를 저울에 올려놓곤 무게를 확인한 후, 비닐봉지에 쓸어담았다. 신사는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정육점을 빠져나오면서 두 여자의 가슴을 힐끔거렸다. 나의 가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언니들의 가슴은 크다.
 
저런 게 남자 아이들이 말하는 빵빵하다는 것일까? 큰 것, 빵빵한 것, 빵빵한 것. 나도 나중에는 저렇게 큰 가슴을 갖게 되는 걸까?
 
아빠와 엄마의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 관장이 은비에게 태권도 가르쳐보라고 하던데."
 
"회비는 어쩌고요?"
 
"회비 반만 내도 괜찮대. 보낼까?"
 
"아예, 받지 말지."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지. 김 관장은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미안해서 반이라도 내겠다고 한 거야."
 
"그렇게 해요. 그런데, 은비가 좋아할까요?"
 
"좋아할 거야."
 
정육점 주인이 고깃덩어리를 기계 안에 넣고 버튼을 눌렀다. 날카로운 칼날이 왔다갔다 하면서 말끔히 잘린 고기를 밀어냈다. 그는 잘린 고기를 도마에 올려놓고 칼을 쥐고 힘껏 내리쳤다. 아빠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은비야. 산책할래?"
 
"에."

 

잔 다르크, 프랑스를 구하라는 하늘의 소리를 듣고 그 부름에 응답했던 그녀를 떠올렸다. 그녀의 검에 프랑스의 운명이 달려 있었고 그녀는 신이 준 소명에 따라 검을 들었고 적을 물리쳤다. 그녀는 왕을 살렸고 나라를 구했으며 남자보다 더 잘 싸우는 위대한 용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종교재판을 받아야 했으며 결국 마녀로 낙인찍혔고 처형되었다.
 
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존경하는 인물을 물어봤다. 아이들은 아인슈타인, 세종대왕, 이순신, 신사임당, 유관순 등으로 대답했다. 나는 애들이 말하는 인물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검을 뽑은 채 말을 타고 달리는 그녀, 잔 다르크에게 반해 있었기 때문이다. '잔 다르크'라는 영화를 동생과 본 후였다. 영화관에서 잔다르크가 스크린을 뛰쳐나와 나에게 다가와서 나는 일어설 수 없었다. 그녀가 손을 내밀어 내 볼을 쓰다듬었다. 나는 대한민국을 구하라는 신의 음성을 듣게 된다면 잔 다르크처럼 적을 향하여 돌진하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내가 바깥으로 싸돌아다니자 엄마와 아빠는 하루에 한 시간을 산책시간으로 정해 바깥출입을 허락했다. 엄마가 검지를 올리며 한 시간뿐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손목시계의 분침이 한 바퀴 돌아 원래 위치로 오게 될 때, 나는 식당으로 돌아오면 되었다.
 
성당으로 들어갔다. 성당의 입구에는 성모 마리아상이 있다.
 
신의 목소리를 들은 성모 마리아. 성스러운 엄마, 마리아.
 
마리아가 마녀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 예수를 배고 있을 때 마리아를 마녀로 부른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남자와 자지도 않고 아이를 뱄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리아를 마녀로 여기고 마리아를 죽이려고 했을 것이다. 마리아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 썼다면 마리아는 애를 지웠을 것이다. 마리아가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성당도 생겼고, 그 덕분에 내가 자주 들락날락할 수 있는 장소도 생긴 것이다.
 
