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내비게이션

[ 논설위원 칼럼 ] 교회와 내비게이션

제종실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1월 16일(금) 11:14

[논설위원 칼럼]

자동차에 장착하는 내비게이션(Car navigation system)이라는 전자기기가 있다. 내비게이션은 운전자가 길을 찾아가고자 할 때 지도를 보이거나 지름길을 찾아주어 자동차 운전을 도와주는 장치이다. 내비게이션은 항공기나 선박의 위성자동항법장치를 응용한 장치인데 참으로 신기하고 편리한 기계이다. 이것은 찾아가고자 하는 곳의 주소나 전화번호 상호 명을 입력하면 친절하게 목적지까지 안내해 준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이 가끔 문제를 일으킬 때가 있다. 첫째는 작동을 하지 않을 때다. 자동차가 출발했는데도 방향을 못잡고 길 안내를 시작하지 않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면 운전자도 적잖게 당황한다. 그러면 운전자는 하는 수 없이 자동차를 몰고 무작정 거리로 나온다. 그제야 내비게이션은 정신이 들었다는 듯 방향을 잡고 안내를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는 내비게이션이 정신을 차리고 안내를 시작할 때쯤이면 자동차는 영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내비게이션은 뒤늦게 반복적으로 몇 미터 전방에 있는 신호에서 유턴하라고 안내한다.

지금의 한국교회를 보면 방향을 못 잡고 본연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교회는 사람들의 영혼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내비게이션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 시대에 어디로 방향을 정하고 가야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교회라는 내비게이션의 인도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 나라라는 목적지를 향하여 나아가게 하는 '길 도우미'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이 시대에 한국교회가 이러한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려면 깨어 있어야 한다.(마24:42,롬13:11)

둘째는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할 때가 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아 운전을 하다보면 가끔 황당한 일을 겪을 때가 있다. 잘 달려가던 자동차를 느닷없이 시골 한적한 곳으로 가라고 지시한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도시 외곽 지역을 통과해서 대도시의 도심으로 길을 안내한다. 자기 딴엔 빠른 길이라 인식하고 직선도로로 안내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모드 설정이 잘못되었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고속도로를 이용할 때는 고속모드로 입력해야 하는데 그냥 방치해 놓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모드 설정이 제대로 되어 있는가? 물론 대부분의 교회는 모드 설정이 제대로 되어서 맡은 바 사명에 충실하며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어떤 교회는 모드 설정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계속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다. 교회는 은혜의 모드, 평화의 모드, 사랑의 모드, 화합의 모드, 겸손의 모드, 순종의 모드로 달려가야 하는데 어떤 교회는 분열의 모드, 다툼의 모드, 시기의 모드, 교만의 모드, 불순종의 모드, 교회 세습의 모드로 달려가다가 파멸로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교회들로 인해 한국교회 전체의 위상이 추락하고 전도의 문이 막히고 있다. 한국교회라는 내비게이션이 새로운 모드를 설정해서 바른길로 달려가게 되기를 기대한다.

셋째는 고장이 날 때가 있다. 내비게이션을 오래 사용하다 보면 화면의 터치가 잘 안될 때가 있다. 'ㄱ'을 쳤는데 'ㄴ'이 나오고 '가'를 쳤는데 '나'가 나오는 식으로 도무지 입력이 제대로 안될 때가 있다. 내비게이의 화면을 세게 눌러보기도 하고 부드럽게 터치해 보기도 하고 볼펜 같은 예리한 물건으로 터치를 해봐도 소용이 없다. 이럴 때는 카센터에 가서 내비게이션을 고쳐야 한다. 화면보정을 하면 간단하게 고칠 수가 있다.

오늘의 한국교회를 보면 왠지 고장 난 내비게이션 같은 교회들이 눈에 띄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교회가 고장 났으면 고침 받아야 한다. 내비게이션이 고장 나면 기술자가 고쳐야 하는 것처럼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고침 받아야 한다. 계시록 3장 14~22절에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고장 난 교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는 고장 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은 달랐다.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은 모습과 같다고 했다. 그래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했다. 한국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 같은 책망을 듣지 않기를 기대한다.


제종실목사/덕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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