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7~12일

[ 가정예배 ] 1.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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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1월 04일(금) 11:34
[가정예배]

월-가지고 갈 것, 버리고 갈 것
본문:욥 42:7-9
찬송가:218장
 
목회를 하다 보니 필자는 15번 이상 이사를 한 것 같다. 그런데 이사 때마다 고민되는 일이 있다. 이 짐을 과연 새 집으로 가지고 갈 것인지 아니면 버리고 갈 것인지이다. 아내는 필자를 '다람쥐 띠'라고 놀린다. 물건을 바리바리 쌓아두고 살기 때문이다. 어떤 물건은 좀 아까워도 과감하게 버리고 간다. 새 집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은 우리도 같은 고민을 해봐야 한다. 지난 해에 가지고 온 것들 중 어떤 것을 새해에도 가지고 갈지, 또 어떤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새해를 맞이해야 할지 말이다.
 
당연히 지난 한 해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기억을 잘 간직하고 가야 한다. 감사의 마음을 간직해야 새해에 더 큰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해에 버리고 가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지난 한 해 있었던 힘든 일들, 괴로운 일들은 깨끗이 잊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자. 우리 인생에 아픈 일과 힘든 일이 없을 수 없지만 그 기억에 사로잡혀 "해가 바뀌어도 역시 안돼"하고 새해를 맞는다면 무슨 좋은 일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새해에는 버리고 가야할 가장 중요한 일이 하나 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한 의인이었지만 큰 고난을 당하고 모든 소유를 잃게 된다. 욥의 세 친구는 위로하기 위해 찾아왔다가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소리를 듣고 분통을 터뜨리게 된다. "네가 분명히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징벌을 받는 것인데 왜 회개하지 않고 의롭다는 주장만 하냐?"며 욥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한다. 하지만 욥은 죄 때문에 징벌을 당한 것이 아니라 의인의 고난을 당하는 억울한 상황이었다. 결국 욥과 세 친구 사이에 오랜 설전이 오간 후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욥아! 네가 아무리 자신이 의롭다고 하지만 너의 고난 뒤에 숨은 내 큰 뜻과 계획을 알지 못하는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욥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고백한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전에는 하나님에 대해 지식으로만 알았지만 이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번에는 욥의 세 친구를 책망하신다. "너희들의 말과 행동이 옳지 못하다. 고난당한 친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따뜻한 위로인데 너희는 친구를 정죄하기만 했구나." 하나님은 세 친구에게 가서 욥을 위해 번제를 드리라고 명하신다. 세 친구가 욥을 위해 번제를 드리고 욥은 기꺼이 세 친구를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니 하나님이 욥을 기쁘게 받으신다.
 
지난 한 해 혹시 불편했던 인간관계가 있었는가?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힘들게 한 사람들, 반대로 내가 상처를 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직 앙금이 남은 인간관계를 깨끗이 해결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기쁘게 받아주시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기도>
지난 한 해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옵소서. 또한 나쁜 기억과 아픔은 다 버려두고 새해를 맞게 하옵소서. 내가 먼저 용서하고 화해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하준목사 / 효자교회


화-믿음으로 새 역사를
본문:민수기 13:30-14:10
찬송가:550장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다. 맹자의 어머니는 어린 자녀에게 교육환경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았기에 세 번이나 이사를 하며 맹자를 훌륭한 위인으로 키워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인간의 삶에는 환경과 조건이 중요하다. 그러나 성경은 좀 더 적극적인 차원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믿음의 사람은 주어진 환경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환경을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 가까이에 왔을 때 모세는 열두명의 정탐꾼을 보냈다. 그런데 그들이 같은 장소에 가서 같은 상황을 보고 왔는데도 보고는 전혀 상반된 것이었다. 먼저, 열 명의 정탐꾼은 보고하기를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 땅은 전혀 쓸모도 없는 땅이었다"고 말한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밤새도록 통곡하고 부르짖었다.
 
그 소리를 듣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분통이 터져서 자기들의 옷을 찢으며 보고하기를 "이 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참으로 아름다운 땅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넉넉히 우리는 정복하고야 말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문제는 환경과 상황이 아니라 어떤 시각으로 환경을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씀한다. 참된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바라는 것이며,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의 시각을 가지고 모든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말을 할 때에도 항상 긍정적이고 소망적인 말을 하고, 창조적인 말을 하고, 믿음의 말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 생각과 내 방법과 내 계산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슨 필요가 있는가? 나의 힘과 나의 방법으로 안되는 것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가능하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유명한 신학자 틸리케는 말하기를 "믿음이란 겨자씨에서 새 소리를 듣는 것이다"라고 했다. 지금은 눈에도 잘 띄지 않는 작은 씨앗이지만 거기에서 큰 나무를 볼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 가정이 이 귀한 믿음을 가지고, 2013년 새해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새 역사의 도구로 쓰임 받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열 명의 정탐꾼처럼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것에 치중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날마다 성령 안에서 새로워지고 변화되어서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새 역사를 이루어가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나라와 교회와 가정이 믿음 안에서 긍정적으로 변화되는 복된 한 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동락목사 / 신광교회


수-선한 꿈을 향하여 사진은 기존의 것으로
본문: 살후 3:13
찬송가: 312장
 
새해가 시작되었다. 새해가 되면 여러가지 계획과 결심을 하게 된다. '시종여일 하다'는 말처럼 첫날 품은 꿈과 결심이 올 한해 끝까지 변치않기를 바란다.
 
