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수필 '미리 크리스마스와 내일의 크리스마스'

[ 교계 ] 크리스마스 수필

유혜자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2월 13일(목) 14:38

[크리스마스 특집 수필]

1.
 
1993년 11월, 프랑크푸르트 뢰머 광장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시장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12월 20일이 넘어서야 크리스마스 캐롤을 방송할 수 있었기에, 11월에 흥겨운 분위기의 크리스마스 시장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었다. 시장 중앙에는 높다란(28m) 크리스마스 트리가 별과 천사와 촛불 모양, 종들을 매달고 있었고,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있었던가. 죽 늘어서 있는 가판대와 가게에서는 아기자기한 장난감과 재미있는 모형의 과자, 초콜릿, 그림, 도자기, 동화책, 작은 악기, 여러 가지 모양의 소시지 등 선물용품을 팔고 있었는데, 그중 나무로 깎은 집 모형과 나무조각품이 인상적이었다. 집 모형은 동화의 주인공이 살 것 같았고, 목각올빼미는 뾰죽한 귀와 얼굴에 큰 눈이 그려져 있는데 몸통에 네 개의 둥근 원을 파서 속엔 곡식을 넣어 놓았다. 새들이 겨울을 나면서 먹을 수 있는 양식으로 정원의 나무에 걸어두어 새들이 삭막한 겨울을 이겨내게 한 것이라 했다.
 
마법이나 요술을 보일 것 같은 장난감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외국인끼리도 언어 대신 미소를 나누며 소통하는 대화가 있었다. 자녀들에게 줄 선물을 사면서 어떤 꿈을 심어줄 수 있을까, 친지에게 선물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상상해보는 듯한 이들도 있었다. 자신의 어릴 적 크리스마스를 추억하며, 호기심과 놀람과 기쁜 현실, 판타지가 공존하는 곳. 1393년부터 시작된 프랑크푸르트 크리스마스 시장은 드레스덴, 베를린, 뉘른베르크 등 독일의 다른 도시보다 몇 해 먼저 시작되었다는데 11월22일부터 12월23일까지 열린다.
 
예쁘고 반짝거리는 상자의 크리스마스 오르골이 가득한 가게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한 상자의 뚜껑을 열자 'silent night' 맑은 선율이 울려나왔다. 오스트리아의 눈 쌓인 산골마을 오베른도르프에서 모르 신부가 작사를 해서 친구 프란츠 구루버 교사에게 곡을 붙이게 한 'silent night'을 크리스마스 미사에 부르려고 했다. 그런데 하필 크리스마스 이브에 성당 오르간이 고장 나서 할 수 없이 웅장한 오르간 반주 대신 기타 반주로 미사를 드려야 했다. 그런데 소박하고 평화로운 노래의 합창이 밖으로 울려 나가자 불화하던 이웃마을에서까지 노래를 따라 부르며 화해하게 되고 사랑이 넘쳤다고 한다. 그러나 이 경건한 노래가 1818년에 작곡되었는데 이름 없는 시골 신부와 교사에 의해 만들어진 노래여선지 쉽게 전해지지 않았다. 얼마 후 성당에 오르간 수리공이 5주간이나 머물면서 오르간 위에 있던 'silent night'의 악보를 익혀 잘츠부르크합창단에 알려주어 부르게 했다. 1831년에는 티롤 지방의 합창단이 독일을 순회하며 부른 뒤, 1939년에야 티롤의 유명합창단이 뉴욕의 해밀턴 기념비 앞에서 부르면서 미국 전 지역에 퍼지고 점차 세계적인 애창곡이 되었다.
 
좋은 노래가 작곡 21년 뒤에야 애창곡이 되었으니 이 노래의 탄생과 전파비화가 초라한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의 생애와 비슷하다. 예수님이 지상의 존재하는 모든 것에 군림하지 않고 서른세 살이 되어 병든 자를 고쳐주고 사랑을 가르쳐주며 세상을 구원하기까지의 이름 없는 역정이 생각나 더욱 귀하게 여겨졌다. 아이보리 빛깔 상자의 'silent night' 오르골을 사서 발길을 돌리는데 정식 캐롤이 울려나오는 레코드가게가 가까이 있었다.
 
