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을 울었던 CEO

[ NGO칼럼 ] 일주일을 울었던 CEO

이필숙이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1월 09일(금) 10:44

[NGO칼럼]

나는 노인요양시설을 시작하기 얼마 전까지 CEO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를 몰랐다. 어느날인가 한 노인요양시설 원장님을 만나러 시설에 갔더니 그분의 명패에 'CEO'라는 말이 있었고, 원장이라는 단어도 함께 있었다. 그저 '아!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CEO라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때 '그렇다면 나는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신학공부를 마친 후 도시빈민 사역을 위해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 낯선 부산 사투리를 듣고 있으니 뭐가 그리 무서웠는지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두려움에 떨었었다. 왜 부산 사람들은 말투가 싸우는 사람들 같은지. 내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경멸감마저 느낄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부산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월이 조금씩 지나면서 나 또한 부산 토박이 모습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갔던 것이다. 두렵고 무섭고 떨리던 사람들이 나 자신 또한 그들과 동일한 행동과 언어로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가면서 하나도 무섭지 않게 된 것이다.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 땡큐"라고 외치고 있다.
 
나는 도시 빈민 지역에서 여성과 아동을 위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문화공간을 빌려주는 일들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IMF의 위기를 맞아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노숙인으로 전략하는 일이 일어났다.
 
총회 사회봉사부는 노동자를 위한 일을 하는 노동상담소와 도시빈민 선교를 하는 선교관에 있는 목회자들에게 노숙인을 맡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해왔다. 정말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노숙인의 쉼터인 '희망의집'을 개원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진심으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는 말씀을 믿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돌보아주는 것에 목숨을 걸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너희가 우리를 어떻게 아느냐"하며 알콜로 힘을 얻는 이들과 함께 동행 하기란 너무 힘든 일이었다. 무섭고 힘들고 지쳐서 기진맥진하게 된 나는 어느날 교회 제일 뒷자리에 가서 울면서 하나님 "나는 못해요"라고 하는 말밖에 하지 못하고 주저 앉았다. 이렇게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울기를 일주일동안이나 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기적은 일어났다. 내 주위에 있던 치과의사인 장로님이 나의 딱한 사정을 알고 사역을 전적으로 도와주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지금도 나는 이러한 간단한 기도로 주님께 고한다. "저는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도와주세요."
 
수많은 일들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어려운 순간을 겪었고 솔직히 지금도 그 고생은 계속되고 있다. 쉼터를 마련하기 위해 개인 재정까지 모두 다 몰아 넣고 빚을 져서 숨을 쉴 수 없는 상황까지 갔던 일, 이일로 인해 몸속에 있던 혹이 커져서 대수술 했던 일들 등 얘기하자면 3박4일은 해야할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고생 속에서도 노숙인을 섬기는 일은 버리지 못하고 진행하고 있다. 작은자들과 함께 하는 일들은 정말 어렵다. 그래서 여러 성도들의 기도가 아니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은이들을 위한 사역을 하기 위해 일주일을 목 놓아 우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이필숙이사/금정희망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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