시대적 요구나 뜻하지 않는 상황이 꿈과 결심을 좌절시킨다 해도 변치말아야 할 것은 선에 대한 우리의 자세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여러가지 모습과 믿음으로 고백한다. 마치 고고학자가 자기가 아는 만큼 유물에 대해 평가하듯 자기가 체험한 하나님, 이를테면 몸이 불편하거나 질병으로 고난중에 있거나, 이미 나음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치유의 하나님,이라 고백할 것입니다. 연애하는 사람이나 신혼부부와 같이 사랑의 달콤함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일 것이며, 불의한 일을 당하였거나 지금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정의의 하나님은 살아계실거라고 고백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공통의 고백은 하나님은 선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에는 선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선하지 못한 일이 더 많이 있다. 그러다보니 선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들이 불의한 일을 당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럴 때면 안타깝게도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다. 어떤 때는 하나님 당신이 진정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라는 원망을 입 밖으로 내뱉기도 한다. 어떤 때는 과연 살아계신 분이 맞을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의인이 곤란을 당하고 오히려 악인이 득세하는 것을 보면 분이 오르고 답답하다 보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한없이 참고 착한 마음을 지키는 자들에게 끊임없는 불이익이 닥쳐오는 현실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하지만 분명히 명심하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며 의인의 하나님이시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에 의해 곤란을 당할 때 지난 날 의의 하나님으로 자기를 도와주신 하나님을 찾았다. 그리고 다윗이 부르짖었던 그 의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결국 다시 세워주셨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의의 편에 서야 한다.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한다. 그래서 불의를 당하고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의 편에 서서 선을 행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이다. 베드로전서 3장 12절에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고 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선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 올 한해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는 한해가 되게 하소서. 교회와 가정에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김명수목사 / 온땅선교회


목-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본문:요 14:1~6
찬송가: 365장
 
초대교부 이레니우스는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이 풍성하게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인가? 무엇이 인생을 풍성하게 사는 것인가?
 
갖가지 이유들로 고민했던 성경 속 인물들의 찌푸린 얼굴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주름진 이마를 떠올려본다면 대저 걱정과 근심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것 같다. 지금도 TV를 보면 온갖 걱정과 근심이 쏟아지지는 걸 보면 인류는 걱정에 강하게 붙들려 있는 듯하다.
 
우린 왜 이리 걱정을 할까? 우리가 걱정을 한다는 건 그만큼 우리라는 존재가 불완전한 존재요, 미래가 예측 불가능한 존재라는 방증이다. 병원마다 영안실이 존재하듯 삶은 언제나 죽음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간다. 반드시 죽을 삶을 살 우리가 5분 뒤조차 짐작할 수 없기에, 삶은 늘 근심을 동반하는 것이다. 게다가 마귀의 부추김이 있다. 그들은 치밀한 계획으로 우리를 염려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어 고민하게 하고 좌절하게 한다. 모든 분야에서 그들은 문제를 만들어 우리를 소란하게 하고 시름에 빠지게 한다.
 
이렇듯 걱정이라는 사슬에 매인 우리를 풀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 본문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이, 성령님이 누구인지를 올바로 알면 근심이 그친다는 말씀이 본문이다. 갓난아기가 젖을 주지 않을까, 입히지 않을까 근심하는 걸 보았는가? 아기는 부모에게 완전히 의존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지어진 존재인 우리가 왜 그 주인인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할까?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가시 속에, 불길 속에, 바람 속에 내버려두시지 않으신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의존해야 한다. 걱정, 근심이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 믿음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겠는가? 근심은 불안이라는 안경을 쓰고 현상을 선택하지만, 믿음은 언약이라는 안경을 쓰고 하나님을 선택한다. 짚신 장수와 우산 장수를 하는 두 아들의 어머니는 비가 오면 비오는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장사가 안 될 한쪽 아들을 걱정하며 울상지었다. 생각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유익한 근심도 있다. 바로, '어떻게 하면 내 인생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될 수 있나'를 고민하는 것이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고민들이 기도로 승화되고, 삶으로 재현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비구름 위를 나는 비행기는 그 아래의 폭풍우나 번개를 개의치 않는다. 신앙의 고도가 차츰 높아져 가는 축복받은 교인들에게 세상과 마귀가 주는 고민과 염려들은 모두 저 낮은 곳에서 벌어지는 작은 소음에 불과할 뿐이다.
 
