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12/17~22

[ 가정예배 ] 가정예배 12/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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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2일(수) 16:04

[가정예배]

월-성탄절의 세 번째 촛불이 켜지다-힐링
본문 : 이사야 9: 1-6절
찬송가: 104장
 
국제투명성기구(TI)는 지난 12월 5일 세계 1백76개국 공공부문 청렴도 평가 지표인 부패인식지수(CPI)를 발표했는데 한국의 순위가 올해 45위로(일본 17위) 지난해 보다 2단계 하락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7위로 하위권을 맴도는 수치이다. 부패인식지수가 낮다는 것은 양심의 기능이 떨어지고 그만큼 부당하고 억울한 일이 사회에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통사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든지, 믿고 먹은 음식이 유통기한이 지난 상한 식품이라든지, 압제자의 막대기와 채찍이 가난한 자와 약자에게 집중된다든지 하는 고통스럽고 멸시당하는 일이 많은 사회라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가 성장을 해도 행복감과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대강절의 3번째 메시지는 힐링이다.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을까? 그 어깨에 정사를 메려고 오신 것이다. 즉 대신 무거운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오신 것이다. 오셔서 백성이 큰 빛을 보게 하시고 우리들의 멍에와 어깨에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3대 사역을 통해 그 일을 이루셨다.
 
마태복음 9장 35절 보면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첫째 전파하시고, 둘째 가르치시고, 셋째 고치셨다. 즉 세번째로 하신 일이 치유하신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힐링을 원하고 있다.
 
성탄절은 고침을 받는 날이며 힐링되는 날이다. 힐링은 내적인 상처의 치유와 더불어 어두움의 주인인 사탄을 몰아냄에서 시작된다. 이 일을 성령님께서 하신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해로 치료의 광선을 발하시고(말4:2) 예수님은 속죄와 구원으로 치유하시고 성령님은 동행하심과 임재하심 그리고 거주하심으로 치유하신다. 성령님이 들어오시면 마귀와 사탄은 쫓겨나고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여 상처가 치유되고 삶의 회복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힐링을 경험할 수 있을까?
"한 아들은…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그렇다.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야 한다.
 
새로 뽑게 될 대통령이 우리 인생의 왕이 될 수 없다. 물질의 풍요가 우리의 인생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다. 지식과 명예와 향락이 우리의 인생을 주관할 수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은 영원하지 못하기에 허무하고 덧없다.
 
우리는 오늘 다시 결정해야 한다. 예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 아기 예수 앞에 엎드려 경배한 동방박사처럼 역사의 진정한 왕이시고 구원자이신 예수님 앞에 겸허하게 엎드려야 한다. 답답하고 억울하고 상처받았어도 하늘의 평강으로 임하시는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자. 힐링되는 기적과 감격을 경험되는 2012년 성탄절이 되길 기도한다.

<오늘의 기도>
고통당하는 자, 멸시당하는 자,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는 자에게 빛을 비추어 주셔서 치유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영익목사 / 성문교회


