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소풍

[ 예화사전 ] 아름다운 소풍

김운용교수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2월 27일(목) 09:37

[예화사전]

참 비극적 생을 살다 간 시인 천상병은 자신의 삶을 '아름다운 소풍'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걸었던 길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다. 식민지의 아들로 일본에서 나고 자라야 했던 첫 소풍이 그랬고, 비판적 지식인으로 거듭 태어나야 했던 대학 시절이 그랬고, 좋은 대학을 나오고도 누구처럼 좋은 자리 차고앉을 수 없었던 시대적 고뇌가 그랬다. 국가권력은 '새'처럼 자유롭고만 싶은 그를 '동백림 사건'으로 엮어 중앙정보부 고문실에 내던졌다. '아이론 밑 와이셔츠처럼' 고문을 당하며 6개월간의 긴 소풍을 끝내고 나왔을 때 그는 성불구자가 되었고, 행려병자로 시립정신병원에 갇히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그런 악독했던 세상을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아파본 사람만이, 절망해 본 사람만이, 소중한 것을 박탈당해 본 사람만이, 소외의 극점까지 내몰려 본 사람만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존엄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가 보다.

2010년 천상병 문학상을 수상한 송경동 시인은 수상작인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이라는 시에서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물여덟 어느 날,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 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단다. 어느 대학 출신이냐고 묻길레 웃으면 고졸 출신이라고 했더니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유리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고 적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난 근래에 어느 단체에 소속되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단다. 그때의 이야기를 그렇게 쓰고 있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 저 바다 물결에 밀리고 있으며 /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수상 소감에서 그는 고백한다. "부족한 저에게도 '우연히 오게 되었지만, 이 세상은 참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미워할 일보다 사랑할 일이, 절망할 일보다 꿈꿀 일이, 다툴 일보다 새롭게 느낄 일이 훨씬 많은 곳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런 마음 더 소중하게, 잘 간직하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큰 상을 주시나 봅니다. 좌절하지 말고 저에게 주어진 '소풍'을 잘 마무리 하라고, 또 어떤 더 가혹한 '소풍'으로 세상이 저를 보내더라도 너무 외롭게만 생각하지 말라고 큰 덕을 주시나 봅니다. 천상병선생님처럼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나의 '소풍'을 살아야겠습니다."

힘 있는 사람에게 줄을 대려고 몸부림치지 말고, 유력한 어느 단체회원임을 자랑하지 말고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임을 진정으로 자랑할 수 있을 때, 오늘 아픔이 있고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살아야 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한해도, 인생도 아름다워지리라. 한번 살다가는 인생이고 다시는 주어지지 않을 이 한해가 '아름다운 소풍'이 되리라.


김운용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ㆍ예배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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