나는 마리아보다는 잔 다르크가 좋다. 성모 마리아처럼 둥실한 가슴을 나는 가지지 못했고 젖가슴에서 젖이 나오지도 않았다. 애를 밴다면 마리아처럼 되고 싶겠지만 애를 배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잔 다르크가 좋다. 나에겐 잔 다르크가 갖고 있던 검과 비슷한 무기, 주머니칼이 있다. 잔 다르크는 말을 타고 검을 휘둘렀고 나는 바람을 타고 주머니칼을 휘둘렀다. 작은 가슴을 소유해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잔 다르크처럼 나도 밋밋한 가슴을 가져서 빠르게 공격할 수 있다. 거추장스런 큰 가슴을 갖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다 큰 언니들의 가슴을 가지기 전까지 나는 마녀를 생포할 것이다. 사람들이 마녀를 보게 된다면 사람들은 마녀의 정확한 실체를 알게 될 것이다.
 
바람이 부는 방향이 달라졌다.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를 듣다보면 신의 숨결이 느껴졌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귀를 기울여보았다. 바람의 미세한 떨림에 집중하면서 바람이 어디에서 흘러왔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느껴보았다. 바람을 부릴 수만 있다면 마녀를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이 마녀의 위치를 알려주면 좋을 텐데.
 
나는 계단으로 내려가 성당 지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실문을 두 손으로 밀자 삐거덕하며 문이 열렸다. 성당 지하실에는 큰 항아리 여남은 개가 있다. 나는 가장 큰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 고개를 내밀어 굽어보았다. 잘 보이지 않아서 손을 집어넣고 휘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잡을 수 없다. 뚜껑을 닫은 다음 항아리를 쓰다듬어 보았다.
 
마녀가 몸을 차지해버렸던 한 언니가 있었다. 언니의 몸을 마녀가 완전히 장악해서 언니의 영혼과 몸을 분리시켰다. 그녀의 눈은 초점이 풀렸고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었고 침이 입 주위로 흘러나왔다. 그녀는 짐승처럼 기어가다가 고개를 들고는 사람들을 쏘아보기도 했다. 무당이 굿판을 벌였는데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무당과 대화를 했다. 무당은 자기보다 더 높은 신이 그녀의 몸에 있다고 부르짖곤 벌벌 떨었다.
 
마을 사람들이 언니를 붙잡아 성당으로 데려갔다. 신부가 언니의 몸에 성수를 뿌리고 손에 쥔 십자가를 들어올린 채 기도를 했다. 그녀는 발작을 하며 게거품을 물었다. 언니의 눈은 본래의 빛깔로 돌아왔지만 목소리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언니의 입에서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할머니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간혹 흰자위를 드러낸 채 나를 내버려두라고 외치며 신부의 뺨에 손을 날리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이 그녀의 팔과 다리를 붙잡은 채 성스러운 의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신부는 큰 항아리에 성수를 반 정도 채운 다음 그녀를 항아리에 집어넣으라고 지시했다. 그녀가 항아리 속에 들어가자 항아리를 에워싼 사람들은 신부를 따라 한참동안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했다. 사악한 마녀는 신기하게도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다. 초췌한 언니는 사람들을 향해 배가 고프다고 했다.
 
대성당으로 들어가서 긴의자에 앉았다. 두 눈을 감아 신이 나에게 무슨 말을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의해 보았다. 바람을 타고 오는 소리들 중에, 신의 목소리만 들을 수만 있다면 잔 다르크가 들었던 그 소리를 나도 듣게 될 것이다.
 
"침묵하지 말고 분명하게 말씀해보세요."
 
어떤 소리가 들려온 것같아서 귀를 기울여봤지만 사방이 고요하다.
 
신에게 건방지게 대화를 강요한 것일까?
 
눈을 뜨고는 어떤 여자가 기도를 올리고 있는 뒷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까?
 
