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은 새 부대에

[ 문단열의 축복의 발견 ] 축복의발견

문단열교수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2월 21일(금) 10:04
[문단열의 축복의 발견]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
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눅 5:36~39

살다보면 참 어이없고도 재미있는 일을 많이 보게 됩니다. 예전에 제가 살던 곳 근처에 '동네옷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옷집의 이름이 '소말리아'였습니다. 어두운 파란색 바탕에 흰색 한글로 쓰여져 있는 간판인데 무슨 연유가 있는지 혹은 업주가 이름을 지을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세련된 패션을 다루는 집의 이름이 소말리아라는 것은 정말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본 그 집이 궁금해서 하루는 지나가며 옷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나 간판과 어울리는 옷들이 모여 있는지 옷들은 거의 회색과 푸르스름한 색깔의 조합으로 그 어떤 귀공자가 입어도 바로 '소말리아'를 떠올리게 하는 콜렉션들이었습니다. 간판과 옷들의 그 슬픈 일치는 이상하게도 저를 끄덕이게 했습니다. 그 후로도 그 옷집은 학교로 통학하는 버스길을 지날 때면 언제나 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여느 때와 같이 버스 창밖을 내다 보던 저는 순간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소말리아'가 '샹젤리제'로, 어두운 푸른색 간판은 주황색의 화려한 불어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달리는 버스에서 허리를 구부리며 문득 든 생각은 '주인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였습니다. 그리고는 한 동안 '소말리아', 아니 '샹젤리제'는 잊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그 옷집 근처를 걸어서 지나게 된 날 저는 처음 '소말리아'를 직접 와서 본 날 보다 좀더 슬픈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간판이 바뀌면서 당연히 다 바뀌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가게의 옷들과 분위기가 '소말리아'때와 완벽하게 같았던 것입니다. 푸르스름하고 회색이 주종인 작업복 같은 외출복들, 어두운 형광등 조명 너머로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의 무심한 눈길과 마주쳤을 때 저는 황급히 시선을 피해 그곳을 지나쳐 걸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살다가도 우리는 어느 순간 '내 인생은 뭔가 잘못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대전환을 겪는 일이 인생에 몇 번 있습니다. 트럭운전사가 오페라 가수가 되기도 하고, 회계사가 화가가 되기도 합니다. 학교를 갑자기 중퇴하고 창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하루 아침에 생각이 바뀌어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환 중의 최고의 전환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어제까지도 신앙을 비웃고 친구를 핍박하던 내가 '나는 예수쟁이'라고 고백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칙칙한 '소말리아'가 칙칙하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고 화사한 '샹젤리제'라는 간판을
거는 것입니다. 참 좋은 일입니다. 참 위대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냥 거기까지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늬는 기독교인인데 행동이 옛날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사람들 말입니다. 간판만 바뀌었지 가게 조명도, 인테리어도, 모아 놓은 옷들도 알량하게 깔끔한 것 한 두점 빼고는 완전히 동일합니다.

우리 가게의 실체는 간판이 아니라 '의상 콜렉션'입니다. 간판이 아무리 멋있어도 가게 주인인 우리가 모아 놓은 옷들이 옛날 옷들이면 우리는 여전히 '소말리아'입니다. 그 옷들이 누구입니까.

'내가 만나 시간을 보내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환경의 산물입니다. 그 환경이 무엇입니까. 내가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당신의 간판은 멋지게 바뀌었는데 당신의 삶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이 전혀 달라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 간판에 맞는 새 사람들을 만나십시오. 거룩한 간판에 맞는 경건하고 맑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십시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는 것입니다.


문단열 /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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