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씰

[ 데스크창 ] 크리스마스 씰

안홍철 기자 hcahn@pckworld.com
2012년 11월 28일(수) 09:20
60년대 팝 가수 바비 빈튼(Bobby Vinton)이 부른 'Sealed with a kiss(키스로 봉한 편지)'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여름 한 계절을 헤어져 있어야 하는 안타까움을 아름다운 노랫 말로 만들었는데 헤어져 있는 동안 사랑하는 이에게 "매일마다 내 모든 꿈들을 키스로 봉한 편지에 실어 보내겠어요"(I'll send you all my dreams every day in a letter sealed with a kiss)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seal'은 '봉인하다'는 동사입니다.
 
영국 산업혁명 이후 19세기 말, 전 유럽에 결핵이 만연됐습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우체국장이었던 아이날 홀벨(Einal Holboell)은 당시 많은 어린이들이 결핵으로 죽어 가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파 하던 중 수북히 쌓이는 많은 크리스마스 우편물과 소포를 정리하면서 "이 많은 우편물에 동전 한닢짜리 '씰(seal)'을 붙여 보낸다면 수익금으로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텐데" 란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내 1904년 12월 10일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게 되었으며 덴마크와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씰 운동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자 곧 스웨덴, 독일 등 주변국이 뒤따르고 1915년에는 루마니아에까지 전파되었습니다. 동양권에서는 1910년 필리핀이 처음으로 씰을 발행하였으며 우리 나라에서는 1932년 12월 일제치하에서 캐나다의 의료선교사인 셔우드홀(Sherwood Hall)이 처음으로 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1932년 이후 1940년 까지 9차례에 걸쳐 씰이 발행되지만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 그는 스파이의 누명을 쓰고 일본 헌병대에 의하여 강제로 추방되면서 씰 발행도 중단되었습니다.
 
해방 후 1949년 셔우드 홀을 도왔던 문창모 박사에 의해 발행되다가 크리스마스 씰 운동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면서 부터입니다. 그 후 대한결핵협회는 매년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여 왔는데 매년 대통령을 비롯한 삼부요인은 물론 각계각층 인사와 학생등 온 국민이 이 운동에 기꺼이 참여함으로 점차 결핵퇴치 재원모금운동으로 정착하게 됐습니다.
 
2000년 이후,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손편지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면서 크리스마스 씰도 예전같지 않아졌습니다. 그러다 2003년부터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형되기 시작했습니다. 씰에 스티커 방식을 적용하여 편지 이외의 다른 곳에도 붙일 수 있는 형태로 제작되고 있으며, 모바일 씰, 인터넷 씰, 이카드 및 전자파차단 스티커 등 모금의 방법을 다양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인 김연아 선수, 지난 해에는 뽀로로와 친구들, 올해는 프로야구 마스코트 같은 친근한 소재를 크리스마스 씰에 적용하여 다양한 계층에 결핵을 홍보하고 모금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한결핵협회의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본교단도 이번 달부터 명년 2월까지 3개월 간 총회 주제를 실천하기 위한 '작은이들의 벗' 캠페인을 실시합니다. 가난한 이들, 다음 세대, 장애인, 다문화 가족, 북한동포 등 크게 다섯 범주의 작은 이 그룹을 어떻게 섬기고 그들의 친구가 될 것인지 크리스마스 씰과 같은 아이디어가 샘솟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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