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6~12월1일

[ 가정예배 ] 11월26~12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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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3일(금) 09:58

[가정예배]

월-다니엘의신앙
본문: 다니엘 1:8-16
찬송가: 428장
 
다니엘이 청년시절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다. 이스라엘이 포로신세가 된 것은 이방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청년 다니엘은 바벨론의 엘리트교육에 선발되어 왕궁교육을 받게 되었다. 다니엘의 신앙을 살펴보자.
 
첫째, 하나님께 뜻을 정한 신앙이다.
 
본문 8절을 보면 "다니엘이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 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라고 했다. 다니엘은 언제나 하나님께 포커스를 맞추는 신앙이다. 특별히 바벨론 왕궁 음식은  산해진미이다. 그러나 그 음식은 바벨론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이기에 다니엘은 자신의 신앙 양심상 왕궁음식을 거절하여 신앙의 성결을 이루었다. 믿음의 사람은 언행심사, 먹는 음식까지도 구별하여 성결을 회복해야 한다.
 
로마서 12장 2절을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다. 다니엘은 포로신세였지만 하나님과 관계회복이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뜻을 정하여 결단하여 하나님께영광을드렸다.
 
둘째, 용기있는 신앙이다.
 
본서 6장 10절을 보면 "다니엘이 이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끊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했다. 그 당시 나라의 총리와 고관들이 엘리트 다니엘을  숙청할 목적으로 금령을 만들어 왕 이외에 어떤 신에게 구하면 사자굴에 넣기로 정한 것을 알고도 기도함은 참으로 용기있는 신앙이다. 우리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연약한 신앙에서 강하고 담대한 용기있는 신앙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용기있는 신앙을 세워 주신다. 결국 다니엘이 사자굴에 넣어졌으나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사자의 입을 봉하여 살아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오히려 다니엘은 총리가 된다. 신앙의 용기는 하나님을 감동시킴으로 천사가 도와주고 기적같은은혜로 세워주신다.
 
사무엘상 17장 45절을 보면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고 했다. 다윗은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쓰러뜨렸다.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쳤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영적 의분과 신앙의 용기를 보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도 주변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 당하는 순간 영적 의분과 신앙의용기는 믿음의 사람들이 꼭 소유해야 할 신앙의 유산이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도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여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게 하시고 언제나 신앙의 용기를 가지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광기목사 / 성광교회


화-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본문: 마가복음 8:14-21
찬송가: 310장

쥐의 기억력의 한계는 3분밖에 안된다고 한다. 고양이가 뒤따라 와서 구멍 속으로 숨은 후 한동안은 가만히 있어야 되는데 금방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밖에 고양이가 있다는 사실을 그새 잊어버린 것이다.
 
노인들의 기억력은 30분 정도이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아 내가 무슨 말을 했지?"라며 묻는다. 물론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젊었을 때 기억된 것들이지 최근에 일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5천명 이상의 무리를 앉히시고 하루종일 주옥같은 천국의 생명의 말씀을 전하셨다. 그리고 잠시 후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다. 모두들 허기진 배를 채우고 감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튿날 그들이 다시 주님을 보러 왔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라고 하셨다. 그들은 어제의 은혜의 말씀은 다 잊어버린 것이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다.
 
또한 그의 은혜를 기억할 줄 알아야 한다.
 
"원한은 모래위에 쓰고 은혜는 바위 위에 쓰라"는 말이 있다. 나쁜 일은 빨리 잊고 좋은 일은 오래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반대로 살려고 한다. 은혜는 물 위에 쓰고 원한은 가슴에 묻는다. 이 원한 때문에 모든 사람이 깨달음이 없고 불행과 질병, 고통에 시달린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는 축복으로 구원을 받았건만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금송아지 신을 만들고 이것이 우리를 인도할 신이라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께 불경하였으니 어찌 저들의 앞날이 평탄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깨달음 자체가 은혜인 줄 믿으시기 바란다.
 
우리는 은혜를 기억하되 오래오래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은혜를 못 받은 것이 아니다. 받은 은혜가 너무 많은데 너무 쉽게 잊어버려서 문제다. 아들이 군에 입대하여 몇 달 동안 힘든 훈련을 받고 첫 휴가를 나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불을 개어 놓고 청소까지 말끔히 한 후에 밥을 먹으로 나온 것이 아닌가! 온 가족이 그의 변화에 놀랐다. 음식투정도 없고 철든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런데 사흘도 못되어 그의 생활 습관은 옛날로 돌아갔다.
 