신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신비한 빛줄기가 내 곁을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기는 하다. 그 신비한 빛줄기를 좇다보면 신에게 점점 가까워질 것이고, 신의 힘을 빌려 마녀를 포획할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가 아스팔트에 납작하게 깔려 있다. 내장은 바깥으로 튀어나와 훤히 드러나고 목은 금방이라도 몸에서 떨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고양이의 눈이 보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양이의 몸에 축축한 피가 묻어 있는 것으로 보아 목숨이 끊어진 지 오래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고양이의 몸에서 정체 모를 어떤 영혼이 툭 튀어나왔다. 영혼은 스멀스멀 기어가는 벌레처럼 느릿느릿 움직였다. 먹이를 포착한 듯 움직임이 빨라지더니 뒤축이 높은 구두를 신고 걸어가는 여인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몸에 달라붙은 영혼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마녀다. 마녀가 그녀의 몸을 완전히 차지하면 그녀의 혼은 그녀의 몸과 분리될 것이다.
 
나는 마녀를 뒤쫓았다. 길은 평평해지다가 오르막길이 되었는데 마녀는 나와 달리 똑같은 보폭으로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마녀의 뒤통수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다리를 빨리 움직여보지만 다리는 내 생각을 따라오지 못했다. 마녀가 뒤를 힐끗거리다가 멈춰서더니 나를 보고 씩 웃었다. 마녀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고 그녀와 내 사이는 점점 멀어져갔다. 있는 힘을 다하여 다리에 힘을 주고 점점 가팔라지는 길을 뛰었다. 바람이 내 등을 밀어준다면 그녀에게 순식간에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다. 주먹을 불끈 쥐고 양팔을 앞뒤로 번갈아 빨리 흔들었다. 휘청 무릎이 꺾여 균형을 놓쳤고 다리가 꼬여 넘어지면서 딱딱한 시멘트로 곤두박질쳤다. 반사적으로 손을 바닥에 대었고 손이 바닥에 긁혀 욱신거렸다. 마녀가 왼쪽 골목길로 꺾어 들어가자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 일어나 마녀를 쫓아야 해. 마녀를 쫓아야 해.
 
고약한 기운이 내 등뒤에서 훅 밀려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나를 주시하는 두 눈동자와 마주쳤다. 어둠이 깔려 있는 골목에서 나를 쳐다보는 눈빛은 숨쉬기도 힘들만큼 나를 압박했다. 먹이를 노리는 짐승처럼 노려보는 두 눈을 보니 몸이 오슬오슬 떨렸다. 또 다른 마녀가 내 등뒤를 노렸던 것이다. 남학생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이닥치자 마녀는 침을 탁 뱉으며 골목으로 사라졌다.
 
나의 귀에 스쳐지나가는 누군가의 훈훈한 입김이 느껴졌다.
 
"괜찮아?"
 
"우."
 
몇 명의 남자애들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담장에 기댔다.
 
"걔. 맛나 식당 딸이야."
 
"알아들을 수 있어?"
 
"알아듣는 것 같던데."
 
"손에서 피나잖아."
 
안경을 쓴 남자애가 손수건을 꺼내 내 손을 감았다.
 
"내가 집 아는데, 데려가야겠다."
 
나는 남자애의 손에 이끌려 우리 식당으로 걸어갔다. 남자애가 자기 어깨에 내 손을 올려놓고 내 옆구리에 손을 갖다대었다. 방망이질치는 내 심장에 신경이 쏠렸다. 나는 남자애의 손을 잡고 내 밋밋한 가슴에 올려놓았다. 남자애는 화들짝 놀라 내 허리를 감은 손을 풀고는 잠시 서서 나를 쳐다보았다. 내 심장이 제대로 뛰고 있는 거냐는 말을, 말이 되지 않은 말을 입속에서 우물거렸다. 남자애는 나를 우리 식당으로 데려왔고 나는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남자애의 볼에 기습적으로 입을 맞추었다. 남자애의 볼이 붉어졌다.

 

나는 차가운 물을 틀고 샤워기를 갖다대었다. 가슴을 쓸어내리자 젖꼭지가 바짝 곤두섰다. 젖꼭지를 검지로 누르니, 딱딱한 촉감이 내 손에 전해져왔다. 젖꼭지가 봉긋 부풀어 올랐다.
 
