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9~11월3일

[ 가정예배 ] 10.29~11.3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0월 25일(목) 13:18

월-예수님처럼 목적 있는 삶이 되라
본문: 수 14:10-15
찬송가: 393장
 
곤충학자인 파브르가 날벌레를 연구하던 중 아주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날벌레들이 공중을 빙빙 돌며 날아다니지만 아무런 목적도 없이 날아다니는 것을 발견한다. 날벌레 한 마리가 무턱대고 앞에서 돌면 다른 날벌레들도 따라서 빙빙 도는데 먹이가 있어도 먹지 않고 7일간을 돌았다. 그러다가 결국 굶어 죽더라는 것이다. 이것이 목적 없는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에게는 삶에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분명했다. 예수님의 삶의 목적은 인류에게 희망과 소망, 그리고 가장 중요한 생명을 주시는 것이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마태복음 4장 14절 이하에서 마태는 예수님이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시는 모습을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라고 표현했다.
 
인간은 아담과 하와 이후에 허물과 죄로 죽은 존재가 되었다. 성경은 이것을 가리켜 흑암에 앉은 백성이라 표현했다. 전혀 희망이란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을 위해 희망의 빛이요, 구원의 빛이요, 생명의 빛으로 오셨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갈렙도 목적 있는 삶을 살았다. 출애굽 1세대들이 모두 광야에서 불순종으로 죽었지만 믿음의 보고를 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유일하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40년이 지난 후 이제 갈렙은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로 남은 세월을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갈렙은 가만히 앉아 있기를 거절했다.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점령하였지만, 아직도 헤브론 땅은 정복하지 못했다. 이 땅은 자신이 받기로 약속된 땅이다. 헤브론은 지형이 험하고 요새가 많은 산지이다. 갈렙은 다른 사람들이 가기 싫어하는 땅, 거민들이 사는 그곳을 달라고 했다.
 
갈렙은 비전을 잊지 않았다. 모세를 통하여 자신에게 주시기로 한 그 땅을 40여년이 지나도록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 땅을 믿음으로 차지하는 것이 갈렙의 소망이었다. 갈렙은 삶의 목적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나이가 들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목표를 상실하지 않았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마음은 85세 나이가 되어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예수님이나 갈렙에게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나이가 많던 적던 인생의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도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리라고 약속하신 산지가 어디인지 기도하면서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반드시 두 가지 목표가 있다. 하나는 영적인 목표요, 다른 하나는 현실적인 목표이다. 이 목표를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며, 세상의 희망이 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 갈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부르짖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러한 믿음의 열정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노호경목사 / 흥해중앙교회


화 - 범사에 감사하라
본문 : 살전 5:16 - 18
찬송 : 438장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활 방식을 깨닫게 되면 신앙생활이 즐겁고 이 땅에서도 천국 생활을 맛보리라 생각 된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빌립보서 4장 4절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씀 하신다. 본문에 '항상 기뻐하라'는 무슨 일이 있든지 기뻐하라는 말씀이다. 좋은 일이 있을 때 기뻐하는 것은 당연하가 그러나 좋은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뻐하고 감사한다는 것은 주 안에서 만이 가능한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박국3장 17절에서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말씀 하신다. 환경과 소유에 의해 신앙생활이 좌우 된다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기도는 호흡과 같다고 하며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와 사귀시기를 기뻐하신다. 사람에게는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이 병행되므로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러므로 늘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래야 한다. 인생길에 기쁨을 빼앗아 갈 요소들이 생길 때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아버지께서 도우신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4)."
 
"범사에 감사하라" 무슨 일에든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은 죄다. 알고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 때문에 우리 인생을 맡기고 감사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이 진정한 감사가 나온다. 죄 값으로 죽어야 할 사람이 예수님 때문에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되고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게 되니 어찌 감사 안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다 인정하시고 천국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에 평생 감사하며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께 이 은혜를 보답할까 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 삶의 전부를 또한 모든 역사를 섭리하시고 인도하시는 아버지께 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는 생활이 되며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예수님 안에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러한 삶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행복한 천국생활이 이루어 질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오늘의 기도>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땅에 모든 민족과 나라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며 모든 영혼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며 영광 돌리는 지혜가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석근목사 / 평화의교회


수-내일의 희망을 사라 하신다
본문: 렘 32:6-15
찬송가: 365장

세상을 살아가면서 희망을 갖는다는 것, 특히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희망은 더욱 중요하다. 2차 세계대전 때에 포로수용소에서 한 포로병이 라디오를 조립해 영국 BBC방송을 듣게 되었는데, 연합군이 노르망디상륙작전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 소식이 삽시간에 모든 포로들에게 알려졌다. 포로들이 모두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자 독일군들이 총을 겨누고 당황해 하였으나 포로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때부터 포로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얼굴에 늘 기쁨이 가득하였다. 풀려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고, 이제 곧 이스라엘은 망할 수밖에 없는 이 때에 예레미야는 사촌 하나멜의 밭을 산다. 이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려한다. 내일의 희망을 갖기 위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해야 한다.
 
