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힘에 관한 판타지-업사이드 다운

[ 말씀&MOVIE ] 영화-업사이드 다운

최성수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1월 19일(월) 10:09
[말씀&MOVIE]

업사이드 다운(후안 디에고 솔라나스, SF, 드라마, 15세, 2012)

놀이의 대상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들에서부터 새롭게 개발된 소재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실로 만물을 손끝으로 옮겨놓을 기세를 보이고 있다. 놀이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기에 이런 경향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무한히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시공의 한계를 극복하는 놀이는 특별한 이목을 끈다. 상상이라는 것이 원래부터 시공의 조건을 넘어서려는 경향을 갖는 것이나, 시간과 공간은 인간의 선천적인 조건이어서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타임머신을 소재로 다룬 영화들이 남다른 관심을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간을 갖고 노는 영화에 비해 공간을 놀이의 소재로 다룬 영화, 특히 공간이라는 선천적인 조건을 극복하는 노력을 보여주는 영화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중요한 이유는 인간이 3차원의 세계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와 공간은 매우 중요한 상관관계에 있기 때문에 어떤 공간을 배경으로 삼느냐는 하는 것은 영상미를 구현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을 보여주거나 기껏해야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장소를 옮기는 정도이고, 동화의 세계를 보여주거나, 시간여행의 한 과정에서 공간이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로 옮겨지는 일이 다뤄졌을 뿐이다. 공간 그 자체에 대해 상상하고 또 성찰하는 노력도 있었는데, 폐쇄된 공간이 주는 이미지와 느낌을 전해주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공간놀이를 소재로 다룬 것으로 무엇보다 큰 관심을 끌었던 영화는 '매트릭스'와 '인셉션'일 것이다. '매트릭스'는 IT기술력을 바탕으로 상상하여 만든 것인데 사이버 공간에 대한 경험과 또 그것이 현실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인셉션'은 공간이 사람의 생각에 따라 접혀지고 휘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놀이의 대상으로서 공간을 인간의 꿈과 의식세계로까지 확장시켰다.

지금 소개하는 '업사이드 다운' 역시 공간을 갖고 노는 작품으로 매우 창의적이다. 제목이 말하고 있듯이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듯이 보이는 영화이지만, 영화 속의 의미는 다르다. 서로 뒤집혀진 채 서로 마주 대하고 있는 상부의 세계와 하부의 세계를 말한다. 어쩌면 중의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보기에 따라서 엉망진창인 세계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영화이기도 하면서 또한 서로 대립하는 두 세계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성찰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업사이드 다운’은 서로 다른 중력이 작용하는 ‘태양계의 유일한 쌍둥이 행성’에 대한 인간의 상반된 시각을 보여준다. 과학적인 타당성을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영화는 물질과 반물질이라는 과학적인 데이터를 소재로 사용하는 데에 착안했을 뿐 과학적이길 결코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질과 반물질은 큰 에너지를 방출하고 쌍소멸되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에서 수분의 1초 이상 공존할 수 없다. 그래서 서로가 가까이 하거나 만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것은 서로 다른 물질로 된 두 세계를 말하기 위한 것이며, 서로 다른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고 서로 다른 숙명의 길을 걷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설정된 배경일 뿐이다. 게다가 서로의 접촉이 본질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규칙은 물론이고 실제로 물질의 본성상 그렇게 될 가능성은 없다. 감독은 이런 환경적인 배경에 세계적인 문제로 부각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이라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이슈를 슬그머니 삽입해 넣는데, 특별히 상부세계의 부유함이 하부세계에 대한 착취에 기반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서 두 개의 세계는 단순히 다른 행성의 맥락을 넘어 부와 빈의 갈등을 상징한다. 상부세계는 부유해서 하부세계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국으로 치면, 일종의 ‘강남’ 정도로 통한다. 서로 다른 행성에다 서로 다른 배경 그리고 갈등상황은 서로간의 만남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으로 제시된 것이다.

두 행성은 대립적인 관계에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결코 화해와 평화를 유지할 수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배경에서 감독은 두 청춘 남녀의 아담(짐 스터게스)과 에덴(커스틴 던스트)의 사랑을 통해 그것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다시 말해서 서로 다른 중력의 법칙이 지배하는 환경이 서로 갈등하는 인간관계로 확장되고 또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상황에서 그래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사랑에서 나온다는 메시지다. 불가능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상극의 두 세계에서 평형을 찾을 수 있기 위해, 곧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기 위해 아담은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해 마침내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는 물질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엄청난 규모의 과학적인 상상력을 동원할 때 관객들은 대개 철학적인 깊이가 있는 주제와 내용을 기대하기에,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청춘 남녀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생뚱맞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아름답고 환상적인 비주얼로 가득한 상상의 세계에 매료되다 보면 시간이 언제 갔는지 모를 정도가 된다.

사랑, '태어날 때 하나의 영혼이 둘로 갈라지고 반쪽은 서로를 찾는 것'이고 정의하면서 시작하는 영화는 사회 곳곳에서 아무리 양극화 현상이 지배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극복할 가능성이 사랑의 힘에 있음을 역설한다. 우리가 영화의 메시지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까닭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인간으로서는 결코 극복하지 못하는 벽을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보이심으로 그 한계를 무너뜨리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상상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직 실천이 문제일 뿐이다.


최성수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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