어떤 근심을 가장 많이 하는가? 그런 근심들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근심은 무엇일까?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빛으로 오신 주님! 새해에는 염려 걱정하기 보다는 기도하고 맡기는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기목사 / 세계로교회


금-하나님 주신 땅을 얻으려면
본문: 신명기 4:1-2
찬송가: 347장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그들에게 가나안땅을 주시기 위해 모세를 세워 팔십년을 준비해오셨다. 모세는 오늘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있는 이스라엘을 향해 출애굽이후 40년간 일어났던 과거의 시간을 회상하며 하나님의 구원은 그저 이론이나 관념이 아니라 실제의 역사적 사건임을 보여준다. 모세가 회고 간증을 통하여 증언하고자 하는 진리는 하나님은 창조자시요 이스라엘을 먼저 택하셔서 사랑해 주시며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분임을 다시 알리고 오직 그분만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것이 축복의 지름길이요 불순종할 때는 심판이 있었음을 상기시킴으로써 새 세대의 신앙결단을 촉구한다.
 
모세는 몇 날 되지 않아 너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반드시 준행해야 할 것을 요구한다.
 
먼저는 그 땅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하고 막연하게 듣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이해함(창11:17) 주목하고 응답함(창17:20) 듣고 순종함(출24:7)을 의미한다. 많은 성도들이 말씀을 듣는 태도에서 실패한다.
 
두 번째로 그 땅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어리석은 기준으로 늘리거나 줄여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자기의 선입견과 주관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조차 이를 기준으로 가감하고픈 유혹을 받는다. 하와가 범한 죄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행위를 거듭 금하시고, 가감하면 심판을 받게 된다고 명백히 말씀하신다.
 
셋째로 그 땅을 얻으려면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의인은 귀로만 듣는 자가 아니라 몸으로 행하는 자이다(롬2:13).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속이는 자가 된다. 주님도 "나를 사랑한다면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졌어도 우리가 말씀을 따라 행하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상황이나 처지에 따라 합리화하거나 가감하지 말아야한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이미 얻은 자가 아니라, 그 나라의 상급을 향해 달려가는 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땅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듣고 철저히 순종하고 이해하며, 일점일획의 가감도 없이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길, 하나님의 원칙, 법을 지키며 나아갈 때 하나님이 주신 땅(기업)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와 진노는 약속 안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의 준수는 그들의 축복과 저주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 된다. 그래서 모세는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할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랑하며 준행하며,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말하면서 다른 길을 걷지 말자.
 
<오늘의 기도>
새해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을 뵈옵는 것처럼 듣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의 큰 영향력을 미치게 하셔서 나의 언어, 사상, 습관, 생각, 사고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나게 하시며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실목사 / 빛된교회


토-세미한 소리
본문: 열왕기상 19:4-13
찬송가:446장
 
신학자 파스칼은 "하나님 이하의 어떤 것으로도 인간의 영혼은 그의 목마름, 굶주림, 불안과 좌절을 채우기에는 불완전하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만든 공백이 있다. 이 공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채울 때까지 채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오늘 본문에서 이적을 행했던 엘리야, 능력의 종이였던 엘리야가 죽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육신의 몸이 노쇠하여 죽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바알선지자들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차마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할 수 없어 죽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갈멜산의 대결에서 바알선지자들의 부르짖음은 헛된 신에게 소리치고 있는 것임을 보았다. 그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부르며 응답을 간구했다. 그리고 영적전쟁에서 승리의 깃발을 들었다. 그러한 그가 불과 하루 만에 영적침체에 빠졌다. 심적인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아합의 처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내일 이맘때에 반드시 엘리야의 생명을 취하겠다고 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엘리야는 자신의 생명을 위해 도망쳤다. 홀로 광야로 간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서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 보다 낫지 못하니이다"하고 낙담하였다.
 
이러한 연약한 엘리야에게 찾아오신 주님! 그 주님은 두려움과 공포로 지칠 대로 지쳐 쓰러져 자고 있는 엘리야의 심장까지도 어루만져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허기에 지친 엘리야에게 떡과 물을 공급하시는 생명의 떡이요. 생수가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먹고 마시고 도로 누워 등을 땅에 대며 또 다시 포기하는 자에게 책망치 않고 찾아오시는 주님이시다. 그리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하시며 호렙산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이시다.
 
바알선지자들에 대해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던 엘리야의 무기력한 모습이 완전하지 못한 우리들에게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세벨의 소리는 생명을 위협하는 소리요, 울적한 기분으로 끌어내리는 소리요, 부정적 기분으로 가득 차게 하는 소리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리는 믿음이 작고 약점과 허물이 많은 자들을 세우셔서 계약하는 소리이다. 이제 공포와 절망의 심경에서 하나님의 위로의 눈길을 바라보아야 한다. 호렙산 굴 안으로 다시 찾아오셔서 "네가 어찌 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부르시는 인애하신 주님의 소리에 우리는 귀 기울여야한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 채우소서"라고 외치며 겸손으로 무릎 꿇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가 사명에 나약해졌을 때, 하나님은 강한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 가운데에서 장엄한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시므로 주님의 세미한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오늘의 기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하나님! 지치고 힘들 때 마다 찾아오셔서 소망의 옷을 입혀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음성에 "예"하고 순종하며 따라 가는 한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점숙목사 / 정드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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