예레미야가 밭을 산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사람들에게 그 땅을 사도되겠냐고 상의했다면 모두가 반대했을 것이다. 예레미야가 이 절망적인 환경 중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다.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있고, 그 말씀을 순종하다 보면 절망이 희망으로, 고난이 축복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둘째, 내일의 희망을 사야 한다.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향해 '나라가 망한다고 하면서 자기는 땅을 산다'고 수근거렸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증서를 토기에 담아 잘 보존하도록 함으로써 사람들이 다시 이 땅에서 밭과 땅을 사게 될 것을 보여준다. 나라가 망해가지만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을 주고 내일의 희망을 산 것이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절망하지 않고 힘써 내일의 희망을 살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꿈과 희망이 거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피와 땀과 눈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대가를 치르면서 희망의 나무를 잘 가꾸면 반드시 큰 결실을 거두게 될 것이다.
 
셋째, 이웃과 후손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땅을 매매하면 그 증서를 인봉하여 보관하는 것이 관례이나 예레미야는 하나를 인봉하지 않고, 증서 조인장소를 시위대 뜰에서 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한다. 시련과 절망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함이다. 또한 예레미야는 꿈을 잃어버린 후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매매증서를 오래 보관하도록 한다. 자신들 세대만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것이다.
 
오늘도 염려와 불안, 두려움 가운데 절망하고 있지는 않는가?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시련 중에도 내일의 희망을 가지고, 이웃과 후손들도 이 희망으로 축복을 예비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의 기도>
택한 백성들에게 오늘도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의 상황이 절망적일 때 오히려 내일의 희망을 노래하고, 희망을 위하여 거룩한 투자를 할 수 있는 비전의 사람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일목사 / 일동동부교회


목-염려를 맏겨라
본문: 벧전 5:7-11
찬송가: 383장
 
인간사는 근심과 불안의 인생길이다. 삶이 고난이라고 전제하고 이 고난과 불행에 대하여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인간의 삶이 고난 속에 살 수밖에 없는 해악이 세 가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인간의 유한성에서 오는 불행으로, 죽음, 무지 등의 형이상학적 해악이요, 둘째는 자연계와의 부조화에서 오는 고난으로 지진, 사고, 질병, 흉년 등 물리적 해악이며, 셋째는 인간의 죄악성에서 오는 것으로 죄, 수치, 근심 등의 도덕적 해악이 있다고 했다. 석가모니는 인간의 번뇌는 욕망에서 오는 것이므로 마음을 다스리고 수행하여 무념 무상으로 해탈해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든 현실적 고난이나 염려를 벗어버릴 방법으로 산속에서 수양을 쌓는 것이라고 했다.
 
요즈음 사회에서는 고통을 잊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기도 한다. 얼마전 41세의 여 의사가 갑자기 자신의 병원에서 사망했다. 원인은 놀랍게도 수면 유도제인 프로포폴 약물 과다사용이었다. 그 약물을 주사로 맞으면 수면 상태가 되어 아무 생각없이 편안해지기 때문에 시댁일로 남편일로 자녀문제로 골치아프고 힘들 때 약을 의지하다가 영원히 잠든 것이다.
 
인생의 고난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성경은 "맡겨라 돌보신다"라고 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염려를 맡겼을 때 주님이 돌보신다는 것이다. 맡긴다는 것은 고난의 짐을 믿음으로 처리하는 방법이다. 베드로는 그런 고난을 극복하는 방법을 몇 가지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근신하라'고 말한다. 이런 고난이 왜 주어졌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베드로는 여기서 믿으면 다 해결된다고 말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극복방안을 제시한다. 그렇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살면서 지혜롭고 때로는 신중하고 겸손해야 한다. 때로 근신하기도 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탄을 향해서는 강하게 대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베드로는 5장 9절에서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말했다.
 
둘째로 '기뻐하라'고 말한다. 예수님을 믿기에 당하는 신앙적 고난을 기쁨으로 받으면 더 큰 은혜가 된다. 성경은 그 때 기뻐하라고 말한다. 4장 14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했다.
 
셋째로 '이기라'고 말한다. 18절에는 "의인이 겨우 구원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의인은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사탄은 그리스도인을 무너뜨리려고 애쓴다. 그래서 주님을 의지하고 이기는 자에게 상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근심을 주님께 맡기고 근신하며, 근심으로 인해 기뻐하여 반드시 이겨야 한다. 주님께서 돌보신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어떤 염려나 근심도 주님께 맏깁니다. 그리고 근신하여 고난이 기쁨되도록 깨달음을 주소서. 신앙으로 반드시 이기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동석목사 / 감동교회


금-'무엇하며 살았느냐'는 하나님의 물음
본문: 에베소서 5장 15-17
찬송가: 310장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신 선물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시간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결과가 달라진다. 시간은 양적인 개념과 질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다. 양적인 개념의 시간으로 인생을 살면 '얼마나 살았느냐?'가 삶의 기준이 된다. 장수도 믿음의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이 복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살았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도리어 오래 사는 것이 우리에게 큰 고통과 슬픔이 될 수도 있다. 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오래 사는 것이 개인에게나 사회적으로 고통이 될 수 있다.

