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귀환

[ 문단열의 축복의 발견 ] 축복의발견

문단열교수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1월 09일(금) 10:32

[문단열의 축복의 발견]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출 20:3)

하나님은 모세를 홀홀단신 시내산으로 올라오게 하십니다. 그리고 '구름 빽빽한' 그 곳에서 그 유명한 '십계명'을 주십니다. 그 첫번째 계명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그 내용은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입니다.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 하려면 우선 우리는 '다른 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신'이 누구인지 알려면 '신'이 무엇인지 부터 알아야겠지요. '신'이란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초인적 존재도 '신'으로 불리우고 무당들을 작두위에서 춤추게 하는 존재도 '신'으로 불리웁니다. 일본에는 일본 국민만큼 많은 신이 존재한다고 하고 힌두교 사원에는 수많은 신상이 참배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신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아니, 우리가 신이라고 부를 때 우리는 그 단어에 어떤 의미를 부여 할까요.

우선 '신'이라는 말의 의미를 푸는 열쇠는 종교인들이 부르는 신보다는 무신론자도 스스럼 없이 부르는 '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헬스의 신'이라거나 '기타의 신' 같은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여기서 신 이란 언어는 일단 '인간한계를 초월한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또한 '신'이라고 불리우는 존재는 그 특별한 능력으로 인해 사람들의 숭배를 끌어낸다는 두번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코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어려움을 만났을 때 사람들이 돌아보는 바로 그 존재, 그 만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는 바로 그 존재가 '신'인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사실은 유신론자건 무신론자건 인간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마다 '신뢰하여 돌아보고 우러르는' 존재를 꼭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태어날 때 부터 있는 그 자리, 아무리 종교를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도 순간 숙연하게 하는 그 경외의 감정이 존재하는 자리, 그 자리가 바로 '신'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를 어떤 정체성의 언어로 부르고 있던 간에 우리는 그 자리를 꼭 무언가로 이미 채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이는 자신의 아버지를, 어떤이는 스티브 잡스를, 그리고 또 다른 이들은 '돈'을 그 자리에 앉히고 사랑하고, 우러러 보고, 기도를 올립니다.

오늘  성경은  그 자리가 '하나님만의 자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유한합니다. 5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사람의 의학으로도 자신의 몸하나 제대로 지켜 내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리도 자랑하는 과학 기술로도 기껏해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부수는 폭탄이나 만들지 생명을 지닌 아메바 하나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신'의 자리는 '무한'의 자리 입니다. 우리가 가진 그 존재의 답답함의 정 반대 지점에 있는 곳입니다.

그곳은 영원의 자리입니다. 영원의 자리에 들어가 분은 '피조물'이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돈도, 물건도, 지위도, 돌맹이도, 심지어 애인이나 가족까지도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것과 그 분의 자리에 그것을 놓고 우리가 유한함에 고통 받을 때마다 그것들을 우러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은 다 유한한 것이고 결국 우리에게 쓰라린 배신과 허무를 안길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무성한 나무처럼 강대하더라도 결국 조금 있으면 스러지고 사라질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인기도 가고 인정도 가고 그토록 아끼는 물건도 헐고 숭배하던 위인들도 조금 지나면 다 고인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그 분은 어저께나 오늘이나 또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분입니다. 우리 안에 비어 있는 그 분의 자리, 그 자리의 이름이 영혼입니다. 그 자리에 주인이 들어 오실 때까지 우리의 영혼은 언제까지나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어색함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다른 것을 그 단에 올리고 그 것이 우리의 신이라고 절을 해대도 우리의 영혼은 결코 그 행동이 시원함을 주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왕의 자리에는 왕이 앉으셔야합니다. 그 분이 앉으실 때 비로소 우리 내면의 만조백관(모든 신하들)이 다 조화롭게 제 자리를 찾아 설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왕좌에는 엉뚱한 그 누가 앉아 있습니까. 그것이 당신의 불편함의 근원입니다.


문단열 /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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