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만큼은 교회가 앞장서야

[ 논단 ] 교회가 통일 앞장서야

원영희권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1월 09일(금) 10:54
[주간논단]

1910년. 나라가 남의 손으로 넘어가는 지도 모르고 일본에 넘겨준 무지(無知)하게 착하던 나라 대한민국.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이완용을 비롯한 몇 사람의 서명으로 통째로 이웃나라 주권을 빼앗은 일본. 여자들은 정신대로 청년들은 징병, 징용해 무작정 끌어가고, 시인 윤동주를 비롯한 일본 유학생들을 인체실험용 마루타로 잡아가던 일본제국. 그 당시 교회는 무엇을 했을까? 아직은 청소년기의 한국교회라 나라의 고난을 위해 무어라 나서 말하기가 어렵던 때이긴 했다.
 
1919년.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진지 30년 정도 지난 그때. 비로소 청년 한국교회가 된 그 때. 흰 물결처럼 일어난 삼일독립운동의 중추가 된 우리나라의 교회. 그리고 해방. 1948년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 정부가 서고, 국회가 열렸다. 헌정 국회는 그 첫 회의를 열며 이에 앞서 이 나라를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올렸다. 하지만 또다시 이어진 난리 6ㆍ25. 전쟁의 소용돌이. 파괴된 땅을 바라보며, 일제보다 더 무서운 공산당을 피해 남쪽으로, 남쪽으로 쫓겨 가던 슬픈 우리의 민주 정부. 끝없이 황폐해진 땅을 밟으며 도대체 영문도 모른 채 우리들은 다들 거지가 되고, 고아가 되고, 이산가족이 되었다.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이상한 세월이 시작되고, 우리 교회들은 다시 바빠져, 고아를 모아들이고, 거지를 먹이고, 가족을 찾아주려 교회 문을 종일 활짝 열어놓았다. 아니, 아예 문이 없었다. 누구라도 들어와 피하고 쉴 수 있는 곳은 바로 동네 어귀에 있는 우리들의 교회였다. 교회만 찾으면 드디어 살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공산당들은 교회를 지키느라 피난가지 않은 목사님들을 교회 마당에서 살해하고, 학교 운동장에 모아 놓고 총살하고, 또 포승줄로 묶어 북으로 끌어갔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목사님들은 다시 교회를 세워 기도했고, 눈물로 찬양했다. 그 전쟁 통에도, 앞으로 우리 민족에 복 주실 하나님을 미리 찬양했다.
 
그 전쟁의 세월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전 세계 하나 뿐인 분단국가. 우리는 휴전협정으로 잠시 전쟁은 안하기로 했을 뿐이라, DMZ 초소에서는 여전히 총구가 남과 북 서로를 향해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아브라함의 아들들. 이스마엘과 이삭 자손들의 싸움처럼 끝이 없어 보이는 소리 죽인 전쟁.
 
남과 북의 우리들, 비록 적으로 서로를 대하긴 하지만, 어느 경기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일본과 승부를 겨루는 북한 축구선수들을 볼 때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우리는 어느새 북한을 응원하고 있다. 서로 마주대고 있는 총구를 보면 밉지만, 총을 내려놓고 보면 어찌나 닮았는지, 가슴이 아프다. 굶는다는 아이들 소식만으로도 눈물이 난다. 중국의 탈북민들이 강제 송환되어 죽어간다는 소식에 중국대사관 앞으로 뛰어간다. 탈북민을 위한 UN난민캠프를 세워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또 대한민국에 안착하려 고생하는 새터민들을 내 이웃으로 사랑하며 품고 도와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약속이기에 서로에게 총구는 여전히 들이대고 있다. 교회는 무얼 하는가?
 
통일만큼은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평화 통일의 꿈을 우리 청년들이 꾸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정권이 바뀌고 어느 정당의 지도자가 세워진다 해도, 통일의 문제만큼은 파당을 넘어서 한마음으로 논의해야 한다. 논의를 통해 세운 통일을 위한 정책과 약속들을 지도층이 지속 실천하도록, 모든 교회가 각각의 자리에서 선포해야 한다. 1백30년이 되는 한국교회. 그 절반의 세월 동안 갈라져 있는 한반도를 위해, 그 하나 됨을 위해, 한국교회는 지금, 무엇을 하는가?

원영희권사/ 새문안교회ㆍ세계YWCAㆍ이사성균관대 번역학과 대우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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