질적인 시간 개념을 가지고 인생을 살면 '무엇을 하면서 살았느냐'에 초점을 맞추어 산다. 분명한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며 살았느냐'는 질적인 시간 개념을 가지고 심판하신다. 이것을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의 삶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것이 지혜가 없는 사람과 지혜가 있는 사람의 차이이다.
 
시편 90편에 보면 모세가 지은 시가 나온다. 모세는 1백20년을 살았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한 순간처럼 지나왔음을 깨닫게 된다. 모세는 10절에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날 수를 계수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더 살 수 있는 날을 헤아리는 것이 아니다. 남은 날 수를 통해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그 내용물을 내놓을 수 있는 삶을 사는 지혜를 갖게 해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하셨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질적인 개념의 시간으로 세월 앞에 서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일상생활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기억하고 그 뜻에 따라 성실한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을 원하신다. 우리의 건강한 인생, 건강한 가정, 건강한 직장, 건강한 교회는 하나의 큰 사역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성실함으로 이뤄지는 일상의 작은 일들이 모아져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달란트 비유를 통해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 일을 맡기리라. 자,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일상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일들을 믿음 안에서 소중히 여기며 성실하게 감당하는 사람이다.
 
우리 삶의 영역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오늘,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가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한 주간을 살면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해 아쉬움과 탄식함이 이어지는 어리석은 삶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성실하게 행함으로서 감사함이 이어지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서진규목사 / 행복한교회


토-예배에도 원리가 있다.
본문: 히13:15-16
찬송가: 210장
 
노련하고 존경받는 수도사가 젊은 수도사에게 교육을 시작했다. 아직은 좀 건방지고 교만한 구석이 있는 젊은 수도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 존경받는 수도사는 딱딱한 흙을 만지면서 이런 대화를 나눈다. "여보게! 여기 물을 좀 부어보게!" 그래서 젊은 수도사는 물을 부었다. 그런데 물이 흙으로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흘러내리고 만다. 노련한 수도사는 "딱딱한 흙은 물을 받지 못하네"라며 옆에 있는 망치를 집어들더니 흙덩이를 부수기 시작했다. 그런 후에 젊은 수도사에게 다시 물을 부어 보라고 한다. 젊은 수도사가 부서져서 부드러워진 그 흙속에 물을 붓자 그 물이 흙을 응고시키기 시작했다. 수도사는 웃으면서 말한다. "여기다가 씨를 뿌리면 틀림없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 아니겠나? 우리는 이것을 깨어짐의 영성의 법칙이라고 말하지."
 
그렇다. 우리가 사는 이 땅 모든 것에는 법칙과 원리가 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난다. 많이 심으면 많이 난다. 적게 심으면 적게 난다. 좋은 것을 심으면 좋은 것이 난다. 나쁜 것을 심으면 나쁜 것이 난다. 그래서 심은대로 거두리라는 원리가 있다. 알고 보면 학교생활, 교회생활, 사회생활은 삶의 원리를 배우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천국백성으로 사는 원리를 배우는 것이다. 특히 예배생활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복의 원리를 배운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도 소중한 원리가 있다. 제1원리, 예배는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드려져야 한다. 제2원리, 예배는 오직 교회 중심으로 드려야 한다. 제3원리, 예배는 오직 종말 중심으로 드려야 한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또 다른 예배의 소중한 원리가 소개된다. 먼저, 15절에서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고 한다. 기쁨, 평안, 감사가 올 때까지 찬송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 이것도 예배원리이다. 그리고 16절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예배)에 대한 두 가지 원리가 더 소개된다. 이것은 우리가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예배원리이다. 첫째는, "오직 선을 행함과…"이 말은 선행 혹은 좋은 일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선행 또는 좋은 일을 하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이다. 구원 받은 사람들의 좋은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예배)가 된다. 구원 받은 사람이 좋은 일 하는 것은 하나님께 다 보고가 된다. 말 한마디라도, 냉수 한 그릇이라도 상급이 있다.
 
다시 16절에 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 두 번째는,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서로 나눠 주기를 명령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형식적으로 예배를 정성껏 드리는 사람도 나누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사를 드린다고 보기 어렵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중심, 교회중심, 종말 중심의 예배, 그리고 찬송의 예배를 회복하게 하옵소서. 구원 받은 백성으로서 선행과 좋은 일, 그리고 서로 나누 주기를 잊지 않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종래목사 / 새로핌교회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