감사의 상실, 감사의 망각 모든 불행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오래 기억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는 나의 갈 길을 내가 다 안다고 제멋대로 살아왔습니다. 돌이켜보니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범죄와 타락의 길이었습니다.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학명목사 / 천의염광교회


수-무엇으로 사십니까?
본문: 롬 1:16-17
찬송가: 545장
 
'욕망의 리스트'라는 소설이 있다. 여자 주인공이 복권에 당첨되었다. 무려 2백70억 원이었다. 그런데 왠지 기쁘기보다 불안해서 당첨된 돈을 수표로 받아 남편 몰래 숨겨두었다 나중에 남편과 협의하여 파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우연찮게 그 수표를 발견하게 되고 자신의 내재된 욕망의 리스트를 실현하기 위해 아내 몰래 수표를 훔쳐 도망치게 된다. 270억의 돈 중  50억을 쓰며 자신의 욕망을 실현했지만 남편의 삶은 행복해지기는 커녕 점점 더 불행해졌다. 결국 10개월 후 220억을 돌려주며 사과편지를 보내지만 아내는 돈을 가지고 자신의 사랑을 저버린 남편을 용서할 수 없어 받아들이지 않고, 남편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사랑과 행복을 누리고 살았었다는 것을 깨닫지만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이 소설은 돈과 자신의 욕망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돈과 자신의 욕망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더 늦기 전에 깨달아야 할 그것이 무엇일까?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믿음으로 사는 것은 어떤 삶일까? 다윗의 삶이 우리에게 그러한 사실을 잘 가르쳐주고 있다.
 
먼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용기를 가지고 사는 삶이다.  다윗은 골리앗을 겁내지 않고 담대히 나가 싸웠다. 그가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용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믿음에서 왔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나님은 골리앗보다 강하시며, 하나님은 칼과 단창과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분이심을 믿었다. 진정한 용기는 믿음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용기가 없기 때문에 넘어지는 경우가 많다. 골리앗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불신 때문에 무너진 것이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평안을 누리는 삶이다. 평안함은 강할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약하면 불안해한다.
 
다윗은 시편 3편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천만 군대가 둘러싸고 있다 해도 두렵지 않은 것은 다윗의 믿음이 그만큼 견고했다는 증거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이 다윗에게 이러한 평안을 가져다 준 것이다.
 
사람들은 욕망을 채우려 하지만 오히려 허무만 가지게 된다. 사람은 돈으로 권력으로 명예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산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며 진리다. 오직 믿음만이 무엇이든 감당할 용기와 실패 속에서도 평안을 잃지 않게 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오늘 하루도 무엇을 위해 사는지 돌아보게 하시고 믿음으로 모든 일을 감당케 용기와 평안을 주옵소서. 썩어 없어질 것을 위해 살게 하지 마시고 영원한 생명을 위해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보한목사 / 평화중부교회


목-감사의 제사 
본문: 시 50:23
찬송가: 588장
 
성경에는 감사라는 단어가 1백8십4구절에 걸쳐 나온다. 감사를 이렇게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로 살 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중고를 가진 헬렌 켈러는 "나는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지만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한 때는 머리가 좋아야 한다고 IQ(지능지수)만 따졌다. 요즈음은 EQ(감성지수), NQ(사회성지수)를 중시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에게는 이것보다 중요한 지수가 하나 더 필요하다. 감사지수 TQ(Thanksgiving Quotient)이다. 감사의 생활은 매우 중요하다. 감사를 하는 사람은 아름답고 성숙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우리의 영혼이 타락하면 절대로 하나님께 감사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럼, 성도들이 왜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할까?
 
첫째,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본문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다. 버마 선교사 저드슨은 못생긴 편에 속했지만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기쁨의 얼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환하게 기쁨의 얼굴로 주변 사람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었다. 그의 마음에는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으니까 얼굴이 늘 빛났던 것이다. 마음속에 감사와 찬송이 있으면 얼굴이 달라지는 것이다.
 
둘째, 감사는 기적을 가져오고 역경을 이기게 한다.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구원의 손길이 임한다고 한다. 하나님의 손길이 임한다는 것은 기적적인 은총이 임한다는 것이다. 감사할 때 더 잘되게 해주시고 감사할 때 역경을 이기게 해주신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들에 농사가 잘되고 가화만사성으로 집안이 잘되고 떡 반죽 그릇이 풍성해지고 짐승의 새끼까지 복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모든 환난에서 이길 수 있다.
 
셋째, 감사는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온다.
 
성경 마태25장에 달란트 비유는 충성과 감사에 대한 큰 교훈이다. 삶속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헤아려 감사하면 더욱 감사할 일이 생겨나지만 자꾸 없는 것을 바라보고 불평하면 있는 것조차 빼앗아 버리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삶속에 감사할 것을 찾으면 끝없이 많이 찾을 수 있고 불평할 것을 찾으면 끝없는 불평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긍정적이고 감사할 것을 찾아 감사해야 되는 것이다. 이것이 축복의 지름길 인줄로 믿는다.
 
하나님은 감사를 통해서 기적을 만드신다. 감사는 펌프로 물을 끌어올릴 때 붓는 마중물과 같다. 이처럼 감사의 물 한 바가지를 부으면 놀라운 감사의 생수가 끝없이 펑펑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감사는 행복의 비결이다.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만이 누리는 것이다. 날마다 감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역경을 극복하며 축복을 경험하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속에서 늘 감사가 넘치어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으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성득목사 / 동산교회


금-믿음은 바라는것들의 실상이다
본문: 히브리서 11:1-12
찬송: 95장
 
믿은은 바라는것들의 실상이다. 바라는 것이란 지금은 가진 것이 없지만 미래에는 갖게 되고 싶은것이다.
 