레코드 가게 앞을 지날 때 들려온 소리에 나도 모르게 입속으로 따라 부른 노래는 '할렐루야'였다. 제1부 예언과 제2부 수난과 속죄, 부활과 영생의 3부로 구성되어 있는 헨델의 '메시아'중 유명한 44번째 곡인 할렐루야. 작곡자 헨델은 독일 할레에서 바하와 같은 해에 태어나 말년을 영국에서 활약하다 돌아갔다. 헨델의 '메시아'는 꼭 크리스마스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성탄예배의 마지막에는 합창으로 '할렐루야'를 부르는 교회가 얼마나 많은가.
 
놀이공원에 간 어린이처럼 크리스마스 시장을 떠나기 싫은데 예정된 시간이 다가와 광장을 떠나려고 할 때였다. 한쪽에 마련된 야외무대에서 울려오는 성탄음악이 또 발길을 붙잡았다. 번쩍거리는 트럼펫이 멜로디를 연주하는 브라스 밴드소리는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제1부 예언과 탄생, 제2부 수난과 속죄, 제3부 부활과 영생 등) 중에 나오는 'Jesu of Mans Desiring(예수는 만인의 기쁨)'이었다. 바흐라면 독일 아이제나흐의 독실한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 생애를 거의 교회음악에 봉사한 분이다. 말년 25년을 라이프치히 교회에서 보냈는데 10년(1731)되던 해 성탄예배를 위해 작곡한 6부작의 대곡으로 그 중 'Jesu of Mans Desiring'은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밝은 곡이어서 예배 자리가 아닌 곳에서도 자주 연주된다.
 
길지 않은 크리스마스 시장 관광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어둑어둑하던 시장에 일제히 전구가 확 켜졌다. 일시에 오색 빛 휘황찬란한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었다. 그때야말로 빛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빛과 생명 되신 주를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을 비춰주려 태어나신 주님. 그야말로 크리스마스 시장의 빛 가운데로 다시 가고픈 우리에게 안내인은 숙소에 들어가서 마시라고 따뜻한 음료수를 나눠주며 마이크로 버스에 오르라 했다. 글뤼 와인(Gluh Wein)이란 이름으로 설탕, 꿀, 향초와 약초를 넣고 달인 포도주인데 크리스마스 시장에 오면 꼭 마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숙소로 가면서 차 안에서 틀어주는 테이프의 음악은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X-mas)'였다. 차분하고 아름다운 곡조로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영화 'Holiday Inn'의 주제가. 작곡은 미국의 제2국가라고 불리는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를 작곡한 발라드의 왕 어빙 빌린인데, 영화에서도 빙 크로스비가 직접 불렀던 노래의 레코드는 세계 최대의 판매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세계적인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12살 때 스테레오 전축을 샀을 때 덤으로 받은 빙 크로스비의 CD에 '화이트 크리스마스', '고요한 밤', '징글 벨', '아베 마리아'가 들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해 12월엔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빙 크로스비가 부른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아주 행복했다고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하루에도 몇 번이나 계속 듣고 따라 부르며 행복했다는 글까지 썼다.(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중).
 
나도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음악을 들으며 한 해 동안 쌓였던 착잡한 마음을 아쉬워하기보다 동화의 나라에 다녀온 듯한 기쁨이 밀물져 오는 것을 느꼈다. 기독교의 휴일인 크리스마스에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음악이 아닌가. 누군가 "음악은 우리가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천국의 모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11월 하순에 들어본 크리스마스 음악들이 그랬다. '미리 크리스마스'를 맛본다는 기분.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듣는 음악은 비싸지 않은 선물이라도 크리스마스에 주고받으며 사랑의 촛불을 밝히라고 메시지를 주었다. 새들이 먹을 것이 없는 겨울에 먹을 곡식을 넣은 목각 올빼미, 그것은 모든 만물을 아끼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깨닫게 하는 교훈이 들어 있었다.
 
직장에서 한동안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느끼던 중, 우리 방송사(MBC) 재단인 방송문화진흥회에서 제정한 '93방송문화진흥대상(그해에만 시상하고 경비문제로 없어졌음)의 라디오제작부문 수상예정자로 나를 포함, 복수 추천이 됐으니 기대는 하지 말라고 누군가 언질을 주었다. 심사기간 동안 기대도 않고 있던 내게 뜻밖에도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얼마나 기뻤던지. 부상으로 유럽여행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부문 수상자들과 유럽의 주요방송 견학 일정에 참여하면서, 바쁜 업무에서 풀려난다는 자유로움과 유럽의 문물에 접해본다는 기대로 들떴었다. 첫 행선지가 프랑크푸르트였지만 크리스마스 시장 관광은 예상치 못한 것으로, 몸체보다 더 좋은 덤을 받은 것 같았다. 과연 좋으신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해두신 복을 받았구나 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며, 함께 수상후보로 올랐던 동료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으나 그날 밤엔 좋은 꿈을 꿀 것 같은 마음도 들었었다. 빛나는 새벽별이신 그리스도를 볼 수 있으려나.
 
