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장 열전 86회~88회 총회장

[ 김수진목사의 총회장 열전 ] 총회장 열전, 최병두목사 외

김수진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2월 10일(월) 10:56
[김수진목사의 총회장 열전] 

제86회 총회장 최병두 목사
 
최병두(崔秉斗, 1936-현존)목사는 경북 예천에서 최인길 집사와 김무임 집사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최병두목사는 목회의 뜻을 두고 장로회신학대학교에 진학하여 본과 3년을 졸업하고는 1963년 12월 20일 경기도 파주군 천연면 웅담교회 전도사로 부임하였다. 1965년 11월 서울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후 1970년 3월 상신개척교회의 청빙을 받고 부임을 하였다.
 
당시 상신교회 교인들은 모두 시내에서 철거당해 온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며, 서울의 갈릴리 사람들이 모였던 곳이기도 했다. 8평의 천막을 치고 첫 예배를 드렸던 상신교회 교인들은 오직 하나님께 호소하고 기도하던 중 뜻하지 않게 서울 영락교회 협조를 얻어 대지 확장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1백53평의 대지를 확보한 상신교회에서는 임시예배처소를 흙벽돌로 건축하였다. 예배당은 하층은 30평, 지상은 70평, 종각 15평, 주택 10평, 연건평 1백25평의 건물을 완성하고 1971년 6월 6일 주일 아침예배를 드렸다.
 
상신교회 창립 20주년을 맞이해서 1988년 4월 3일 지하 80평, 1층 1백45평, 중 3층 80평, 계 5백50평의 건축을 완료하였으며, 계속 증가하는 교인들의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공간이 없자 선교관을 신축하기로 하고 지하 1층, 지상 4층 모두 400평의 건물을 완성하였다. 상신교회는 상계동에서 큰 교회로 성장을 하면서 가난한 농어촌교회 지원과 해외 선교에 힘을 쓰는 등 많은 선교사업을 하였다.
 
제87회 최병곤 총회장,
 
최병곤(1936-현존)목사는 전북 부안군 줄포면 줄포리에서 최하섭과 김복동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1955년 4월에 장로회신학대학에 합격을 하고 모든 과정을 이수한 후 1960년 3월에 졸업을 하였다. 졸업을 하자 합동측과 통합측의 분립으로 같이 입학했던 급우들이 둘로 나누어서야 하는 아픔을 안고 전북 고창군 무장제일교회 전도사로 부임을 하였다. 개척교회나 다름이 없는 교회였다. 1961년 군산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송학교회, 성산교회를 차례로 목회를 하였다. 때마침 청주 동산교회 김경해 장로가 이리 신광교회 안경운 목사에게 "담임목사를 소개 해 주면 그 목사를 선도 안보고 청빙해가겠다"라는 말에 최병곤목사를 소개하자 1971년 그 길로 최병곤목사를 청빙했다.
 
교회가 점점 부흥되자 그의 이름은 청주시내로 점점 확산되면 충북노회에 까지 알려지게 됐다. 맥코믹신학교에서 목회학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학구적이었다. 그는 총회에서 헌법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목사로 알리어지면서 총회 시 마다 어려운 문제만 나오면 해결사가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계로 전국 총대들에게 그의 인기는 대단하였다. 2002년 9월 87회 총회장으로 추대를 받고 취임을 하였다. 그가 사회를 맡아 회의를 진행 중 난데없이 외국 영주권 문제가 터져 나왔었다. 갑론을박 하는 사이 몹시 지쳐 있는 몸이었지만 사회 석을 떠나지 않고 그 일을 해결함으로 총회 내의 총대들은 박수를 치면서 최병곤 총회장을 격려해 주었다.
 
제88회 김순권 총회장
 
김순권(金舜權, 1941-현존)목사는 경북 김천에서 출생하였으며, 1959년 장로회신학대학교와 경희대를 졸업하였다. 1965년 12월 목사안수를 받고 중위로 임관을 하였다. 월남 맹호부대 군목으로 활동을 하였다. 임무를 마친 후 육본 군종감실 교육담당관을 맡으면서 미8군 연락장교를 맡았다. 그 후 육본의 장학금으로 미국 콜럼비아대학원에서 선교학 석사학위를 받고 히브리대학 고고학연구소에서 3개월간 위탁교육을 받고 귀국하였다.
 
중령으로 진급한 후 1군단 군종참모를 역임하다가 1980년 12월 전역을 하고 현재 시무하고 있는 경천교회로 부임하였다. 1983년에는 센프란시스코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도 월간시로 문학에 등단하여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시집 3권을 발간하였으며, 2005년부터 한국장로신문에 매주 시를 발표하고 있다. 칼럼으로는 상한 마음을 달래며 등 다수의 책을 출간하였다. 원래 글재주가 있어 광나루문인회 회장, 목양문인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이러한 일들이 인정이 되어 총회 서기로 3년간 봉사하였다. 총회장 재임시 KNCC 대표회장직을 맡아 WCC 실행위원회를 한국으로 유치하는 데 성공하였다.
 
김수진목사/한국교회사연구소장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