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목회하게 할 수는 없을까?

[ 목양칼럼 ] 주님의 목회

윤대영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1월 19일(월) 09:58

[목양칼럼]

목회를 방해하는 외부의 적이 있는가? 지독하게 협력하지 않는 장로가 계신다고 하더라도 목회를 끝내고 나면, 그는 목회의 은인 중에 은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온다. 혹시 사탄 같은 동역자가 있다고 하자. 그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모저모 샅샅이 뒤지고, 폄하하고, 모함하여 함정에 빠뜨리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막상 임종이 가까이 오면 용서할 수 있는 은총을 제공한 자로 생각되어 은인이라고 판단이 될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부인보다 더 악한 사모와 함께 하고 있는가? 주님 앞에 서는 날, 나의 영성을 키워 준 스승이라고 고맙게 여겨질 것이다.

목회의 적이란 외부 어디에도 없다. 다만 내 안에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그 내부의 적이 나를 가장 위하고 아껴주며,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는 존재로 알고 극진히 사랑한다. 바로 내가 나의 적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는 날부터 주님을 언제든지 팔아넘길 수 있다. 값이야 고하간에 주님을 팔아, 나를 위해서 나에게 무엇이든지 바치게 하는 것이다.

'나'라는 우상의 제단은 나의 영혼의 가장자리에 화려하게 세워져 있다. 그 재단의 제물은 어린양 예수이다. 이른 새벽에 목욕을 하고, 정장을 하고, 교회로 나온다. 성단에 올라 새벽 기도를 드린다. 나는 보좌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기도가 시작된다. 두 손을  번쩍 들고 외치는 외마디 '주님'이라고 한다. 그 이후부터 간절히 호소하는 기도의 내용은 주님은 오늘도 나를 영화롭게 해달라는 기도만 드리는 것이다. '나는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드릴까?'라는 기도는 없다. 나의 목회 목표를 이루어달라고 기도하거나, 성도들의 소원이 이뤄지도록 중보기도만 한다. 기도의 범위는 점점 넓어져 세계를 위해서 기도도 한다. 그러나 나의 세계로 변화하도록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주님을 보좌에 모시고 무릎을 꿇었지만, 사실은 내가 보좌에 앉고,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매달고 내 기도에 응답하실 것인가 아니하실 것인가 문초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성도들은 신령하다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 안에 또 하나의 적이 있다. 자신의 목회 성공이라는 우상이다. 목회에 과연 성공이 있을까? 목회에는 성공이 없다. 다만 주님께 쓰임 받을 뿐이다. 그런데 내가 목회를 성공해야 한다고 작심을 하고, 목회 성공을 위한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동원한다. 성서적인지 아닌지도 개의치 않는다. 사람만 많이 모시면 된다. 헌금만 많이 나오면 된다. 자기 뜻대로 재벌 총수처럼 거들먹거리며 이것이 성공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자기가 세운 목표만 달성하면 되고, 내가 추구하는 것만 이루면 된다. 주님은 어디에도 계시지 않는다. 다만 성공집념과 자기의 능력과 목회기술만이 있다.

오늘 누가 주님이 목회하도록 교회를 주님께 의탁하는 자가 있을까? 오늘의 목회현장에 이것이 문제이다. 교회성장이란 주님의 몫이다. 목회자는 주님이 자기 교회를 양육하심에 있어 쓰임 받는 아주 작은 도구이다. 주님이 목회하시도록 할 수는 없을까?


윤대영목사 / 처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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