화-예수님의 제자 된 교회
본문: 마 28:18~20
찬송가: 212장
 
대통령 선거가 목전에 와 있다. 5년마다 대선을 치르면서 온 나라가 진통을 겪는 것은, 누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모든 국민들의 앞날이 더 잘 될 수도 더 안 될 수도 있는 중요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영원한 길을 누구와 함께 해야 할까? 누가 우리 인생의 인도자가 돼야 할까?
전능하신 하나님, 더 가까이는 믿음의 주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이 돼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고 하나님 나라의 축복과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은 스스로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고 하신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는 마귀가 공중권세를 잡은 자로 모든 인간을 죄로 타락시켰고 이로 인해 가난하고 병든 사망의 길로 이끌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주셨고 더 나아가 부활의 첫 열매로 이를 믿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승리를 이 땅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거룩한 사건이었으며 이로 인해서 예수님은 마귀의 권세를 이기시고 이 세상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승리자가 되신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로 삼으라"고 하셨다. 이는 제자들과 오늘날 모든 교회에 주신 사명이다. 이 예수님의 말씀 중에는 교회의 중요한 본질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교회는 복음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롬 1:16)"고 했다. 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이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모든 인간의 어떤 죄도 씻음 받고 사함 받을 수 있는 보혈의 능력이 있고, 죄로 죽었던 영혼, 실패하고 낙심하는 영혼, 상처받고 병든 영혼을 다시 회복시키는 부활의 능력이 있다.
이 복음의 능력으로 거듭나고 구원 받은 성도들이 세상에 가서 복음을 전하며 구원하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둘째, 교회는 예수님이 주신 꿈과 사명이 있어야 한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으라"는 말씀은 이 세상을 향한 예수님의 꿈이고 비전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죄에 눌리고 고통당하는 모든 인간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의 꿈을 이루시기 위해 제자를 3년 동안 천국복음으로 양육하셨고 그들로 가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끊임없이 예수님의 제자로 양육되어 복음의 능력과 주님의 사명을 갖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런 교회 위에 더 큰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임할 것이고 성도들은 어두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예수님의 제자된 교회로서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며 세상의 어떤 고난도 이기는 능력을 갖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태식목사 / 가나안교회


수-우물
본문: 창 26:17-25
찬송: 538장
 
우물은 요즘 잘 사용하진 않지만 참 정감어린 단어이다. 나이 오십이 넘은 분들은 대개 우물문화를 경험한 세대이다. 오늘 말씀은 이 우물로부터 시작된다.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의 우물이다. 하나님께선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함께 하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는 이삭과 함께 하시면서 복을 주셨다. 1백 배의 수확을 거두게 해주셨다. 그러자 그 지역의 본토인들이 이삭을 시기했다. 그래서 이삭이 사용하는 우물들을 흙으로 메웠다. 이 우물들은 아브라함이 파서 사용하다가 아들 이삭에게 물려준 것이다. 이삭은 본토인들과 시비가 붙을 때마다 우물을 팠고 그때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새 우물을 주셨다. 결국 이 모든 일을 본 아비멜렉은 이삭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군대장관을 데리고 찾아와 화친을 청한다. 이삭의 부요의 힘과 아비멜렉을 굴복시킨 힘이 우물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증거가 우물이었다. 신앙적으로 보면 매우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장소이다. 주인의 명을 받고 길을 떠난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된 리브가를 만난 곳도 우물가이다. 아무도 나오지 않는 시간에 물동이를 가지고 나온 수가성의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곳도 우물가이다. 성경은 이처럼 우물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세상에는 우물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사방에 쓴 물과 헛 물을 마시게 하는 죽은 우물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물 아닌 우물에 속아 쓴 물과 헛 물을 마시는 실패를 겪고 이리저리 방황한다. 이런 우물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38년 된 병자가 누워있던 베데스다 우물과 수가성의 여인이 찾아 온 야곱의 우물이다. 이 우물들은 소문난 유명한 우물이다.
 
야곱의 우물은 전통을 자랑하는 소문난 우물이다. 그러나 물동이를 이고 이곳에 찾아온 수가성의 여인이 그토록 원하는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이 여인이 우물에서 정말 원하는 것은 마음의 위로와 기쁨이었다.
 
베데스다우물 또한 유명한 우물이다. 물이 동할 때 누구든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병이 낫는다는 소문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여기에 38년된 병자도 머물렀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는 자신을 물에 넣어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물이 동할 때마다 이 사람이 마신물은 치유와 희망의 물이 아니라 절망과 고통의 쓴 물이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이들처럼 생수가 아닌 쓴 물과 헛 물을 마시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쓴 물과 헛 물을 마시던 이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메마르고 외롭고 힘든 자신의 인생을 고치고 회복시켜주는 생수를 마시게 된 것이다. 이들이 마신 물은 예수님이다. 요한복음 4장에서 에수님은 자신이 생명을 얻고 더 얻게하시는 생수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우리 생활의 위로와 기쁨 치유와 회복의 은혜는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시는 사람들만이 얻는 복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심으로 생명을 얻고 더 얻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경근목사 / 행복한교회


