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곤페이퍼(Pentagon paper)

[ 데스크창 ] 펜타곤페이퍼(Pentagon paper)

안홍철 기자 hcahn@pckworld.com
2012년 10월 23일(화) 17:24

1961년과 1971년, 이 10년 어간에 미국사회는 '국익'과 '국민의 알권리' 중 무엇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지를 시사하는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1961년, 케네디 정부는 쿠바를 탈출한 난민들을 비밀리에 훈련시켜 새벽녘에 쿠바를 침공합니다. 이른바 '쿠바 침공'사건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침공 전날, 평소 친분관계가 깊은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의 대기자인 제임스 레스턴 지국장에게 쿠바 침공의 전말을 알려주면서 성공을 위해 '보도통제(off the record)' 요청을 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쿠바 침공은 쿠바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실패하고 맙니다. 그 결과 미국 정부는 포로 한 명당 농업용 트랙터 한 대와 맞교환하는 굴욕을 겪기도 합니다. 아무튼 케네디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 보도통제를 요청했고 레스턴 기자는 특종일 수도 있는 세계적인 사건을, 국익이라는 미명 하에 보도하지 않았던 것이죠.
 
1971년엔 '펜타곤페이퍼(Pentagon paper)' 사건이 있었습니다. 펜타곤페이퍼는 베트남 전쟁의 '처음과 끝'에 관한 보고서입니다. 미 국방성(Pentagon)은 MIT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다니엘 엘즈버그 박사에게 베트남 전쟁과 관련한 연구 프로젝트를 의뢰합니다. 엘즈버그 교수는 오랜 연구 끝에 방대한 보고서를 작성, 원본은 국방성에, 부본은 뉴욕타임스에 제출합니다.
 
뉴욕타임스는 이 보고서를 보도하기로 결정합니다. 보고서의 최종 결론은 "이 전쟁은 처음부터 잘못 개입한 전쟁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철군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베트남 전쟁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며 계속 진행 중이었기에 뉴욕타임스 보도 직후 미국 사회는 찬반 양론으로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국익에 비춰볼 때 찬성 쪽은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지지했고, 반대쪽은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이적행위'라고 맹 비난했습니다. 결국 미 정부는 방첩법에 근거하여 기사의 게재를 중지하는 유지명령(injunction)을 법원에 제기했고, 뉴욕타임스는 대법원에 상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대법원은 마침내 뉴욕타임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최종판결에서 '사전억제의 위헌성과 국민의 알 권리'를 판결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뉴욕타임스와 대법원은 국민의 알 권리에 충실한 것이 국익에 부합하는 길이라는데 동의한 것이죠.
 
두 사건 모두 공교롭게도 뉴욕타임스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10년의 시차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국익과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해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물론 전자는 기자 개인의 게이트키핑(gatekeeping)이었죠. 훗날, 레스턴 기자는 자신의 50년 기자생활 중 쿠바침공 사건 보도통제를 가장 치욕적인 실수로 술회하기도 했습니다.
 
국익과 관련된 사안에 따라 뉴욕타임스는 때에 따라 다른 입장을 취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알 권리에 더 큰 방점을 두었습니다. 교단지인 기독공보도 이러한 딜레마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비판적인 기사보도와 관련, 이것이 '과연 한국교회에 유익한 것이냐' 아니면 '밝고 따뜻한 소식도 많은데 굳이 비판적 기사를 게재하느냐'는 의견들입니다. 한국교회가 개혁돼야 한다면서도 비판엔 인색한 것, 그것이야말로 먼저 개혁해야할 일이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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