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에 대한 두려움과 이기심

[ 논단 ] 다름에 대한 두려움

원영희권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2월 10일(월) 10:49

[주간논단]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하는 광고 대사가 있었다. 정말 '우리 것'은 좋고 편하다. 비행기 타고 서해 건너 중국을 가거나 동해를 건너 일본을 가도, 서로 비슷한 문화권인 우리지만 다른 점이 참 많다. 언어로부터 의식주 습관이 모두 다르다. 같은 젓가락인데도 우리는 쇠젓가락이 익숙하고, 두 나라에서는 나무젓가락을 사용한다. 더 먼 나라, 이름조차 들어 본적도 없는 지도에만 있는 나라, 2~30년 전의 우리나라 대한민국처럼, 그런 나라에 가면 더더욱 낯설고 물 설은 상황들이 펼쳐진다. 아예 음식을 손가락으로 먹어야 제 맛이 난다는 나라도 많으니까. 다르다.
 
새로 이사만 해도 그 낯설음에 당황하는 적이 많다. 그 동네에 익숙해지기까지 먼저 살던 동네 쪽을 자꾸 그리워 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길이 낯설어서만도 아니다. 골목어귀에서 맞아주던 구멍가게 아저씨의 "또 늦으셨네!"하는 핀잔 섞인 정다운 잔소리, 집 문을 열고 들어가려면 튀어나오는 옆집 아기엄마의 끝날 줄 모르는 질문과 수다, 어떤 때는 문 여는 소리에 그 아기엄마가 나올까 봐, 살그머니 들어가서 집 문을 닫으며 살짝 미안해하던, 그런 순간들. 그런 익숙해서 불편하다고 투정까지 부리던 그 순간들이 순식간에 다른 세상 얘기가 되어서 자꾸 먼저 동네 쪽으로 고개를 길게 빼고 사슴처럼 그리워하는 것이다.
 
안방에 주로 거하시는 할아버지와 대학에 막 입학한 손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전자계산기 대신 주판알을 튕기신다. 일부러 구멍을 숭숭 뚫은 바지는커녕, 어렵사리 개량한복으로 만족하며 아직도 솜 넣은 푸근한 한복 바지저고리가 그립다. 북한 얘기만 나오면 공산당! 빨갱이! 하는 할아버지, 그러나 손주에게는 그냥 친하지 않은 가까운 나라이다. 나물밥에 된장국이 좋지만 손주가 주로 먹는 음식은 이름도 몰라 입에도 못 올리는 종류들이다.
 
머리는 책을 읽자고 하지만 손은 아직 세탁통을 못 벗어나고 있는 때가 많다. 가슴은 여행도 가보라고 두근거리는데, 여전히 집과 직장과 교회와 고작 집 앞 구멍가게 나들이만도 바쁘다. 다리가 아파서 뻣뻣한데도 산봉우리를 보라면서 입은 그곳까지는 가자! 한다. 눈은 자꾸 하늘을 보라고 하지만 귀는 강의하시는 선생님 말씀을 들으라고 한다. 뱃속에서는 그만 들어오라고 하는데, 입은 달기만해서 자꾸 먹으라고 한다.
 
세계는 다르다. 이웃도 다르다. 가족도 각각 다르고, 우리 몸의 부분 부분도 다 다르다. 그런데 하나의 둥근 지구 위에 동서남북 흩어져 잘도 살고 있다. 어느새 친해진 새 이웃에게 자식들 얘기를 털어놓게 되고, 다리가 아파도 산을 오르고, 잔뜩 먹어서 불룩해진 배를 두드리며, 손은 다음엔 꼭 덜 먹자! 한다. 여행은 또 다음 해로 미루며, 할아버지의 눈총으로 가족이 갈라지기는 커녕, 손주는 문만 열고 들어오면 "할아버지는?"하고 묻는다.
 
예수님은 어찌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건네셨을까? 남편이 다섯이나 되던 사마리아 여인,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던 그 시절, 예수님은 우물가로 가셨고 여인에게 물을 청하며 대화를 하셨다. 메시야를 알고 기다리던 사마리아 여자. 그도 메시야를 알고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말씀을 들은 후, 물동이도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 들어가 사람들에게 알렸더니, 거두절미하고,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요4:39)일이 벌어졌다. 다름을 넘어서며 일어난, 당시로서는 기적 같은 복음 전파의 본을 에수님이 몸소 보여주신 사건이다.
 
새해 2013년에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가 부산에서 열린다. 참으로 다양한 전 세계 교회들이 그리스도 사랑 안에서 하나 됨을 선포하는 자리이다. 우리 몸의 부분이 다 다르듯 세계는 다르고 믿음의 방식도 다르다. "우리들의 은사가 다르듯이 우리들은 모두 다르다. 그러나 다른 점이 분열의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다른 점들로 인해 하나가 되는 성령의 역사를 만나기를 바란다." 지난 6월 한국을 방문한 미국개혁교회 전 사무총장, 웨슬리 그랜버그-마이클슨 (Dr. Wesley Grandbeg-Michaelson) 목사의 다름에 대한 명쾌한 대답이다.
 
다름과 낯섦에 대해 일단은 냉정하고 보는 인간의 보편적인 반응의 원인은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두려움과 이기심. 잘 알지 못하여 피해를 볼까 두려워하고, 또 친숙한 환경의 편안함과 편리함을, 다른 환경에 처함으로 오는 기대하지 않은 충격으로 빼앗기고 싶지 않은 이기심 때문이다. 우리의 '소중한 것'을 잘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두려움과 이기심을 넘어, 우리들과는 다른 이웃의 삶도 존중하고 소중히 여겨줌으로 오는 평화가 이 땅에 깊이 뿌리 내리기를 기대한다.

원영희/ 새문안교회 권사 ㆍ성균관대 번역학과 대우전임교수ㆍ세계YWCA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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