목-새해는 벧엘을 향하여 가자
본문:창세기 35:1~5
찬송가:416장
 
믿음의 조상 중 하나인 야곱의 삶은 벧엘에서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벧엘에서 꿈구며 만난 하나님은 그때까지 야곱의 아버지인 이삭의 하나님이었지 야곱의 하나님은 아니었다. 창세기 28장에 보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여호와는 야곱의 하나님이 되셨다. 벧엘에서 누었던 땅을 야곱에게 주시며 야곱과 함께 계실 것이며 지켜 주실 것과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준다는 약속까지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지켜져서 야곱은 하란에서 결혼하여 자녀들을 낳고 적지 않은 재물도 모았다. 그러나 그곳은 하나님이 주시기로 약속한 땅이 아니라 약속의 땅을 향하여 야반도주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장인 라반의 추격으로 심한 두려움을 겪었으며, 고향에 가까이 왔을 때는 형 에서가 4백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옴으로 재물과 가족은 거의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야곱의 딸인 디나가 모욕을 당하고 디나의 오빠들이 히위족속에게 보복을 함으로서 야곱의 가족은 전멸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야곱은 모든 가족과 일행에게 명령하기를 "이제 너무 위험한 지경에 우리가 빠졌으니 우리 힘으로 벗어날 힘이 없다. 내가 뵈었던 하나님을 향하여 나가가겠다. 큰 환난에서 구해주신 하나님은 만났었다. 벧엘로 올라가는 즉시 모든 이방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며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으려 한다"고 명령한다.
 
모든 일행은 야곱의 명령대로 행하게 되자 히위 족속은 물론 모든 위험스럽던 적들이 물러가게 되었고 야곱의 일행은 안전하게 벧엘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이제 2013년 사면초가에 갇힌 역경과 고난의 한해가 될듯하다. 세계적 금융위기, 주변국들의 위축과 절제, 국내기업의 부진, 선거 후 폭발적으로 터져나온 백성의 욕구, 정치, 경제, 교육, 일터, 미래, 북핵 등 우리는 무척 두렵다. 우리는 벧엘을 향하던 야곱처럼 하나님보다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던 물질이나 권위를 버리고 스스로 정결하게 하고 옷을 바꾸어 입고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벧엘에서 새로운 희망과 평안을 누려야 한다.
 
모든 나라의 흥망성쇠와 개개인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인정하고 이 모든것의 주권과 열쇠에 해결책을 가지신 하나님이 행하는 2013년을 만들자 하나님의 백성은 광야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우리가 순종하면 평안과 형통을 누리게 되지만 궁궐과 천천만마의 군사의 보호 속에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고 도와 주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신앙인이 되었다고 하면서 가장 어리석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을 향해 방향전환을 안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기다리지 않고 자기의 힘으로만 해결하려는 어리석음이다.
 
<오늘의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권능의 팔을 우리에게 펴시사 하나님을 향하여 순종하며 기도하며 세상것들을 버려 땅에 묻고 새롭게 옷입고 살게해 주시옵소서. 아멘.

김종용목사 / 신도교회


금-은혜를 받은 자
본문: 눅 1:26~38
찬송가: 305장
 
은혜가 무엇인가? 은혜란 헬라어로 '카리스'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좋은 것을 선물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주시고 우리는 받는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는 "은혜를 받는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나에게 구원을, 건강을,가족을, 재물을, 기쁨을, 행복을 주셨다. 이 모두가 은혜다. 그런데 진정한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고 계심을 아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한 은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은혜는 특별한 은혜다.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한 말이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 은혜가 마리아의 인생을 바꾸었다. 은혜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때가 있음을 말해 준다. 때론 고통이 은혜라고 말한다. 십자가가 은혜라고 말한다. 받아서 부요하게 되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내놓는 것이 은혜라고 말한다. 마리아의 입장에서 보면 시집갈 처녀의 행복을 내놓은 것이다. 이것이 은혜라는 것이다. 진정한 은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것이 은혜란 말인가? 첫째로, 이것은 하나님이 믿어 주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믿을 수 있다" "너 정도면 내가 내놓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너만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줄 믿는다" "너밖에 없어서 네게 명령한다" 바로 이런 뜻의 말씀이다. 마리아는 선택받은 여인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이요, 신뢰요, 사랑이었다. 그래서 이것은 은혜였다.
 
