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의 유익(下)-시드니의 한인들

[ 최종률장로의 빈방있습니까? ] 시드니의 한인들

최종률장로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1월 27일(화) 15:48

[최종률 장로의 빈방 이야기]

올 봄은 해외여행 복이 터졌다. 4월 아내와의 파리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시드니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영화감독으로부터 출연제의를 받고 5월 하순께 다시 출국하게 됐으니 말이다. 호주여행도 처음이었지만 영화에서 생애 첫 주연을 맡게 된 것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었다. 미리 받아본 시나리오 'Forget Me Not'은 월남전 당시 베트남여인과 결혼하여 라이따이한 딸을 두었던 한국인 남자의 회한과 가족애를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압축한 감동적인 휴먼드라마였다. 국어 반 영어 반의 대사를 어렵사리 외운 후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본의 기타쿠우슈와 태평양의 사이판 섬 옆을 지나 인도네시아의 섬들 위를 통과하며 계속 남하하는 비행항로는 위도 차가 벌어지는 만큼 아홉 시간이 넘게 걸리는 먼 거리지만 경도의 차이가 적어 서울과 시드니의 시차가 겨우 한 시간 밖에 나지 않는다.

시드니 공항에 도착하자 마중 나온 감독과 조감독이 반겨 맞아준다. 차창 밖으로 시드니의 아름다운 풍경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남반구에 위치한 호주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로 가을이 한창이었다. 세계 3대 미항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어서 항구도시로만 생각했는데 의외로 시드니는 울창한 숲의 도시였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사방에 넓은 숲을 형성하고 있었고 사이사이 단풍이 곱게 든 나무들이 가을을 채색하고 있었다. 제일 궁금한 한국배우의 캐스팅에 관해 감독에게 물었다. 필자가 맡은 남자 주인공의 젊은 시절 역할을 비롯해서 한국인 아내와 딸, 시드니에 사는 것으로 설정된 월남전 동기들 등 한국인 배우들이 많이 필요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한국으로부터 합류하는 배우는 필자뿐 이었고 나머지 한국인 배역은 유학생들과 워킹홀리데이로 온 청년들 그리고 교민들을 상대로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다고 한다. 한국 딸 역은 중국계 여배우가, 여주인공인 베트남 딸은 베트남계 여배우로 캐스팅이 되어있었다. 한편 스탭진은 전원 호주 영화인들로 구성돼 있었는데 특히 촬영감독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유명인이라 했다. 말하자면 한국인 감독이 연출하는 호주영화였다.

한인교회에서 연습장소를 제공해 주어 오후에 바로 상견례를 겸한 독회연습으로 들어갔다. 그 후 두 주간의 촬영기간 동안 대부분 영어로 소통해야 했는데 영어회화 능력이 일천한 필자로서는 다소 부담스러운 부분이었다. 한국인, 중국계, 베트남계, 혼혈, 백인 등 그야말로 다국적군의 집합이었지만 금세 친해지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촬영할 수 있었다. 목사님 한 분이 기획자로 감독을 돕고 있었고 장로 두 분이 촬영장소 헌팅, 교민들의 자원봉사 유도 등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교민들의 생활상에 대해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 볼 수 있었다.

호주정부에서 백호주의를 버리자 수많은 중국인들과 베트남인들이 이주하여 터를 닦기 시작했고 현재 그들은 인구수나 경제력 측면에서 호주사회의 중심세력으로 편입되어있다고 한다. 그에 비해 한인사회는 인구가 많지 않아 아직 변방에 머물러있는 상태인데, 양국정부의 경제협력관계가 튼실해서 전망은 밝다고 한다. 문제는 교민 자녀인 한국계 청소년들이 백인주류사회에 녹아들지 못하는 부적응현상으로 인해 왕따를 당하거나 일탈된 밤 문화에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노출되어 있어서 마약, 폭력과 같은 비행이나 조직적인 범죄에 빠질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해외 한인공동체가 대개 그러하듯이 한인교회를 구심점으로 한인들의 삶이 연결되고 있는데,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정서순화와 선도 그리고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한 방안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문화선교 전략을 한인교회가 펼쳐나간다면 좋을 것 같다는 견해를 동석한 한ㆍ호 문화교류재단의 이사장인 장로님에게 피력했다.

예컨대, 한국으로부터 스타급 연예들을 초청하여 공연하는 식의 일회성 행사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호주현지의 한국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용음악과 가요, 연극과 뮤지컬, 클래식 음악과 무용 등의 문화예술아카데미를 개설하여 체계적으로 예능인재를 길러내는 노력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그 장로님은 최근에 교민 청소년들 가운데서 재능 있는 아이들을 선발하며 K-POP팀을 만들기도 했다면서 호응이 매우 좋았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촬영 기간 중 딱 하루를 쉬었는데 이사장 장로님이 일부러 시간을 내어 당신의 고급승용차에 필자를 태우고 시드니의 절경들을 가이드 해주셨다. 아름다운 해변들과 해안절벽, 그림 같은 요트의 행렬, 황혼녘의 하버브릿지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낭만, 그림 같은 전원주택들과 가을 풍경은 필자를 황홀하게 했다. 비록 작은 규모의 독립영화였지만 난생 처음 주연을 경험했고 기획목사님과는 '빈방 시드니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으며 교민사회의 리더들과 여러 건설적인 대화를 나눈 것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컸다. 안녕 시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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