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한선교사 회복감사예배에 다녀와서(김점동목사)

[ 선교 ] 이필한선교사 회복

김점동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2월 10일(월) 10:16

이필한 선교사는 1989년 장신대 졸업후  인도네시아 스마랑에 있는 압디엘신학교 교회 음악과를 설치하기 위하여 파송을 받았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우리가 사용하는 악보가 아니라 숫자로 된 악보를 쓰고 있는, 음악에 있어서는 황무지 같은 곳이었다. 5년 동안 제자들을 양성하고 안식년을 맞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남침례 신학교에서 교회음악 석사과정을 끝낸 후 선교지로 돌아오려 했으나 IMF로 인해 지원 단체를 찾지 못했다. 그 후로 10년 뒤인 2007년 범양선교회를 통해 안동서부교회의 후원으로 재파송을 받아 사랑하는 제자들이 기다리는 압디엘신학교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2011년 7월 2일, 열정적으로 사역하던 이 선교사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병원에 입원한 이 선교사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던 중 2개월 동안의 코마상태 후 일반병동으로 옮겨졌고 일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회복되었다. 사람들을 알아보기 시작했으며 일주일에 세번씩 언어치료와 물리치료를 계속해서 받고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게 되었다.
 
9월 범양선교회 앞으로 이필한선교사 건강회복 감사예배를 준비하고 있으니 꼭 참석 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국내도 아니고 국외 감사예배 초청은 받았으나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오순절 교단총회 총회장 사모(목사)가 준비위원장이 되어 총회장도 참석하니 꼭 와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고 범양선교회 각교회에 기도요청과 입원비 모금도 해보내주기로 했기에 사무총장(박중창목사)과 함께 인도네시아로 갔다.
 
먼저 이필한선교사의 사역지인 압디엘신학교에 들렀다. 그곳에서 학장을 만나 지금까지 이선교사의 사역했던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이선교사가 쓰러지기 전 제자들을 가르치던 사무실을 보여주면서 "다시 이선교사님이 이 자리에 앉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사무실은 그대로 영구히 보존하려고 합니다"란 학장의 말에 이선교사의 역할이 학교에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스마랑에서 2시간30분 떨어진 솔랑 인도네시아 현지인교회에서 3개월전부터 준비한 이필한선교사 회복감사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압디엘 교회음악과를 졸업한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는데 약 5백~6백명이나 모이게 되었다. 3시간동안 진행된 예배는 감격스러웠다. 예배시간 중 하나님께 헌금을 드린 후 이필한선교사의 빠른 회복을 위해 모든 목회자들이 둘러서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기도를 드렸다. 그런 후 예배에 모인 평신도 한사람 한사람을 위해 안수기도를 하는데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온교회안에 가득하여 기도하는 자와 기도받는 자가 모두 감격스러운 시간을 경험했다.
 
범양선교회 회장인 나는 인사겸 축사시간에 두 가지 하나님의 큰 계획과 축복이 있다고 축사했다.
 
하나는 이필한선교사 제자들과 은혜를 입은 자들이 그 은혜를 기억하게 하심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축복이 임한 것이며, 이 선교사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짐으로 인도네시아에 많은 선교의 열매를 맺으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축복의 시간됨을 축사했다.
 
주위에 사람들이 몸도 불편한데 한국으로 나가시는 것이 좋겠다고 권면도 하였으나 이 선교사는 인도네시아에 아직도 해야 할 사역이 있고, 이곳에서 죽기를 원하신다는 강한 의지로 올해 압디엘 신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김영숙사모님을 통해 대신 사역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준비시키셨다고 했다.
 
범양선교회는 지난 9월2일 연신교회 지원을 받아 이현희선교사를 압디엘 신학교에 파송하여 이 선교사의 뒤를 이어 교수로써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작은 바램이 있다면 아프리카에 가서 사역하시다가 돌아가신 이태석 신부의 선교사역이 영화화되어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 총회도 이필한선교사의 사역을 영화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점동목사/범양선교회 회장/창동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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