내 몸이 딱딱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단단한 몸을 가진다면 마녀와 싸울 때 이로울 것이다.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다. 모처럼만에 엄마와 아빠, 단 둘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나를 데리고 부모님은 여행을 가려고 했으나,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거절했다. 엄마는 나의 손을 끌었으나, 나는 엄마의 손을 할퀴었다. 엄마가 얘가 요즘 사춘기냐고 했고 은비야, 가기 싫냐고 아빠가 물었다. 나는 에라고 대답하고 고개를 앞뒤로 격렬하게 흔들었다. 부모님의 날이니 좋은 시간 보내시라는 말을 내 행동으로 전달하려고 했다. 내 고개가 앞뒤로 계속 흔들리자 아빠는 싱긋 웃음 지으며 화답했다. 아빠와 엄마는 하루라는 짧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집을 나갔다.
 
나는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서 벽에 묻은 때를 제거했다. 손에 힘을 주어 박박 문지르니까 곧 바깥으로 튕겨져 나올 것처럼 파란 실핏줄이 도드라졌다. 대야에 물을 받고 바가지로 물을 떠서 냅다 던졌는데 물이 벽에 튕겨 내 얼굴로 뛰어올랐다. 지워지지 않는 때는 솔로 또 밀었다. 내가 깔끔하게 정리한 화장실이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선물이 될 것이다. 나는 수챗구멍을 막고 있는 머리카락 뭉치를 손톱으로 긁어낸 후, 머리카락 뭉치를 잡고는 휴지통에 집어넣었다. 손을 씻은 다음, 바가지에 담긴 물을 발에 끼얹었다.
 
나는 발가벗은 채 베란다로 나갔다. 햇살이 내 몸을 외투처럼 감싸자 온몸에서 생기가 돌았다. 조그마한 창문을 여니 바람이 뛰어들어와 내 머리칼을 뒤로 날려보냈다. 바람에 꽃향기가 실려 있어 크게 숨을 들이쉰 후, 햇살에 내 머리칼을 말렸다. 꽃에서 흘러나오는 꽃씨처럼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휙 떠날 수 있으면 나는 마녀를 손쉽게 잡을 수 있을 텐데.
 
"누나."
 
"에."
 
문을 빠끔 열고 고개를 내밀어 나를 쳐다보는 동생이 보였다.
 
"옷 벗고 뭐해?"
 
"에."
 
동생이 큰 수건을 갖고 와 내 몸을 감았다. 내 손에 수건을 쥐어주면서 내 손을 잡고 내 몸을 닦으려 하여, 나는 남동생의 손을 뿌리쳤다. 내가 혼자 집에 있으니까 학교가 끝나자 바로 집으로 온 모양이다. 동생은 나를 내 방으로 밀어놓곤 옷 입으라고 했다. 나는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로 더 있고 싶었지만, 동생 말을 따르기로 했다.
 
동생이 나의 목을 조르고 죽으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벤치에 앉아 꽃향기를 맡고 있던 때였다. 나는 꽃과 교감을 나누고 있었고 봄의 화려한 빛깔에 몰입되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가족들은 경찰서에 신고하고 나를 찾았다.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은 동생이었다. 동생은 나의 가슴을 두드리다가 내 목을 졸랐다. 차라리 죽어버리라고 발악하듯 목청껏 질렀다. 동생이 멱살을 쥔 손을 풀자 나는 숨을 토했고, 동생은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동생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는 주먹으로 내 머리를 마구 때리면서 동생 입에서 다시는 험악한 말이 튀어나오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산책을 하러 문을 나섰다.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났고, 아래층에 등이 켜졌다. 또각또각, 구두 뒤축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계단을 세어가며 내려갔다. 마찰음이 점점 가까워진다는 것을 의식한 순간, 올라오는 사람과 어깨가 부딪쳤다. 그녀는 기우뚱 중심을 잃고 벽에 부딪쳤고, 나는 발이 비끗 돌아가며 몸이 허청 젖혀졌다. 나는 넘어질 것 같아 팔을 뻗어 난간을 얼른 붙잡았다. 그녀는 날카로운 손톱을 내 어깨에 꽂고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내 몸을 틀었다.
 
