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곳에 임한 예수

[ 사설 ] 작은 곳에 임한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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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8일(화) 16:08
[사설]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의 일절 가사 중에는 성육신의 물리적 거리감과 예수님의 탄생의 현장감을 실감하게 한다. 그 영어 원문 가사를 음미해 보면 그 거리감과 현장감은 더욱 생생하다. "그 분은 저 별들 중에 가장 높은 별 저 너머로부터 이 가장 낮은 지옥에 도달하셨습니다."
 
하늘을 한번 쳐다보라. 눈으로 살필 수 있는 별들 저 너머에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있고 그 모든 별들 중에 가장 높이, 멀리 있는 그 별을 넘어 초월과 영광 가운데 계시던 하나님께서 수 백 년 간 식민지 압제에 시달리던 유대민족 한 작은 마을에서도 하루 밤 거할 곳을 찾지 못하시고 외양간에서 태어나셔서 구유에 누이셨다. 바로 그곳이 말씀이 육신이 되신 현장이고 고백과 경배와 묵상이 시작되는 곳이다.
 
제97회기 우리 총회는 '그리스도인, 작은이들의 벗'이라는 주제로 장애인, 도시빈민, 탈북난민, 다문화 가정 등 사회적 약자들의 복지와 인권을 관심의 초점과 사역의 중점으로 천명하여 교계와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18대 대선 주자들이 선거운동 가운데 앞 다투어 쏟아놓은 공약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와 국가도 복지와 인권이 외면하거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라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음을 본다. 빈부의 격차와 세대 간의 대립,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 그리고 다문화 가정의 소외와 같은 문제들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시급한 현안들이고 교회의 존재의 이유를 묻는 질문들이다.
 
사회, 국가적 관심과 운영의 방향과 교단적 차원에서의 교회의 주제의 천명이 이와 같이 일치하고 있음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보면서 그 가능성을 실천으로 살려나가야 할 것이다. 첫째, 교회는 그러한 정치적 공약이 실천되는 과정에서 협력자로서, 그리고 그것들이 제대로 지켜지는 지에 대한 시민 사회적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둘째, 비록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복지와 인권을 위한 노력들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교회만큼 소외와 고립의 현장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정서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본다.
 
세째, 무엇보다 교회 스스로 작은 자들과의 일체감을 회복하여 그들과 더불어 사는 영성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인권과 복지가 예배와 경건의 외연이 아니라 핵심이며 사역의 잉여가 아니라 본질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을 입으셨을 때 그 분은 세상의 권세자로서 나셔서 작은 자들을 살피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작은 자로 오셔서 권세 있는 자들을 책망하시고 인색한 부자가 빈손임을 가르쳐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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