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머슴

[ 논설위원 칼럼 ] 나쁜 머슴

장명하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1월 02일(금) 15:22

[논설위원 칼럼]

길은 소통의 상징이다. 길이 없는 땅을 맹지(盲地)라고 한다. 맹지는 길이 없기에 건축도 할 수 없고 땅값도 '똥값'에 가깝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속담은 로마제국이 길을 만드는 데 얼만큼 힘을 기울였는지 짐작이 간다. 로마의 전성기 때 간선과 지선의 전체 길이가 무려 38만km에 달했다고 한다. 경부 고속도로 길이가 4백km 남짓한 것을 감안 한다면 그 길이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상에 비슷한 시기에 건축된 건축물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로마의 도로요, 다른 하나는  중국의 만리장성이다. 도로는 개방과 소통의 상징이지만 장성은 단절과 불통의 상징이다. 두 제국 중 어느 제국이 강했는가? 말할 것 없이 로마제국이다. 도로는 적의 침략이나 반란 진압의 통로이기도 했지만 적의 침략과 반란의 통로도 된다. 이러한 위험성을 감수하면서도 로마는 개방을 선택해 강한 제국이 되었다.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통한다는 특성을 가진다. 만일 어느 지역이나 공간에서만 통한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가 아니다. 우리나라가 후진성을 면치 못할 때 공산품은 회사마다 규격과 품질이 제각각이었다. 그 후 정부는 KS 인증제를 도입하여 공산품을 규격화했다. 회사는 달라도 규격은 동일해졌고 이전보다 훨씬 강화된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세계의 규격화가 보편화 되고 있다.
 
생명은 부드러움과 유연성이 특징이다. 어린아이의 살결은 물처럼 부드럽다. 그러나 노인의 살결은 딱딱하고 윤기가 없고 유연성이 없다. 건강한 사람의 혈관은 깨끗하고 심장에서 내뿜는 피를 우리의 온몸으로 영양분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소변과 땀으로 신속하게 운반한다. 신체가 노쇠해질수록 혈관은 막히고 피부는 탄력을 잃고 생기와 발랄함이 사라지고 생각은 고루해지고 감정도 메마르다.
 
예수님은 자신을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고 하셨다. 그는 어느 누구와도 소통하셨고 막힘이 없었다. 길과 진리와 생명은 본질적으로 소통과 부드러움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그를 주인으로 섬기겠다는 머슴들이 왜 그렇게 불통이고 옹졸한지 모르겠다.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추상같은 질책을 예수님으로부터 들어야했다. 그들은 율법은 알았지만 지키지는 않았고, 율법조문은 알았지만 율법정신은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율법보다 먼저는 은혜(믿음)였다. 사실상 법은 도와 인과 의와 예보다 하위 개념이다. 도가 무너지고 인이 나오고 인이 무너지고 의가 나오고 의가 무너지고 예가 나오고 예가 무너지자 한비자의 법이 나왔다는 것이 고대 중국 역사다. 법이 적용되기 시작했다면 벌써 갈 때까지 갔다는 증좌이다. 작금에 지교회나 노회나 총회에 분쟁과 갈등의 해결책이 '법'이라는 최하위 수단으로 치닫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이다. 세상과도 소통하고 원수까지 사랑해야 할 교회 지도자들이 반목과 원성으로 불통하고, 진리의 본성을 외면하고 옹졸함과 편협함으로 주인을 욕보이고, 생명의 특징인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잃은 머슴들은 통절한 회개가 필요하지 않나? 우리의 주인이 자신을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규정했다면 머슴들의 할일은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닌가? 머슴들이 못나서 주인을 욕보이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겠는가?

장명하목사 / 대구전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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