"야, 우측통행이라고 몇 번 말했어. 중간으로 다니지 말라 했잖아. 내 말 못 알아듣겠어? 미친년."
 
그녀는 욕지거리를 퍼붓곤 재빨리 사층으로 올라갔다. 나를 다시 쳐다보며 시끄럽게 떠들어대었다.
 
"병신같으니라고. 저런 애는 감금시켜야지. 재수 없어."
 
마녀의 하수인처럼 행동하는 사람에게 일일이 대응하면 시간낭비이다. 나는 내 할 일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 마녀를 잡아버리면 우리 동네는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일층에 다다르자 성당으로 가는 길이 보였다. 몸이 갑자기 부르르 떨리며 인상이 일그러졌다. 호흡을 가다듬고 주머니칼을 손에 쥐었다. 나는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왼쪽 골목에 평범하게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옆집에 사는 오빠였다. 그는 두 손을 땅에 짚어 엎드린 다음 머리를 쳐들고 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네 발 달린 짐승이라도 된 듯 두 손과 두 발로 바닥을 짚으며 내 쪽으로 왔다. 그는 기어오면서 개처럼 코를 킁킁거리기도 했다. 그가 혀를 내밀자 입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나왔다. 내 몸에서 피돌기가 빨라지고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마녀가 히죽 웃더니 개가 덤벼들듯이 날렵하게 내 쪽으로 뛰어왔다.
 
마녀에게 몸을 완전히 장악당한 것일까?
 
오싹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주머니칼을 꺼냈다. 바람이 휙 골목을 지나갔고 나는 한 발을 내디디며 달렸다. 마녀가 뛰어올라 우악스런 손으로 내 가슴을 움켜쥐었다. 누군가가 입꼬리를 옆으로 잡아당긴 것처럼 웃다가 마녀는 내 입에 자신의 혀를 넣곤 내 바지를 벗겼다. 나는 주머니칼로 마녀의 허벅지를 깊게 찔렀다. 마녀가 나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나는 벌러덩 넘어졌고 온몸에서 맥이 탁 풀려나갔다. 마녀의 네 발 소리는 들리지 않고 멀어져가는 두 발 소리가 들렸다.
 마녀는 오빠의 몸에서 뛰쳐나갔을까?
 
나는 누운 채 하늘에 떠 있는 하얀 뭉게구름을 올려다보았다. 문득, 하얀 말을 탄 잔 다르크가 떠올랐다. 천천히 움직이는 구름처럼 되도록 서서히 내 상체를 일으켜보았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스팔트길에 주머니칼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마녀는 찾을 수 없었다. 오른손을 땅에 짚어 일어나려고 했는데 팔이 마비된 듯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고개를 기울여 손목시계가 망가졌을까봐 눈여겨보았다. 유리만 살짝 긁혔을 뿐 초침은 일초에 한 번씩 움직이며 돌아갔다. 손목시계는 삼십 오 분 정도의 산책 시간이 남았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성당에 있는 나무 벤치에 앉아 성모 조각상 아래에 놓여있는 촛불을 구경하다가 집으로 돌아와야겠다.
 
마녀와 맞닥뜨린 날치고는 하늘이 참 맑다.