별을 따라 구유에 나신 아기예수를 만나러 가는 동방박사들처럼 가로등을 따라가는 우리들 마음도 설레었던 것 같다.


2.
 
어느새 12월, 올해는 더욱 고달픔을 느끼게 된다. 미진한 일을 마무리하고 남에게 미안했던 일을 사죄하고 반성할 수 있는 며칠의 여유가 남아 있다. 세상이 조금씩 아름다워 보이고 살아 있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며 주님의 사랑이 너무 큰 것을 조그만 일에서도 느끼게 된다. 고마웠던 이에게 감사하며 오래 소식이 없던 이에게 안부를 전해야겠다. 오해로 불화하며 마음의 벽을 쌓은 이가 있다면 화해를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
 
5백86일 만이라는 기나긴 동안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되어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던 제미니 호 선원들도 오랜 교섭 끝에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들에게 올해의 12월은 얼마나 큰 감격의 나날일까. 또한 각각 청사진을 제시하며 좋은 정책으로 잘 사는 국민이 되게 해주겠다고 각축을 벌이던 제18대 대통령후보들의 경쟁도 끝나 새 대통령도 결정되었다. 당선자의 감격은 납치되었던 선원들의 기쁨과는 다를 것이다. 공포와 굶주림 등 어둠에서 빛을 찾은 선원들은 해방과 자유, 기쁨을 되찾은 결과이므로 앞으로 밝은 세상에서 감격의 나날을 누릴 것이고, 당선자는 이제부터 무거운 업무와 책임의 부담으로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 대통령을 만들었는지 아니었는지 모르지만, 서울광장의 초대형 성탄트리 주변에 모여든 시민들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화합하고 다 함께 협력하여 좋은 정권을 만들기를 바라며 트리 꼭대기에 달린 십자가를 올려다보고 있노라니 휴가 나온 군인들도 곁에 많이 와 있다. 아기를 안고 있는 부인의 사진을 찍어주는 젊은 아빠의 선한 눈빛도 있고 멀지 않은 구세군 자선냄비에 재빨리 돈을 떨구고 가는 착한 손길들도 보인다.
 
원래 크리스마스에는 전날 밤 미사를 마친 사람들이 가진 것을 내놓아 이웃을 돌며 축복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풍습이 있었던 것 아닌가. 지금은 교회에도 거의 없어졌지만 가장 중요한 행사로 생각하는 곳도 많다. 12월의 차가운 날씨만큼 추운 이웃을 살펴야 할 때이다. 이웃을 도와야 하는 계절이 따로 있을 리 없지만 기독정신으로 더 따뜻한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 마음을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갖게 된다. 내 주변부터 살펴보는 마음의 눈길이 필요하다. 이것이 예수님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요구했던 것이고 그것이 전해지고 유지되기를 바랐다.
 
크리스마스 때뿐만 아니라 일생을 남의 나라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돌아간 분들이 묻힌 양화진 외국인 묘지가 있지 않은가. 그중 결핵환자 퇴치를 위해서 크리스마스 실을 창시한 셔우드 홀 박사가 생각났다. 2호선 합정역에 가서 양화진 묘역에 들어서니 주말이어선지 이 묘지를 찾은 사람이 제법 많다. 입구 중앙에 있는 셔우드 홀 박사의 가족 묘지에는 참배 와서 바친 하얀 국화가 10송이도 넘게 놓여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중앙에 위치한 '셔우드 홀 공적비'가 있는 홀(Hall)일가의 묘소는 기침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간절한 내부의 음성이 배어 있을 듯하다. 부친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 1860-1894))은 평양지역의 개척선교사로 조선에 1890년에 와서 청일전쟁 격전지였던 평양에서 부상병들을 밤낮 없이 치료하고 신자들을 살폈다. 1891년에 의료선교에 꿈을 가진 미모의 여성 로제타 셔우드(Rossetta Sherwood 1865-1951)와 결혼, 신혼 초기 남편은 평양에서, 부인은 서울에서 활동하다 1894년에야 평양에서 가정을 이루었다. 부상병들을 밤낮 없이 치료하고 살피던 윌리엄은 말라리아에 걸려 서울에서 치료하려고 제물포 항에 도착했으나 발진디푸스까지 걸려 닷새 후 석양 무렵 결혼 3년도 못 채우고 숨을 거두었다.
 
