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궤짝 강대상

[ 목양칼럼 ] 사과 궤짝 강대상

이석형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2월 07일(금) 16:04

[목양칼럼]

길 옆 상가 2층 좁은 공간을 장만하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물론 예배당 안에 비품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그럴려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었다.

주일 낮 11시 예배를 드리는데 성경책을 올려놓을 강대상도 없었다. 살 돈도 없었고 경황이 없어 그냥 그대로 주일을 맞게 되었다. 그래도 사람이 30여 명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성경책을 올려놓을 적당한 상이 있을까 찾아보니, 밖에 누군가 갖다 버린 사과 궤짝이 눈이 띄었다. 주워 다가 세로로 세워보니 궁여지책으로 괜찮았다.

그렇게 두 주일이 지나니까 예배를 마치고 교인 중 한 사람이 찾아왔다. "전도사님, 제가 조그만 강대상 하나 사 놓으면 안될까요?" 듣던 중 반가운 일이 아닌가? 그래서 강대상이 들어왔다.

봄이 지나고 5월, 초여름으로 들어서게 되고 예배당 안이 덥기 시작했다. 창문을 열면 먼지가 나고 시끄러워 도저히 문을 열 수 없었고, 나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설교했다. 물론 교회 안에는 부채 한 개도 없는 상황이었다.

예배 후 또 한 교인이 찾아와 "제가 선풍기 한 개 사 놓으면 안될까요?" 땀을 흘리며 설교하는 모습을 앉아서 보기가 불쌍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제는 벽에 거는 선풍기가 매달려 돌아가게 되었다.

사람이 많아지니 자연히 마이크 앰프 시설이 생겨지게 되고, 더 사람이 많아지니 그런 방법으로 에어컨이 들어오고, 당시로는 귀했던 피아노를 월부로 사 놓는 교인도 생기게 되었다.

목사가 모든 비품을 다 갖추고 교회를 시작하면 들어오는 교인은 모두 손님이 된다. 교회에 자기의 무엇인가를 헌신한 교인은 교회를 떠나지 않는다. 대개 개척교회에 오는 사람은 새신자들이 많고 그들의 삶도 개척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다. 가난하고 실패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작은 개척교회에 오는데, 좀 믿음이 자라면 더 큰 교회로 떠나기 쉽다. 그들은 아직 신앙도 정립되지 않았고 교회관도 없다. 아직 목사와의 신뢰적 인간관계도 되어 있지 않다. 작은 일에, 실족도 잘 하고 떠나기도 잘 한다. 또 우리 주변에 대형교회들의 전도 전략이 저인망 그물로 물고기 잡듯 휩쓸고 있지 않은가?

새신자가 교회에 와서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하고, 무엇을 헌신할 사람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가?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도 교회에 투자한 사람은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회에 대해 주인의식을 갖고, 자기가 이 교회를 세워 가는데 참여했다는 긍지도 갖는다. 그런 사람이 전도도 하고 사람들을 데려오고 대접도 한다.

그래서 교인이 70~1백여 명 될 때에 필요한 비품이 모두 다 구비되어 제법 교회 같은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목회자와 비전을 같이 하고 있는 이 공동체는 세상도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을 소유한 교회다.

목회자가 준비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은혜만 끼치면 된다. 교인 입장에서는 은혜만 받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의 변화를 생각해보라. 낮에 매질하고 착고(着庫)에 채워 감옥에 가두던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의 선교를 돕지 않았던가?

이제 생각해보자. 예수님께서 왜 전도하러 갈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는가? 그렇게 해야 더 빨리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도에게 끼칠 능력 때문에 걱정하는가? 아니면 강대상 때문에 걱정하는가?


이석형목사 / 밀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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