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장열전 유의웅목사 이규호목사 박정식목사

[ 김수진목사의 총회장 열전 ] 총회장열전 유의웅목사 외

김수진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2월 03일(월) 11:25
[김수진목사의 총회장 열전]

제83회 총회장 유의웅 목사
 
유의웅(兪義雄, 1942-현존)목사는 서울 응암동에서 유병관목사의 자녀로 출생하였다. 1965년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한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에 진학했다. 신대원 3년 과정을 마치고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69년 10월 경기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공군 군목으로 입대하여 군종 대위로 임관하였다. 3년 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1973년 3월에 제대를 하였다. 그때 도림교회에서 시무한 부친 유병관목사는 부목사를 1년씩만 훈련시킨 후 다른 교회를 소개하곤 했는데 뜻하지 않게 주변에서 유의웅목사를 단 위에 세우고 설교를 하게 하라는 부탁을 받고 설교를 하게 하였다.
 
유병관 담임목사가 은퇴를 하자 그 후임으로 유병관 목사의 아들 유의웅목사가 후임자로 내정되었기에 곧바로 노회의 절차를 밟고 1974년 11월 10일 위임식을 하였다. 위임식을 마친 유의웅목사는 목회방향을 설정하고 매일 새벽마다 기도하고 설교도 기도하면서 준비했던 관계로 교세가 늘기 시작했다. 교세가 늘면서 교회가 발전하자 지하를 파서 1백평이 넘는 공간을 소유하게 됐다.
 
당회에서는 미국 훌러신학교에 가서 2년 반 동안 연구하고 오라는 결의가 났고 유의웅목사는 가족을 이끌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됐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교인도 증가되고 재정 면에서도 여유가 생기자 1997년 70주년 기념사업으로 사회봉사관을 신축하게 되어 5대 사업을 완수하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일할 수 있었다. 이러한 관계로 유의웅목사는 가장 젊은 나이로 1998년 제83회 총회장으로 추대됐다.
 
제84회 총회장 이규호 목사
 
이규호(李圭皓, 1935-현존)목사는 경북 포항에서 이장영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선친께서는 대구 선교부에서 실시하는 달(月)성경학교를 졸업을 하고 첫 영수로 임명을 받고 울릉도에 울릉도교회를 개척하였다.
경북노회에서는 신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지만 노회의 결의로 목사안수를 받고 목회를 하다가 영천으로 나와 농촌교회를 순회하면서 전도목사로 목회를 하였다. 이규호도 아버지의 영향으로 1954년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권유로 1958년 4월 장로회신학대학 본과에 진학하여 1961년 졸업을 하였다. 불국사가 자리잡고 있는 경주 구정교회의 청빙을 받고 교회사역자로 최선을 다하면서 불교의 문화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목회에 성공을 하였다.
 
그가 부임한지 얼마 안되어 구정교회보다 큰 교회의 청빙이 있었지만 모두 다 거절하고 오직 구정교회에서 은퇴할 때까지 열심히 사역해 영남지방 차례 시 1999년 9월 13일 제84회 총회장으로 선임되었다. 
 
이규호목사는 뉴브런스윅대학교의 언더우드 선교상을 2004년도에 수상했다. 원래 총회법에 의하면 만 70세가 되면 은퇴를 하지만 이규호목사는 1년 앞당겨 2004년 원로목사로 추대를 받고 목회 일선에서 물러났다.
 
제85회 총회장 박정식 목사
 
박정식(朴正植, 1941-2004)은 전남 광양에서 박희원과 김봉기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일찌기 부모를 따라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1966년 3월 목회의 길을 가기 위해 장로회신학대학 신대원에 진학하여 3년간 신학 수업을 받고 목사안수를 받았다. 1975년에는 서울 무학교회 부목사로 사역을 하였으며, 1977년에는 순천제일교회 청빙을 받고 순천제일교회에서 목회사역을 했다. 그가 부임하여 시무했던 순천제일교회는 순천시내 조전동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새로 도시가 형성된 순천시 해룡면 삼상리에 이전을 하였다.
 
박정식목사는 총회장 자격으로 세계교회와의 유대를 돈독히 하였으며, 이 일로 한국교회의 역할이 얼마나 큰 것을 새삼 느꼈다. 특별히 한국교회로부터 파송 받은 선교사들이 열심히 선교에 임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이들을 통하여 민간외교는 물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는 일에 한국교회가 적극 참여해 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박정식목사는 자신의 건강상태도 잊은 채 오직 총회와 교회를 돌보다가 2004년 11월 8일 주님계신 나라로 영원히 우리의 곁을 떠났다. 그는 마지만 유언대로 시신은 전남대병원에 기증을 하였기에 시신 없이 총회장으로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김수진목사/한국교회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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