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시 불산 유출 피해자들, 대피소 생활ㆍ주변 오해 등으로 이중고

[ 교계 ] 불산 유출 피해자들의 이중고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2년 11월 20일(화) 11:40

   

지난 15일, 본보는 구미시 불산 유출 피해주민들이 언론의 무관심, 주변의 오해, 시당국의 부적절한 처사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는 한국교회희망봉사단측의 제보를 받고 피해주민대책위원회 책임자들을 만나 이들의 상황을 취재했다. 이날 주민들과의 만남에는 한교봉, 구미등대교회 및 영남신대 정경호교수와 학생들이 동행했다. <편집자 주>

"구호물품보다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지난 15일 임천리 경로당을 찾아 만난 구미시 불산 유출 피해주민대책위원회 위원들의 표정은 지쳐 있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지난 9월 27일 구미 불산 가스폭발 및 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 50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주민들이 집을 떠나 구미시 청소년수련원과 구미환경자원화시설에서 집단생활을 한 지도 40일을 넘으면서 임천리, 봉산리의 주민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정부와 구미시가 보상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고 시간만 흘러가면서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가중되고 있는 것. 주민들 중 상당수가 노약자들이라 이들의 건강이 우려되고 있다.
 
사고 발생 후 주민들을 하루만에 귀가조치 시킨 구미시 당국은 당시의 입장과 자세에서 별로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교착상태에 빠진 보상 협의는 협상당사자의 진을 빼는 것은 물론, 이 협상을 보고 있는 국민들의 관심도 급속히 식게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시간은 항상 힘 있는 자의 편. 사건 발생 초기 전국에서 관심을 갖고 방문하던 손길들도 약속이나 한 듯 끊겼고, 언론들도 더 이상 이 뉴스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됐다. 간헐적으로 나오는 뉴스도 구미시에서 언론을 통해 발표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한 방에 20명씩 공동생활을 하는 주민들(대부분 노인들)의 불편은 말로 다 표현이 안될 정도다. 남성, 여성으로 구분되어 수용되어 있기 때문에 가족끼리 각방을 쓰고 있는 것은 물론, 학교를 다니는 자녀들은 인근의 친척이나 친구집에서 장기간 얹혀사는 꼴이 되어버렸다.
 
# "우리는 '가해자' 아닌 '피해자'"

지난 15일 만난 피해주민대책위원회 위원들의 첫반응은 "억울하고 답답하다"였다. 이들은 "구미시에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켜버렸다"고 흥분했다. 이들과의 만남 바로 며칠 전 일부 언론에서 주민들이 과도한 보상요구를 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가 몇 차례 이어졌었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들로서는 이러한 언론보도를 체계적으로 반박할 수도 없고 자신들의 의견을 언론을 통해 알리는 일은 지금까지 해본 적도 없고, 시도하려고 해도 그 방법을 잘 모른다. 결국 이날 오전 주민들은 구미시청을 방문해 집단항의를 하고 왔단다.
 
정부에서 시가보상이라는 보상기준을 마련, 보상금 5백54억원을 1, 2차에 걸쳐 확정했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주변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냐는 호기심에 가득찬 물음, 혹은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고. 이 금액 중 공단 피해 및 복구에 약 2백억(추정), 조경수 피해복구에 수십억, 과수목 폐기 비용, 구미 지역 주민 검진비용 등을 제하고 나면 주민들에게 돌아갈 금액이 일반인들의 예상만큼 크지 않을 것는 게 대책위원들의 설명이다.
 
또한, 피해주민들에게 보상금을 책정하는 데에 있어서도 과실수 및 농작물 피해 가격 보상에 있어서도 주민들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인 것으로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과나무 한 그루를 10~12만원을 보상해주는데, 10년 된 사과나무 1년 수확비만 15만원 이상 나오는 나무들도 많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불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구미시 주식회사 휴브글로벌 불산누출사고 피해 보상 등에 관한 조례안이 구미시의회를 통과했데도 구미시에서는 아직 본격적인 협상에 임하지 않고 있고, 주민 대표, 시대표,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보상협의체 구성을 둘러싼 불합리한 처사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원래는 주민, 시관계자, 전문가 각각 1/3씩 24명을 구성해야 하지만 처음 시에서 내놓은 안은 주민대표의 수가 적었고, 또 다음 제시한 안에서도 전문가 선정을 자기들이 주도하려고 한 것. 두 갈등 주체의 힘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제대로 된 타협안이 마련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 언로 막혀 답답함 토로

이날 대화를 나눈 박종욱 공동대책위원장 등 주민대책위원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일반 국민들이 듣고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언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이들이 현재 요구하고 있는 사항은 크게 여섯가지로 축약된다.
 
첫째, 불산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현재 규명되지 않았으므로 장기적인 주민 건강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달라는 것. 건강 검진 실시 보장과 함께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대한 합당한 위자료를 지급해달라는 것이다.
 
둘째, 향후 1년간 농경지 휴경 후 표본재배 실시로 안정성 확보 후 단계적인 영농 활동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건.(휴경기간 동안의 영농 보상 실시)
 
셋째, 지역의 오염 확산을 막고 구미 농산물 안전 대책 차원에서 특별재난지역 내 과 수목 전량 폐기할 것.
 
넷째, 안전성 조사 확보 후 귀가가 가능하므로 이 기간 동안 주민 이주 대책 문제 해결해줄 것.(타 지역 이주시 주거비를 마련해야 하므로 주민들의 토지와 건물을 담보로 무이자 대출 요구)
 
다섯째, 구미 농산물 안전 대책과 사고 지역 농산물 향후 판매 대책 수립 및 손실 보상.(구미시 불산 지역 농산물 수매 후 학교 및 관공서, 기업체 급식용으로 사용하지 말 것)
 
여섯째, 피해주민을 대상으로 했던 구미시장의 약속 이행 등.
 
이날 함께 한 박준호 사무국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지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늘면서 주민들 중에는 화병으로 인해 정신과 상담치료를 받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며 " 구미시 불산유출 피해 복구 및 보상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도와 후원을 아끼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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