그러나 믿음이란, 지금은 가지지 않았지만 가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가지지 않은 것을 가졌다고 믿는 것이 신앙이 아니고 가지지 않은 것을 가진 것으로 믿어지는 것이 신앙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는 바라는 것들이 실상으로 되는 믿음의 비결을 말하고 있다.
 
첫째, 더 나은 제사를 드려야 한다.
 
4절 말씀을 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렸고 아밸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을 드렸다. 땅의 소산이란 육으로 드리는 예배이고 형식적이고 이기적이고 기복적인 예배이다.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드렸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을 의미한다. 아벨의 제사는 보혈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중생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의 상징이다. 우리는 육적인 사람들의 형식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들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려야 한다.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5절 말씀에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다 데려감을 받았다"고 나와 있다. 매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땅에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다.
 
셋째,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7절 말씀에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를 받고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다"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지 않고 경외함으로 받는 자가 바라는 것들이 실상으로 나타남을 볼것이다.
 
넷째,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8절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어디로 가야할 지 알지 못해도 미래의 계획이 아무것도 없어도 믿음으로 순종하여 장례의 유업으로 받을 땅을 향해 나아갔다. 우리도 믿음으로 우리의 본향으로, 영원한 천국으로 아직은 도착하지 못했지만 성령으로 믿으며 그 믿음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다섯째,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11절에 사라는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고 아이를 잉태할수 없는 몸이나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었다. 그 약속을 믿으니 바라는 것이 실상으로 나타나 하늘의 허다한 별처럼 바닷가에 모래처럼 많은 후손을 생육하였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여 드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여 약속의 말씀을 믿는 자에게 바라는 것들이 실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오늘의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우리의 믿음이 아벨처럼 더 나은 제사를 드리는 예배이게 하시고 노아처럼 경외함이 있는 믿음과 아브라함처럼 순종하는 믿음으로 또한 사라같이 약속의 말씀을 미쁘다 여기어서 바라는 모든 것이 실상으로 드러나는 신앙의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미미목사 / 꿈동산교회


토-내려놓음의 행복 
본문: 시 115:9-14
찬송가: 431장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본능적으로 무엇을 잡으려고 하고 또 성장과정에서 무엇을 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학습하며 자라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무엇을 잡는 일에 관심이 많고 익숙하다. 만약 무엇을 잡지 못하고 소유하지 못하면, 뒤쳐져지고 실패한 인생이라 생각하고 낙심한다. 어떤 경우에는 무리를 해서라도 잡으려고 과욕을 부린다. 그리고 한번 잡은 것은 쉽게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이 자신을 망하게 하는 일인데도 놓지 못한다. 차라리 처음부터 참다운 행복은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음에 있다는 사실을 배웠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신앙이 무엇인가? 바로 이러한 소유에서 내려놓음을 훈련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내려놓음은 무소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으로 의지하고 붙잡아야 할 것을 붙들기 위한 내려놓음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 시편이 이 내려놓음의 참다운 행복의 단계를 보여준다.
 
내려놓음의 행복 첫 단계는 잡았던 것을 펴는 단계이다. 우리가 무엇을 잡는 이유가 무엇인가? '도움과 방패(시 115:9-11)'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과연 지금 내가 의지하고 붙잡고 있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고 나를 보호해 주는 것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제대로 붙잡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나의 도움과 방패가 되리라 생각하고 붙잡은 것이 오히려 자신을 망하게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썩어질 세상의 것들을 먼저 내려놓는 것이 참 행복의 첫걸음이다.  
 
내려놓음의 행복 두 번째 단계는 진정으로 우리의 도움과 방패가 되시는 분을 붙잡는 단계이다. 오늘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영광을 돌리지 마옵시고 주의 이름에만 영광돌리소서(시 115:1)"라고 기도한다. 이 기도는 지금까지 내가 의지하고 붙잡은 것들이 얼마나 헛된 것이고 허무한 것이었는지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기도이다. 참다운 행복은 헛된 것을 버리고 참다운 것을 소유하게 될 때 오는 것이다. 오직 행복의 원천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시 115:15)에게 있기 때문이다.
 
내려놓음의 행복 세 단계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단계이다. 내려놓음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시 115:12-14)의 시작이다. 사실 복은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안에 있다. 우리는 그 분의 엄청난 자원을 누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내려놓을 줄 아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특권을 누리기 위해 먼저 내려놓아야 하고 그리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붙잡아야 한다. 이 놀라운 특권과 축복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복한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세상의 헛된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와 결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내려놓음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제거하여 주옵시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도움과 방패이심을 깨닫고 붙잡게 하옵소서. 주 안에서 참다운 행복과 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상영목사 / 천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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