부인 로제타 여사는 이국땅에서 남편을 잃고 아들 셔우드와 함께 고향으로 가서 남편이 못다 이룬 꿈을 계속하기 위해 조선의료 선교 지원을 위한 모금 강연에 힘써 기금을 마련, 아들과 유복녀를 데리고 3년 만에 다시 우리나라로 왔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을 풍토병으로 잃고 말았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1898년 평양에 광혜여원(光海女院)을 설립하고, 미국에서 배운 점자사용법으로 한글 점자법을 만들어 맹인교육을 실시한 로제타 선교사는 남편의 기념병원인 기홀(記忽)병원도 세웠다. 1917년에는 서울로 이주하여 최초로 여자의학교(경성여전- 수도의대- 우석의대를 거쳐 현재 고려대의대로 변신)를 설립했고 동대문에서 부인병원(현 이대병원)의 의사 겸 약제사로 활동하며 인천 기독병원, 인천간호보건대학 등을 설립, 수많은 여성 의사와 간호사들을 육성했다.
 
부모의 뜻을 이어 받은 아들 셔우드(Sherwood 1893-1991)가 의사가 되어 역시 여의사인 메리안과 결혼, 1926년 한국에 와서 결핵협회를 조직하고 크리스마스 실을 만들어 결핵을 퇴치한 공으로, 대한 결핵협회가 셔우드 탄생 1백주년에 맞춰 커다란 공적비를 세워주었다. 셔우드는 한국에서 자라는 동안 우리나라에 결핵환자가 많은 것을 보고 캐나다 의대에서 주로 결핵연구를 해서 1928년 해주에 결핵 요양병원을 세우고, 병설 조선 결핵위생학교도 만들어 헌신하다가 태평양 전쟁 때 일제에 의해 추방되기까지 15년 동안이나 봉사했었다. 1963년에 다시 한국에 와서 70세로 은퇴했다. 천국에서 아들 셔우드의 공적비를 보며 어머니 로제타 여사는 흐뭇해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올 때는 양화진에 붉은 노을이 물들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에는 여의도공원에서 애인 없는 이른바 '솔로' 3천명이 단체 미팅을 한다고 한다. 이날 오후 3시 남자들은 흰색, 여자들은 빨간색 옷을 입고 여의도공원 양편에 대기한다. 신호가 울리면 달려가 마음에 드는 사람 손을 잡는데 먼저 잡는 게 '임자'다. 내키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손을 잡았더라도 그날만큼은 일단 잡은 사람의 '짝'이 돼 주는 게 원칙이란다. 전국에서 신청자가 쇄도하고 있다는데 3천명 안에 들지 못하더라도 슬퍼하거나 실망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날 짝이 안 되었더라도 낙심하지 말자고 부탁하고 싶다.
 
젊은이가 아니더라도 크리스마스엔 무얼 할까, 계획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6ㆍ25직후처럼 가난한 시절에는 교회에 다니지 않던 어린이들까지도 교회에서 선물을 받고 어설픈 성극(聖劇) 구경을 하면서 보냈다. 좀 더 자라서 살림이 나아졌던 7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모처럼 통금 없던 것을 틈타 술 마시고 노래하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 후 크리스마스에 마음이 들떠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12월 20일 이전엔 크리스마스 캐롤을 방송에서 틀지 않도록 지시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이젠 안정이 되어 다행이다.
 
초등학생 시절, 어른들을 따라 새벽 찬송을 다닐 때 어른들이 '메리 크리스마스'하고 외치는 것을 나는 '내일이 크리스마스'로 잘못 알아들었다. 원래 'Merry X-mas'는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님께 경배드리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소식 없던 이에게 어서 크리스마스CD라도 사보내야겠다. 내게 고마워하기보다 냉담해진 그가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되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올해 크리스마스에 안 풀리면 내일의 크리스마스엔 감사하는 마음을 꼭 되찾으리라 믿는데 '띵똥' 문자메시지가 왔다. 'Merry X-mas'이다.
 
영국에서 1992년에 발송된 세계 최초의 문자메시지도 'Merry X-mas'였다고 한다. 이 시간에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인구는 얼마나 많을까.
 
내일 크리스마스에는 화해와 사랑의 따뜻한 목소리로 정답게 나누는 '메리 크리스마스'를 듣고 싶다.

유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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