둘째로 그의 능력을 인정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로,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알려면 일을 맡아야 한다. 눈물을 흘려야 한다. 사명을 붙들고 씨름하는 중에 참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 무거운 짐이 그로 하여금 무릎을 꿇게 만든다. 기도하게 되니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 그 능력을 알게 된다. 그 순간 은혜임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우리를 진정으로 명예롭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만약 마리아가 이 은혜를 거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마리아에 대해 더 이상 알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가 이 놀라운 은혜에 '아멘' 하는 순간 마리아는 우리 앞에 위대한 신앙의 모델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신앙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은혜를 받은 자여! 마리아의 순종을 배우자.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큰 은혜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은혜일지라도 마리아처럼 순종하게 하옵소서. 비천한 종이오니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종찬목사 / 수원성북교회


토-아버지집에 계신그리스도
말씀:눅 2:41-52
찬송가: 535장
 
늘 운전하고 다니는 차 열쇠를 가끔씩은 허둥대며 찾아도 없을 때가 있다. 언제나 탁상 위에 두던 습관 때문에 꼭 나갈 때가 되어서야 서랍 위에 없음을 발견하고 시간에 쫓기어 허둥댄다. 허둥대는 것만큼 시간은 늦는다. 그때부터 차분히 생각한다. 내가 어딜 갔다 왔지? 무슨 옷을 입었었지? 집에 들어와선 무엇부터 했지?곰곰이 나의 일과를 추적해 보면 곧 찾을 수가 있다.
 
오늘 본문에도 유월절이 되면 절기의 관례에 따라 예루살렘에 갔다 절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을 발견하고 예수님의 부모들은 놀라서 허둥대게 된다. 어디서 잃었을까 기억을 더듬으며 찾아 헤맬 때 별의별 생각을 다 했을 것이다.
 
하루 이틀 삼일 후에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만난다. 그때 예수님의 부모님은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고 말하는 것을 볼 때 반가움과 원망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며 예상을 뒤엎는 반전의 말씀을 하신다.
 
부모는 그가 한말을 깨닫지 못했다. 낳고 기른 아들의 말을 왜 깨닫지 못했을까? 예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은 세상을 살면서 세상의 관례를 따라 살다보니 옛사랑 즉 주님과 나만이 받은 특별했던 그 은혜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절기를 지키는 관례와 예수와 함께 살아온 습관에 젖어서 예수는 당연히 우리가 어느 곳에 가든지 우리를 따라올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에 예수를 잃고도 깨닫지 못했다. 에베소교회처럼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관습에만 젖어 살고 있어서이다.
 
우리가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그 떨림의 순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던 그 예배를 잃어버리지는 않았는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는 바리새인이 되어감을 느낀다. 주님은 신령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본문에 아이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를 잃어버린지 하루였지만 온힘을 다해 찾는 시간은 사흘이나 걸렸다. 은혜를 잃어버리는 것은 쉽지만 회복하는 데는 이토록 힘이 든다.
 
우리는 성전에서 함께한 예수님을 삶에서도 함께 할 수 있도록 먼저 성전을 예배하는 곳이 되게 하고, 말씀을 탐구하는 곳이 되게 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삶을 주님께 의탁하는 기도처가 되어 성도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세상에 나가도 주님과 동행하게 하는 삶이 되게 하는 곳이 성전이다. 만일 성전을 성전답게 만들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만난 성도가 될 수 없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그리스도를 잃었다가 3일이나 걸려 성전에서 찾았다. 오늘의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잃고도 모르고 여행을 계속하는 요셉과 마리아는 아닌가? 돌아서 그리스도를 찾는 요셉과 마리아가 되어야 한다.

<오늘의 기도>
주님 늘 습관처럼 드리는 예배에서 벗어나 신령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하옵소서. 성전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통해 주님과 함께하는 삶의 현장이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준연목사 / 고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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