최웅식



제14회 기독신춘문예 소설 심사평
 
"자아에 대한 치열성, 그 결과를 형상화하는 능력 돋보여"
 
심사하는 즐거움은 좋은 작품을 읽게 될 때 더한다. 금년도 심사를 하면서 인상 깊은 작품은 '굿바이 아미쉬'와 '마녀를 주머니칼로 찌르다' 두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예전보다 더 즐거웠던 것은 작품의 경향이 전혀 다르면서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 작품은 제목 그대로 여름방학 특강을 하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칼라지로 가던 주인공 화자가 우연하게 만나게 되는 '아미쉬 신앙공동체'에서 겪을 일종의 수기 형식이다. 반면에 뒷 작품은 한 소녀의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내적 갈등을 추척하는 소설이다. 이 두 작품은 오늘의 한국 소설의 두 경향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항상 그렇지만, 전통적인 소설 창작 기법과 새롭게 추구하는 개성적인 기법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앞 작품은 세계의 한 현상을 치밀하게 그려나갔고, 뒷 작품은 자의식의 다양한 양상을 매개체를 통해서 서사화하는 기법의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소설 창작의 서로 다른 두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더구나 한 작품은 새로운 외부 세계에 대한 경의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에 대해 탐색하고 있고, 뒤 작품은 성숙해가는 자아의 변모와 그에 뒤따르는 갈등을 통해서 자기 내면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두 작품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으면서 나름의 덕목도 갖추고 있다.
 
'굿바이 아미쉬'의 작가는 신앙공동체의 실상과 거기에서 겪었던 일들을 치밀하게 그련갔는데 그 지구력과 담력은 작가로서는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 앞으로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많은 세계 현상(상상력까지 포함)을 선택하여 재구성하는 것이 소설이라는 점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또한 '마녀를 주머니 칼로 찌르다'는 자아에 대한 치열성과 그 결과를 형상화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더구나 안정된 문장과 상징성을 가진 언어의 선택도 좋았다. 이러한 재능이 기교에 머물지 않고, 세계에 대한 폭넓은 성찰과 탐구를 지속적으로 한다면, 좋은 작품을 쓰게 될 것이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여러 해 기독신춘문예 심사를 했는데도, 어느 해보다도 이번에 최종심에 오른 두 작품이 뛰어나서 즐거웠다.
 
심사위원 현길언



제14회 기독신춘문예 소설 당선소감

▶ 최웅식

1977년 4월 9일 출생
영락교회 출석
경희대 국어국문과 졸업
경희대 대학원 현대문학 석사과정 수료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수료

다시, 숨쉬기

   
2003년 경희대대학주보사가 주최한 문예현상공모전에서 '나는 항상, '구끼'라고 말한다'는 소설로 대상을 받았다. 운이 좋아 당선된 소설이었다. 실력을 키우기 위해 더 노력해야 했지만 부모님이 보증을 잘못 서 집이 넘어가야 할 상황이 와서 창작을 붙잡을 수 없었다. 법정 싸움을 8개월 했고, 결국 졌다. 대신 빚을 갚아주어야 했다. 아버지는 일본으로 넘어가 몇 년 동안 고생해서 산 과수원을 팔았다. 나는 학업을 중단하고 학원 강사로 일했다. 몇 년 동안 소설을 쓰지 못했다. 살아있었지만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글쓰기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소명이었는데, 나는 나아가지 못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계획을 기대하며 전동차에서 시를 썼다. 집의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다시 소설을 쓰고 싶었다. 재활이 필요했다. 나의 신경은 죽어있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밟으면서 내 글에 숨을 불어넣었다. 다시, 숨을 쉬는 것 같았다. 글쓰기는 나에게 숨쉬기와 같은 걸까.
 
부족한 소설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대학시절 나에게 문장 쓰는 법을 가르쳐주신 주춘섭 선배님께, 내 글을 계속 읽고 좋은 조언을 해주시는 정지아 선생님께, 응원해주는 벗들(훈, 범, 준, 민철, 순자누나……), 기도해주고 있는 영락교회 청년부 지체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또 하나의 좋은 소식을 주셨다. 황주희, 그대의 뱃속에 우리의 아이가 꿈틀거리고 있다. 나는 아이에게 빛깔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아이는 어떤 빛깔을 지니게 될까. 그리고 내 글은 어떤 빛깔을 보여줄까.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