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유익<중>-예술의 향기, 프랑스의 인상

[ 최종률장로의 빈방있습니까? ] 여행의 유익<중>

최종률장로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1월 20일(화) 11:57

[최종률 장로의 빈 방 이야기]

미술을 전공한 필자에게 파리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고 그만큼 가보고 싶은 도시 가운데 첫 손가락에 꼽히는 곳이었다. 시집 보낸 딸 아이에게 하나님께서 프랑스 유학의 길을 열어 주신 은혜에 힘입어 부부가 처음으로 프랑스 여행길에 올랐다.
 
프랑스는 예로부터 문화 예술에 대한 자긍심이 높기로 유명한데, 두 주간의 여행을 통해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면서 그 이유를 가늠할 수 있었다. 특히 파리는 미술을 비롯해서 음악, 문학, 영화, 발레, 오페라, 패션에 이르기까지 온통 예술의 향기로 가득한 아름다운 고도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네 거리 모퉁이마다 어김없이 자리하고 있는 고색창연한 카페들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위대한 예술인들과 프랑스 지성들에 얽힌 갖가지 사연을 품은 채 여전히 문화 예술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갓 볶아서 내린 뜨거운 커피 한잔에 바게뜨를 곁들이며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거리를 조망하며 사색에 잠기는 파리지앵들의 삶의 여유, 그 느림의 미학이 부러웠다. 그러면서 쉴 틈 없이 허덕거리며 내달려온 지난 날들을 돌이켜 보게 됐다. 가끔은 여행을 통하여 미시적이었던 시각을 거시적으로 바꾸며 이렇게 삶을 관조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고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파리에 머무르는 동안 하루의 대부분을 명화들과 조각작품들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미술관들을 순례하며 게걸스럽게 미술의 세계를 탐닉했다. 루브르, 오르세, 오랑제리, 퐁피듀의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명작들을 일별하는데만도 시간이 부족했다. 고대미술로부터 시작해서 초기 기독교미술과 고전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야수파와 입체파,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그리고 개념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엄청난 미술의 유산들이 필자를 흥분시켰다. 화집이나 영상물로 익히 알고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대가들의 체취와 붓놀림이 생생한 원작 앞에서 느꼈던 감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뿐인가. 세느강의 정취, 베르사이유 궁의 대정원과 튈르리 공원의 몽환적인 아름다움, 노트르담의 나선형 비상계단 투어, 샹젤리제 거리의 산책은 기본이고 파리 뒷골목의 아기자기한 정경에 푹 빠져서 꿈을 꾸듯 돌아다녔다.
 
몽마르뜨르 언덕 아래에 조성되어 있는 명사들의 무덤은 색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시대를 앞서 인류의 학문과 문화예술을 선도했던 위대한 선각자들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존경심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몽마르뜨르 언덕을 내려오니 대로변에 로트렉의 애환이 서려있는 물랭루즈가 필자를 반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주변으로 성인들을 위한 업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게 아닌가. 세상에! 성(聖)스러운 '순교자들의 언덕' 바로 아래서 성(性)스러운 영업을 하다니. 이런 괴이한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그리 넓지 않은 파리의 탐사를 어느 정도 마치자 사위를 포함한 우리 네 식구는 렌터카를 이용해서 남프랑스를 여행했다. 차창 밖의 프랑스는 넓은 평원과 아기자기한 집들이 만드는 그림같은 전원 풍경이 매혹적이었다. 리용, 마르세이유를 거쳐 칸느와 니스, 모나코를 경유하고, 이탈리아로 넘어가 역시 예술과 학문의 고도인 토리노를 만났고, 알프스의 관문을 통과하여 아름다운 호수의 도시 안시에서 쉼을 가진 후 레만호의 낭만이 깃든 스위스의 제네바를 돌아봤다. 마을마다 오래된 성당이 구심점이 되어 삶이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어디에도 영적인 에너지나 신앙생활의 기쁨이 느껴지지 않는다. 유럽인에게 있어서 신앙은 생활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일까? 아름다운 마을을 지날 때마다 차를 세우고 성당에 들어가 유럽인의 쇠락해가는 신앙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다. 특히 웅장하면서도 경건미가 뛰어난 대성당들이 관광객들의 필수 관광코스가 아닌 성전으로서의 본모습을 회복하여 예배와 찬양과 기도로 가득 차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한 가지 위안은 파리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떼제 마을이었다. 분주한 삶을 잠시 뒤로한 채 영적인 갈급함을 가지고 지구촌 곳곳으로부터 순례자들처럼 찾아온 젊은이들이 예배와 묵상, 기도와 찬양으로 영적인 재충전을 하는 신앙 공동체. 그곳에서는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가 있었고 진정한 성도의 교제가 있었다. 마치 에덴을 보는 것 같았다.
 
예술과 삶 자체를 사랑하는 프랑스 사람들에게서 많은 교훈을 얻으며 수지맞는 여행을 마쳤다.

최종률장로 / 연극연출가ㆍ배우ㆍ배우ㆍ한동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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